한동훈의 완벽한 ‘여의도 사투리’[김지현의 정치언락]
“여의도에서 일하는 300명만 쓰는 고유의 어떤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 저는 나머지 5000만 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 |
이런 ‘새 정치’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도 많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동료 시민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
당시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도 이에 대해 “서태지와 아이들의 메시지는 나는 나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라는 거거든요. 한동훈 장관의 모습이 여의도 문법,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겠다, 나는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하더군요. 한 위원장이 그 뒤로 매일 같이 외치던 ‘동료 시민’이란 표현도 여의도에선 들어본 적이 없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정치가 그렇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었나 봅니다. 총선 기간 한 전 위원장을 지켜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내가 뭔가를 새롭게 하겠다’라는 게 전혀 없다는 거였습니다. 원래 대안없이 남 욕만 하는 게 가장 쉽죠. 자기 콘텐츠는 없이 오로지 기존 여의도 정치와 반대 길을 가려고만 하니 스스로 네거티브의 함정에 빠져든 것 같더군요.
그가 ‘한동훈식 정치개혁’이라고 꺼내든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국회의원 금고형 이상 확정시 세비 반납’, ‘출판기념회 정치자금 수수 금지’ 등은 모두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저격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물론 처음에 들었을 땐 통쾌합니다. 하지만 사실 일반 평범한 국민의 삶과는 큰 상관이 없는, 그야말로 국회의원 300명에게만 해당하는 전형적인 여의도 정치입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거죠.
심지어 컨벤션 효과가 저물고 지지율이 떨어지니 “개 같은정치” 등 독한 막말까지 쏟아내던 그의 모습은 여느 구태 정치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이른바 ‘식사 정치’, ‘목격담 정치’죠. 모두 전형적인 여의도식 ‘간 보기 정치’입니다.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대신, 근황과 생각을 남의 입과 눈을 빌어 간접적으로 퍼뜨리고 일단 여론을 찔러보는 겁니다. 물론 적당한 저울질이야 필요하겠지만 한 달 가까이 변죽만 울려대면 조급해 보이고, 결단력이 없어 보이겠죠.
2007년과 2017년 대선 출마를 저울질만 하다 접은 고건 전 총리와 반기문 전 총리, 간 보기의 달인이라 ‘간철수’로 불리는 안철수 의원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이 “안철수 의원 하면 ‘간철수’, 간을 잘 본다는 말이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도 당 대표 나올 것인지, 안 나올 것인지 도서관 사진 같은 것으로 간 보기를 한다”(17일 유튜브 방송)고 꼬집은 배경입니다.
자기는 뒤로 빠진 채 대리인을 앞세워 조금씩 흘리는 ‘최측근 정치’도 하더군요. 한 전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은 요즘 한 전 위원장 ‘쉴드’를 치느라 바빠 보입니다. “한 전 위원장이 당원과 동료 시민에게 많은 약속을 했다”, “민심이 부를 때 거부할 수 없는 게 정치”, “이조심판론을 갖고 선거운동을 할 때 많은 분이 한 전 위원장에게 ‘제발 한 번만 더 지원 유세를 와 달라’고 했다. (그래 놓고는) 지금 와서는 ‘그것 때문에 졌다’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등 한 전 위원장의 마음속 억울함을 연일 대신 호소해주고 있죠.
옛말에 서로 미워하면서 닮아 간다더니 정말 그런 걸까요.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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