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즈음 찾은 레이싱 트랙, “나는 토하고 메르세데스-AMG는 빛났다”

김준 기자 2024. 5. 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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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자동차 브랜드들이 연중 미디어를 대상으로 다양한 시승 행사를 벌인다. 이 중에서도 메르세데스 벤츠의 AMG 시승회는 기자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다. 300~600마력에 이르는 프리미엄 고성능 차량을 실제 자동차 경기가 펼쳐지는 전용 서킷에서 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 AMG 미디어 익스피리언스 데이’가 진행된 지난 16일 AMG 스피드웨이에 AMG 고성능 차량이 전시돼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올해도 AMG 차량을 언론에 소개하는 ‘2024 AMG 미디어 익스피리언스데이’가 지난 16~17일 경기 용인 AMG 스피드웨이에서 진행됐는데, 운 좋게 기자도 추첨에 뽑혀 약 5년 만에 서킷 주행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레이싱 트랙 주행은 초콜릿 상자를 받아든 아이들처럼 설레게 하지만, 이번엔 걱정이 앞섰다. 내일 모레 환갑에, 저질 체력이 400마력이 넘는 고성능 차량과 대관령 고갯길만큼 굽이진 레이싱 서킷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아끼던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용인 AMG 스피드웨이는 애버랜드 내에 있다. 자동차 애호가이던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종종 고성능 스포츠카를 테스트하던 곳이다. 몇 년 전부터 메르세데스 AMG가 삼성과 계약을 맺어 사용하고 있는데, 4.3㎞ 트랙과 16개 코너로 구성돼 AMG 같은 고성능 차의 성능을 테스트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시승 당일 날씨는 화창했다. 초여름이지만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 빛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트랙을 쓰다듬고 있었다.

제공된 차량은 메르세데스-AMG GLC 43 4MATIC, GLB 35 4MATIC, A 35 4MATIC 세단. 시승에 참가한 매체는 A, B, C 3개 조로 나누어졌고, 각 차량에 2명의 기자가 탑승해 교대로 운전했다.

함께 시승한 타 매체 남자 기자의 외모가 범상치 않다. 상체가 역삼각형으로 떡 벌어진 게 한 눈으로 봐도 ‘벌크업’을 한 체형이었다. 안심됐다. 급가속과 급제동을 밥 먹듯 하는 트랙 주행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바로 구토가 올라오고, 그 푸른 하늘은 노랗게 변한다.

먼저 시승한 메르세데스-AMG GLC 43 4MATIC은 뒷바퀴 굴림의 C클래스 기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AMG 2.0ℓ 직렬 4기통 엔진(M139)과 9단 변속기가 조합됐다.

모터 방식의 터보차저가 붙어 최고출력은 421마력(ps), 최대토크는 51㎏·m 가 나온다. 전문 레이서가 아니라도 400마력, 50㎏·m쯤 되는 ‘심장’이라면 일반 운전자들도 재밌게 운전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AMG GLC 43 4MATIC이 AMG 스피드웨이 코너를 공략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자, 이젠 AMG를 맛깔나게 조련하는 일만 남았다. 보디빌더 체형의 후배 기자가 먼저 운전석에 앉았다. 운전대를 쥐는 품새가 지극히 안정적이다. 왼손은 운전대 9시, 오른손은 3시 방향 스포크를 완벽하게 잡고,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후배, 약간 긴장한 듯하다. 거의 운전대를 깨부술 듯, 꽉 쥐고 있다. 골프채든 운전대든 그립은 양손으로 살포시 하는 게 정석인데···.

조금은 불안한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트랙은 종종 나오는 편이죠?”

“아닙니다. 대학 때 운전면허를 땄는데, 그 뒤로 차를 몰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장롱 면허의 초보 운전자

아뿔싸. 그는 ‘장롱 면허’ 소지자였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 속 범자가 사냥터에서 홍해인을 안고 오는 백현우를 보며 흘리던 대사가 생각났다. ‘오 마이 가시!’

