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내년 산부인과 레지던트 0명"
레지던트 할 인턴, 인턴 할 학생도 없어…병원은 파산 임박
(서울=뉴스1) 천선휴 강승지 기자 = 전공의들의 복귀 데드라인이 지났는데도 의료현장으로 돌아온 전공의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의료계가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당장 내년도 전문의 자격증 취득 대상 전공의만 3000명에 이르고 가뜩이나 부족한 필수의료과 전공의도 1400여 명에 달해 인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이탈한 지 3개월이 도래했지만 현재 전국 수련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전공의(레지던트) 수는 600여 명으로 전체 레지던트 1만여 명의 약 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수치도 처음부터 이탈하지 않은 전공의까지 포함돼 있어 복귀한 인원은 복지부에서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공의 수련 관련 법령에 따라 내년도 전문의 자격 취득을 위해서는 수련병원을 이탈한 지 3개월이 되는 시점까지 복귀해야 한다. 쉽게 말해 레지던트 4년 차(3년제 진료과목은 3년 차)가 병원을 떠난 지 3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당장 내년 전문의 시험을 치를 수 없고, 수천 명의 전문의 배출이 안 된다는 뜻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내년도 전문의 자격증 취득 대상 전공의는 총 2910명이다. 이들 중 필수의료로 통용되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신경외과, 신경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는 1385명으로 약 47.6%에 이른다. 안 그래도 부족한 필수과 전문의 1400명이 배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여전히 대다수의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의 대처들에 실망감이 쌓여 더욱 돌아갈 마음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반응이다.
한 사직 전공의는 "수련을 거의 다 받은 고연차 전공의들은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일부 복귀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다른 전공의들은 이미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해왔던 의대교수들도 막상 전공의 장기 이탈이 현실화하자 "전세계 자랑거리던 K-의료가 끝났다"고 우려했다.
먼저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대학병원들은 당장 고난도 수술을 가능한 한 축소하고 연구 기능도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최소 진료만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김영태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아주 최상위의 진료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잘 하지 못하던 수술을 해오던 우리 K-의료가 3개월 만에 붕괴됐다"며 "훌륭한 첨단 의료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더 꽃을 피워야 하는데 회복하는 데만 10년 이상 걸리지 않을까 싶다"고 한탄했다.
당장 병원의 존폐 위기도 큰 문제다. 전공의가 떠난 지 석 달째지만 이미 빅5 병원을 비롯한 많은 병원들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의료계는 지방이나 작은 규모의 상급병원은 올여름부터, 대형병원은 가을부터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병원의 경영 악화는 신규 병원 인력채용은 물론 헬스케어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보건의료계가 그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의뿐만 아니라 당장 인턴을 마치고 내년에 레지던트를 할 전공의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의대 졸업 후 1년간의 인턴을 거치고 이후 레지던트가 되어서 산부인과, 안과 등 본인이 전공할 과를 선택해 수련해야 하는데 의대증원 사태가 터지면서 올해 인턴 지원자들 대부분이 수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김영태 이사장은 "당장 내년에는 산부인과에 들어올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인턴들에 대한 정책적인 해법도 있어야 한다. 내년에는 정말 단절이 돼버리는데 일반의가 고난도가 아닌 치료나 시술은 할 수 있겠지만 최첨단, 고위험 분야는 붕괴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다. 박 차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전공의들이 제때 수련을 마치지 못해서 전문의 배출이 지연되면 당연히 전체적인 인력 양성 체계에 악영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병가 등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수련병원에 소명함으로써 추가 수련기간이 일부 조정될 여지는 있다"며 일말의 퇴로는 열어두고 있다.
다만 전문의 배출이 되지 않을 경우 군의관, 공보의 모집에도 영향을 미칠 거라는 우려에는 "군의관, 공보의는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도 있다"며 "군대에 갈 시점이 되면 군대에 갈 때 군의 또는 공보의 자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 군의관, 공보의 숫자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의대생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에 따르면 의대생 1만 8348명 중 99.7%가 현재 휴학 또는 수업 거부를 하고 있다.
이들이 집단 유급을 당할 경우, 내년에 인턴을 뽑지 못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 또 올해 유급된 1학년생 3058명과 증원된 2000명을 포함한 2025학년도 신입생 5058명이 함께 1학년 수업을 듣게 된다. 대학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인원이다. 이 경우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인증을 받지 못해 폐교에 이르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과대학을 2, 4, 6년 단위로 평가하는데 인증을 받지 못하면 의사시험 응시를 못하고, 서남대 의대처럼 폐교하게 된다"며 "아마 증원한 의과대학 2, 3곳은 인증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학교육협의회 입학전형심의위는 최대 6월 중순까지 결정을 연기할 수 있다"며 "지금 교육부가 일정을 막 밀어붙이는데 의료정상화를 위해서 입학정원 타협여지를 가지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들도 그 누구보다 의정 갈등이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정부는 대형병원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매일 발표하는데 지금 대형병원에서는 새로운 암 환자를 받아주지 않는다. 개복수술도 하지 않는다"면서 "2000명보다 중요한 건 고통받는 환자들이다. 정부가 먼저 다가가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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