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다크투어’ 안내서 [기자의 추천 책]

이은기 기자 2024. 5. 21.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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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라는 용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서울 '다크투어' 안내서다.

경의선숲길과 용산, 아현, 청계천, 종로 등 눈 감았다 뜨면 새 빌딩이 들어서는 서울 곳곳에서 쫓겨나고 밀려난 사람들을 기록했다.

서울에 새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서는 건, 동시에 그곳에 뿌리내린 누군가를 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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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김윤영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다크투어’라는 용어가 있다. 전쟁과 학살, 재난처럼 공동체가 겪은 아픈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일컫는다. 사람들은 비극적인 역사를 잊지 않고, 또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 현장을 찾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서울 ‘다크투어’ 안내서다. 경의선숲길과 용산, 아현, 청계천, 종로 등 눈 감았다 뜨면 새 빌딩이 들어서는 서울 곳곳에서 쫓겨나고 밀려난 사람들을 기록했다.

서울에 새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서는 건, 동시에 그곳에 뿌리내린 누군가를 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눈물 자국이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마다 남아 있다.” 2009년 1월20일 강제 퇴거에 저항하기 위해 남일당 건물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이 사망한 서울 용산 참사 현장에는 43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철거민 박준경이 떠난 서울 마포구 아현역 부근도 신축 아파트와 ‘마포 개발의 삼두마차’ ‘억대 프리미엄’ 따위 구호만 남았다.

2018년 9월6일 박준경씨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이 강제 철거됐다. 그해 11월30일 머물던 빈집에서도 쫓겨난 박준경씨는 나흘 뒤인 12월4일 전단지 뒷면에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서에 “세 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습니다”라고 적었다.

저자는 “별게 다 재밌어서” 골목골목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한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평소 알던 서울의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번쩍번쩍한 도로와 건물 뒤에서 생계를 빼앗기고 쫓겨난 철거민과 노점상의 얼굴이 떠오른다. 서울역에 홈리스를 내쫓기 위한 시설물이 촘촘하게 놓여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저자는 ‘쫓겨나고 밀려난 기록’으로만 보이는 이 이야기가 “도시가 결코 자연스럽게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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