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반세기 만에 재탄생한 '인간 세탁기'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2024. 5. 21.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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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54년 전인 1970년에 열린 오사카 엑스포에서 지금은 파나소닉에 합병된 당시 일본 굴지의 전자회사 산요(SANYO)전기가 전격적으로 발표한 '인간 세탁기'가 세간의 화제였다. 제품을 소개하는 도우미가 밀폐된 투명한 기계에 직접 들어가 빨래가 아닌 사람이 세탁되는 장면이 시연되는 영상을 보면 우습기도 하고 이걸 왜 만들었나 의아해진다.

이 말도 안 되는 '인간 세탁기'가 반세기 동안 진화하면서 중증장애인이나 거동이 힘든 노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장치로 재탄생했다.

올 초 종업원 15명 규모의 중소 전자업체 시리우스(Sirius)는 간호분야에서도 과중한 업무로 여기는 목욕보조에 대한 간병인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누구나, 언제나,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는 간병세척 기계인 '스위틀보디'(switle BODY)를 발표했다.

이번에 개발한 스위틀보디는 시리우스의 기술력으로 초고령사회의 간병과제 해결을 목표로 한 제품으로 목욕이 어려운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침대에 누워 '샤워'가 가능한 첨단장비다.

본체 크기는 23㎝×45㎝×25㎝, 무게는 5.5㎏으로 휴대가 용이한 이 제품의 본체는 세척용 청수탱크와 세척 후 물을 흡수하는 하수탱크, 특수세제용 세제탱크 세 부분으로 나뉘고 거기에 샤워헤드가 장착된 호스가 연결돼 있다.

사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주전원을 켜고 난방 스위치를 누른 후 온도조절 스위치로 섭씨 38~42도 온도 중 하나를 선택한 다음 호스 끝에 있는 샤워헤드의 온수 주입버튼과 특수비누 주입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온수는 신체가 씻겨지는 순간 호스에 의해 바로 흡입돼 하수탱크로 전달되기 때문에 침대시트를 전혀 적시지 않는다.

또한 샤워헤드를 헤어샴푸 전용으로 교체하면 머리도 감을 수 있어 간병인 혼자서도 모든 작업이 가능해 매우 유용하다. 이 제품은 18만4800엔(약 160만원)의 가격이 책정됐는데 2025년 4월부터 간병보험 적용이 목표여서 적용되면 월 1000엔(약 8700원)으로 렌탈이 가능해진다.

지금까지 공기청정기, 가습기, 청소기, 조리기구 등을 주력으로 판매한 이 회사가 2017년 출시한 세정기 헤드가 누적 7만대 이상 판매되는 히트상품이 되면서 이를 전격적으로 활용해 이번 '인간 세탁기'를 개발하게 됐다.

재미 있는 것은 이 회사를 이끄는 가메이 류헤이 사장이 바로 반세기 전 '인간 세탁기'를 발표한 산요전기 출신이라는 점이다.

산요전기 설립자 이우에 도시오 회장은 생전에 줄곧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간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준비하자고 했는데 반세기를 지나 이제 실제로 현실이 됐는데 그 주인공이 산요에 근무한 직원 출신인 것이다.

회사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 사라졌지만 훌륭한 개발철학과 정신은 살아숨쉬며 계승발전된 내용이 경이롭고 놀라울 따름이다.

연초에 열린 제품 발표회에는 산요 설립자 아들 이우에 사토시 전 회장이 직접 방문해 산요전기의 '산요'는 원래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3대양을 의미한다며 세계화를 격려하고 가메이 사장은 이 사회적 상품을 전 세계 간병, 목욕, 물 등의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실제로 현재 이 제품은 해외진출을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베트남, 중국, 대만 등에서는 이미 시범운용을 시작했고 올해 3월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의료기기 전시회에 출품하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1리터의 소량으로 목욕이 가능한 특징을 살려 지진 등 재해지역에 공급되면서 물이 부족해 목욕을 할 수 없었던 피난민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국내 홈쇼핑 히트상품으로 등장한 로봇청소기 베스트셀러는 놀랍게도 중국이 개발한 제품들이다. 가전왕국 한국 업체가 시장조사에 실패한 탓이라고 한다. 50여년 전에 예견한 '간병시장'이 눈앞에 크게 와 있다. 언젠가 '인간 세탁기'가 홈쇼핑 방송에 나온다면 '메이드 인 코리아'이길 기대해본다.(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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