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와의 전쟁’ 막차 탄 선거… 각국 정치권 - 중앙銀 ‘정면충돌’[Global Economy]

황혜진 기자 2024. 5. 2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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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Economy
코로나 후 인플레 마지막 고비
각국 정치권 표 계산에만 몰두
태국 여당 대표 금리인하 압박
총리 이어 중앙은행 공개 비판
헝가리 정부도 통화정책 개입
금리 13.0% → 7.75%로 인하
美 대선 박빙으로 흘러가자
兩진영 중앙銀 독립성 위협
바이든 “11월 전 금리인하”
트럼프 “파월 재임명 없다”
통화정책 섣불리 개입하면
고물가 불러와 되레 역풍

올해 예정된 76개국의 선거가 속속 치러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정치권과 중앙은행이 충돌하고 있다. 정치권이 선거 승리를 위해 정부 지출 확대와 기준금리 인하 등을 통한 대규모 경기부양을 추진하려 하자, 중앙은행들이 무리한 돈 풀기가 가뜩이나 높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며 맞서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각국에서 불거진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마지막 고비(final mile)에 다다른 상황에서 표 계산에만 눈이 먼 정치인들의 잇따른 압박으로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세계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이 정치적 간섭에 따라 결정될 경우 세계 경제에 미치는 후폭풍을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앙은행 독립성까지 공격=기준금리 인하 여부를 놓고 중앙은행과 정치권이 갈등을 빚는 대표적인 국가는 태국이다. 현지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태국 집권당 프아타이당 대표인 패통탄 친나왓은 지난 3일 열린 당 행사 연설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태국 중앙은행(BOT)이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중앙은행을 정부로부터 독립시킨 법이 문제”라며 “중앙은행 독립성이 경제 문제 해결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인 패통탄 대표는 현 정권 최고 실세로 꼽힌다. 지난해 8월 집권한 세타 타위신 총리에 이어 여당 대표까지 중앙은행에 대한 공개적 비판에 나선 것이다.

앞서 세타 총리는 기준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압박했으나 중앙은행은 이를 거부하고 금리를 동결해 왔다. 태국의 기준금리는 연 2.5%다. 태국 중앙은행은 2022년 8월부터 기준금리를 2.0%포인트 올렸다가 지난해 11월부터 동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여당인 프아타이당 총선 핵심 공약인 국민 1인당 1만 밧(약 37만 원) 지원금 지급에 대해 중앙은행이 반대하면서 양측의 골은 더 깊어졌다. 재무부 장관을 겸직하며 중앙은행과 직접 갈등을 빚어온 세타 총리는 최근 재무부 장관에선 물러났지만, 총리에 이어 여당 대표까지 공개적 비판에 가세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선제로 기준금리 인하에 나선 헝가리도 정부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대놓고 개입한 대표적인 사례다.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부양을 꾀하고 있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중앙은행을 향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라고 압박해왔다. 정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헝가리 중앙은행은 지난해 8월 연 13.0%에 달했던 기준금리를 지난달 7.75%까지 낮췄다. 오르반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금리정책에 대한 중앙은행의 통제권을 축소하는 법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정부가 임명한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중앙은행 감독위원회의 권한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유럽중앙은행(ECB)까지 우려를 표명한 상태다. 유럽 언론들은 내달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오르반 총리의 통화정책 개입이 더 노골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죄르지 마톨치(왼쪽) 헝가리 중앙은행장과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한 행사장에 참석해 박수를 치는 도중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bne 인텔리뉴스 캡처

◇Fed 압박하는 美 대선 후보=오는 11월 대선을 치르는 미국에서도 Fed와 정부 간 금리 인하 시점을 놓고 긴장감이 돌고 있다. 지금까지 미 백악관은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것을 자제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침해될 경우 향후 걷잡을 수 없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경험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간의 대선 승부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1일 기준금리를 연간 5.25~5.50%로 동결했다. 지난해 9월 이후 6회 연속 동결로, 시장의 관심은 Fed의 피벗 시점에 가 있다. 정치권은 이 피벗 시점을 놓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대선이 열리는 11월 전에 금리 인하가 기대된다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공화당 대선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지난 2월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파월 의장에 대해 “그는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가 금리를 낮춘다면 아마도 민주당을 돕기 위해 뭔가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선 전 금리 인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위한 것이란 얘기로, 더욱이 자신이 집권하면 파월 의장의 재임명은 없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경우 Fed의 독립성을 약화할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성 압박했다가 부작용만=세계 각국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간섭이 잇따르는 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도 제기된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선거 해를 앞두고 중앙은행에 대한 정치적인 간섭 위험이 커지고, 정치권이 인사에 개입하려 든다”고 비판하며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라는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인플레이션 통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섣불리 개입했다가 고물가를 초래한 대표적인 국가가 튀르키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중앙은행에 압력을 가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2022년 80%대의 물가상승률에도 기준금리 인상은 ‘모든 악(惡)의 어머니’라며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하지만 금리 인하 결과는 리라화 가치의 40% 폭락과 막대한 외환 유출로 이어졌다. 세계 각국에선 물가상승률은 낮아지고 있지만, 튀르키예의 지난 3월 소비자 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여전히 70%에 육박한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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