그 후배가 고삐를 쥔 AMG GLC 43 4MATIC은 미친 얼룩말처럼 내달렸다. 그의 오른발 힘은 엄청났다. 가속페달을 망치로 내려치듯 거세게 밟아댄다. 급가속할 때마다 등짝이 시트에 짝짝 들러붙었다. 너무 고통스럽다.

그런데 이 친구, 운전 패턴이 아주 단순하다. 가속만 할 줄 알지 브레이크 잡을 줄을 모른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바로 앞이 헤어핀 코너, 그 건너편은 제법 깊은 낭떠러지인데도 그냥 쏜다.

이건 마치···. 뉘르부르크링 북쪽 서킷 헤어핀 구간 카라치올라 카루셀을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머신을 타고 풀 악셀을 때리는 듯한 공포가 밀려온다.

“브레이크, 브레이크!!! 악악!!!”

후배 기자는 나의 단말마적 비명에 ‘아차’ 싶었던지 그제서야 제동을 했다.

‘끼이이익~ 끼이이이익~~ 끼이이이이익~~~’

AMG GLC 43 4MATIC이 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브레이킹이었던 것 같다. 헤어핀 저 멀리 튕겨 나갈 것 같던 GLC는 내 코를 윈드실드에 처박을 듯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코너를 아슬아슬 돌아주었다. AMG가 아니었으면 ‘OMG’가 될 뻔한 순간이었다.

이 후배는 이후에도 급가속과 급제동 ‘신공’만으로 하염없이 트랙을 돌았고, 내 얼굴색은 허옇게 퇴색된 채 첫 트랙 주행은 끝이 났다. 구토와 어지럼증을 참기 위해 잔뜩 인상을 찌푸린 나와 달리 그의 얼굴은 ‘환희’로 가득했다.

“오! 오! 오! 정말 환상적이네요. 멋집니다.”

그는 자신감을 얻은 듯 보였다. 연거푸 감탄사를 내뱉으며 내게 물었다.

“선배님, 이런 맛에 고성능 차를 타는 건가요?”

나는 애써 웃으며 속으로 답했다.

‘아냐 아냐, 절대 아냐 이 친구야. ㅠㅠ’

■결국 구토하고 말았다

콜라와 마들렌 몇 조각이 어지럼증을 잠시 멎게 해주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서킷에는 메르세데스-AMG A 35 4MATIC 세단과 AMG GLB 35 4MATIC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르세데스-AMG A 35 4MATIC 세단이 스피드웨이를 질주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앞바퀴 구동 방식인 A 35 4MATIC 세단에는 2.0ℓ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과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탑재돼 최고출력 306마력(hp), 최대토크 40.8㎏·m가 나온다. 변속기는 8단인데, 제로백은 4.8초다. 고성능 차 입문용 모델로 보면 되겠다.

차에 오르기 위해 트랙으로 나가는데 나를 거의 토하게 만든 그 후배 기자가 다가왔다. 그는 ‘이번에도 같이 타시죠’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애써 그를 외면했다. 진짜 토하긴 싫었다. 도망치듯 AMG A 35 4MATIC 세단 조수석에 올라 고개를 돌리니 한 여기자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 기자는 ‘헬멧 때문에 시트 포지션이 잘 안 잡힌다’고 했다. ‘시트 포지션’은 자동차 업계에서는 나름 ‘전문 용어’다. 운전석 높이, 운전자와 운전대 사이 거리 등을 최적화시키는 작업이다. 이 용어를 아는 만큼 이 여기자는 완전 초보는 아닐 확률이 높다. 희망이 보였다.

이번에도 그녀가 먼저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또 뭔가 찜찜하다. 이 후배 여기자, 운전대를 9시·3시 방향으로 잡지 않는다. 두 손을 껑충껑충 옮겨가며 운전대를 막 더듬는다.

‘아···.’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최대 위기다.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났다···.

