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도 이태원도…‘처벌의 망령’에 사로잡히면 진실은 가려진다 [매경포럼]
참사 근본원인 못 찾고
미래 사고 예방도 못해
이태원 특조위는 달라야
눈을 감으니, 분노에 휩싸였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뒤집힌 배가 한참을 바다에 떠 있는데도 학생들을 구하지 못한 정부 책임자들에게 분노했다. 깊은 바닷속에 차가운 몸을 뉜 학생들이 쓰던 책상에 놓인 꽃 사진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책임있는 자들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 다수도 그랬던 거 같다. 학생을 구하지 못한 해경과 정권에 비난이 쏠렸고 처벌을 요구했다. 검찰도 대규모 수사로 응답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껏 참사의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우연히 집어 든 책 ‘어려운 대화’를 읽는 중에 그 단서를 발견했다. 더글러스 스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책에 이렇게 썼다. “비난은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법적으로든 기타 방법으로든 일단 ‘처벌의 망령’에 사로잡히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진실을 파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 순간, 나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참사에 책임있어 보이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처벌하라고 했던 나 자신이야말로 진상 규명을 막는 원인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스톤 교수는 “비난에 집중하면 근본 원인을 찾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너무 많은 화물이나 승객을 태운 탓에 선박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보자. 사고가 난 뒤에 그렇게 승객을 태운 선주를 찾아내 처벌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선주가 과연 근본 원인일까. 화물과 승객을 줄여 태우면 여객·화물 운임이 오를 것이다. 그 운임 인상은 모두가 싫어한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과적을 방치하는 것이라면, 사고의 근본 원인은 운임 상승을 거부하는 우리 자신이다. 처벌에 집중하면 발견할 수 없는 진실이다.
처벌의 대상이 된 이들이 사과를 거부하고 비협조적이 된다는 점도 문제다. 스톤 교수는 자동차 사고를 예로 들었다. “고소당하게 될 자동차 회사는 안전성 개선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안전성을 개선하겠다는 뜻을 나타내면 사고가 나기 전에 어떤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사실을 회사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 당시, 정권을 반대하는 이들은 그 책임을 물어 정권을 흔들었고, 정권은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양쪽 모두 자기 편에 불리한 진실에는 눈을 감으려고 했다. 이래서는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스톤 교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의 진상이 밝혀진 것은 처벌의 망령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가해자는 진실을 밝히면 사면을 받았다. 덕분에 진실을 말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스톤 교수는 “범죄 수사·재판만을 수행했다면, 학대의 진상이 지금처럼 알려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태원 특조위의 목적은 진상을 규명해 미래의 참사를 막는 데 있다. 처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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