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32] 철로 만든 꽃
1997년 9월 10일, 미국 미술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1936~2024)의 대작이 서울 포스코 타워 앞에서 공개됐다. 높이 솟은 30t의 육중한 스테인리스스틸 덩어리가 소용돌이치듯 뭉쳐 있는 조형물은 제목 그대로 꽃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처참하게 일그러진 비행기의 잔해 같기도 하다.
당시 스텔라는 이미 현대미술의 전설이었다. 1960년대에 사각 프레임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다각형 회화를 시도했고, 이윽고 미니멀리즘이라는 새로운 사조의 물꼬를 텄다. 1970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는 순식간에 현대미술의 흐름을 바꿔놓은 그의 업적을 기려 고작 30대 중반의 나이에 불과했던 스텔라의 회고전을 마련했을 정도다. 스텔라에게 철과 유리로 날렵하게 지어진 눈부신 마천루 포스코 타워는 첨단 산업과 기술로 무장한 인류 진보의 상징이었다. 그 앞에 ‘꽃’을 둔 건 철의 근원 또한 자연에 있는데, 자연 상태에서는 여러 원소가 무질서하게 결합한 상태로 존재하는 수백 개의 광물에서 순수한 철을 뽑아내는 포스코의 기술력에 대한 찬사였다. 그러나 작품을 제작하던 중, 스텔라는 친구의 어린 딸 ‘아마벨’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는다. ‘꽃’이란 끝내 피어나지 못한 생명에 대한 애도가 됐고, 나아가 발전을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역경과 희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포스코야말로 이 작품으로 역경을 겪었다. 당시 대중으로부터 ‘흉물스럽다’는 지탄을 받았고, 16억원이라는 고액을 예술에 썼다는 이유로 감사(監査) 대상이 된 것. 근 30년이 지난 지금, 작품은 테헤란로의 랜드마크가 됐고, 얼마 전 작고한 스텔라의 작품가를 생각하면 16억원은 오히려 감사(感謝)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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