A 35 4MATIC 세단이 스타트라인을 떠난다. 이 후배 기자의 운전 솜씨는 GLC를 몬 남자 후배보다는 나았다. 그렇다. 요즘 남자보다 못한 여자는 없···. 그런데 이 여기자 트랙 주행 경험은 많지 않거나 아예 없는 듯했다.

레이싱 서킷이든 공도든 코너를 도는 기본 원칙이 두 가지 있다. ‘슬로 인 패스트 아웃(slow In fast out)’과 ‘아웃 인 아웃(out in out)’이다.

슬로 인 패스트 아웃은 코너 전에 충분히 속도를 줄여 느리게 진입하고, 코너를 벗어난 뒤에는 최대한 가속해 빠르게 탈출하는 테크닉이다. 아웃 인 아웃은 코너를 돌기 위한 최적의 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진입할 때는 코너의 바깥쪽(out)을 타고, 이후 코너의 중심에 바짝 붙은 다음(in), 코너 중심을 지나면서 다시 바깥쪽(out)으로 벗어나야 가장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다.

그녀는 청개구리 같았다. 이 두 가지 ‘코너 공략 대원칙’을 정반대로 시전했다. 코너 앞에서는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인정사정 볼 것 없는 ‘패스트 인’을 감행했고, 헤어핀 초입에서는 아웃 인 아웃 대신 ‘인 아웃 인’ 테크닉을 구사했다.

A 35 4MATIC도 그녀의 운전이 불안했던지 수시로 경고음을 날렸다. AMG 차량 대부분이 늦은 제동 등으로 위험이 감지되면 강력한 비프음을 보내준다. 그날 이 후배 여기자가 운전한 A 35 4MATIC 세단은 단 한 번도 헤어핀의 클리핑 포인트(코너의 가장 가운데), 에이펙스를 밟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따져보면 내 잘못도 크다. 라인을 잘못 타도,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늦게 밟아도 차마 쓴소리는 할 수 없었다. 환갑쯤 되고 보니 이제는 모든 젊은이가 내 자식처럼 귀해 보인다.

“좋습니다(더 바깥으로 돌라고!), 나이스(제발 브레이크 먼저 밟아!), 안정적이네(가속페달 안 밟고 뭐 해!), 엑셀런트(드디어 끝났다!)···”. 이런 나의 코멘트를 그녀는 진심 칭찬으로 받아들였을까.

두 번째 트랙 주행이 끝나자 내 속은 마치 1단에서 곧바로 4단으로 수동 변속한 자동차처럼 심하게 울컥거렸다.

메르세데스-AMG S 63 E 퍼포먼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이날 행사의 백미는 ‘메르세데스-AMG S 63 E 퍼포먼스’ 모델의 택시 드라이빙이었다. 이 차는 지금까지 생산된 S-클래스 가운데 가장 빠른 차다. 최고출력 802마력(ps), 최대토크 124.3kg·m가 나오는 ‘괴물’이다. 제로백은 3.3초로 슈퍼카급이다.

전문 드라이버가 운전한 메르세데스-AMG S 63 E 퍼포먼스는 기자 3명을 태우고도 트랙을 날아다녔다. 3t에 가까운 차량이 경량 스포츠카처럼 코너를 가볍게 잡아먹었다.

이처럼 출중한 퍼포먼스를 가졌음에도 연석이나 요철을 넘을 때 타이어 소음이 실내로 들어오지 않았다. 정숙성을 생명으로 하는 최고급 세단 S클래스의 유전자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메르세데스-AMG S 63 E 퍼포먼스는 우리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에도 타이어에서 하얀색 연기를 내뱉고 있었다. 타이어가 녹아내리는 매캐한 내음이 콧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AMG만큼 빠른 속도로 화장실로 내달았다.

영혼을 갈아 넣어서라도 멋들어지게 달리고 싶었던 ‘환갑의 트랙 주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좋은 사람과 자동차는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다. 행복한 시간을 제공해준 메르세데스-AMG와 두 후배 기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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