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톡톡] ‘마지막 기회’라는 라피더스에 8조 쏟아부은 日 정부… 지원 더 한다는데

최지희 기자 2024. 5.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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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초 2㎚ 칩 개발 목표
日 경제산업상 “추가 지원 고려”
라피더스 사장 “내년 시제품 생산 가까워져”
미 실리콘밸리에 자회사 세우고 협업 모색
“소규모 고객 확보 목표… AI 붐으로 기회”
일본 홋카이도에 건설 중인 라피더스 공장 렌더링 이미지./라피더스 제공

반도체 산업 재건을 외치는 일본이 한국·대만에 뺏긴 왕좌를 되찾기 위해 이른바 ‘드림팀’이라고 불리는 일본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지난달 최대 5900억엔(약 5조원)을 추가 지원하면서 현재까지 승인된 보조금만 9200억엔(약 8조원)에 달합니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지원을 더 늘릴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이토 겐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 19일 일본 훗카이도현 치토세에 있는 라피더스 공장 건설 현장을 찾아 추가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사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걸 확인했다”며 “정부는 상황에 따라 (라피더스에) 추가 지원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인프라 개발 등 공장 가동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지역 사회와 협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맡은 라피더스는 태생부터 나랏돈이 투입돼 세워진 회사입니다. 2022년 10월 일본 정부가 700억엔(약 6000억원)을 지원하고 소니, 도요타, 키옥시아, 소프트뱅크, 덴소, NEC 등 일본 기업 8곳이 총 73억엔(약 600억원)을 출자했습니다. 라피더스의 목표는 오는 2027년 초까지 이전 노드를 건너뛰고 바로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칩을 양산하는 겁니다. 40㎚에 멈춰있는 일본의 반도체 공정 기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에 쓰이는 첨단 칩을 직접 만들겠다는 포부입니다.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 2위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는 현재 3㎚ 공정 칩을 생산 중입니다.

라피더스는 2㎚ 공정 개발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을 보유한 미국 IBM과 손잡고 작년 3월 사실상 첫발을 뗐는데, 이후 기술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고이케 아츠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지난달 공식 석상에서 “2025년 4월 시제품 라인 생산이 가까워졌다”고 말했습니다. 라피더스는 올해 IBM 본사에 엔지니아 100여명을 추가로 파견해 전공정 기술 개발 작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지난달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자회사 ‘라피더스 디자인 솔루션’을 설립해 마케팅 거점을 구축하는 동시에 미 반도체 설계업체와 협력 체제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라피더스의 미래 경쟁력을 두고 일본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라피더스는 당초 미·일 정부 간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를 지렛대 삼아 주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장 강자인 삼성전자와 TSMC가 미 정부의 대규모 지원금을 받아 각각 2026년, 2028년 미국에서 2㎚ 칩을 생산하기로 하면서 본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라피더스의 경쟁력에 의구심이 커진 겁니다.

라피더스는 TSMC·삼성전자와 같은 대형 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비책으로 양적 경쟁이 아닌 다품종 소량 생산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라피더스 디자인 솔루션 대표인 헨리 리처드는 “AI 붐이 첨단 파운드리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며 “경쟁사들은 대규모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지만, 라피더스는 포괄적인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 소규모 고객을 확보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술적으로 반드시 경쟁 우위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업계의 생산 용량엔 한계가 분명해 이것만으로도 라피더스가 성공할 요인은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절치부심한 일본은 라피더스에 화력을 집중할 전망입니다. 과거 일본 정부는 1980년대 초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던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주요 전자 기업들과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해 성과를 낸 경험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약 700억엔을 투입한 이 프로젝트는 1980년대 중반 일본이 D램 시장을 장악하는 데 이정표가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40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과반을 점유하던 일본의 점유율은 현재 10%대 중반까지 쪼그라들었습니다. “경쟁국보다 10년 이상 뒤처져 있는 일본이 반도체 제조 산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히가시 테츠로 라피더스 회장의 말이 3년 뒤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요. 업계에선 우선 내년 예정된 라피더스의 파일럿(시범) 공정이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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