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등한 관계” 외친 대만총통…중국은 “명백한 도전행위”
라이칭더 총통은 귀빈석에 평범한 각계 시민 대표 좌석을 마련하고, 일반석에 정부 전현직 공무원들이 앉도록 했다. 로열석 곳곳에 각양각색의 전통의상을 입은 해외 화교들과 대만 중남부 지역 타이난에서 온 사람들이 보였다. 가운데 뒷자리에는 라이칭더와 연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새 총통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라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전임 차이잉원 정권의 유지를 이어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초대 여성총통’이었던 차이잉원 집권 8년, 친미·독립 성향의 민진당 집권이 이어지면서 대만이라는 나라는 물론 대만인들의 정체성도 확 달라졌다. 중국과 관계 악화로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던 8년이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다. TSMC라는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 덕분에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국제교류가 늘었고, 해외에 있던 대만 자본이 들어오면서 유동자금도 늘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젊은 층의 실망감이 커졌다.
외교적으로는 미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일본을 중시하는 정책을 유지했다. 동남아 국가를 포함한 태평양 연안 국가 및 남미, 유럽 등 대만과 협력이 필요한 국가와 정상 외교관계 외에 비공식 외교관계(반도체 및 투자 외교)에 주력해 왔다.
이 같은 기조를 계승한 라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우리는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지위에 안정적으로 서서 지정학적 변화가 가져온 비즈니스 기회를 잘 포착해 반도체·AI·군사·보안·차세대 통신 등 ‘5대 신뢰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대만이 ‘드론 민주주의 공급망’의 아시아 중심지가 되게 하고, 차세대 통신 중저궤도 위성을 발전시켜 세계 우주 산업으로 진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30분 가량 이어진 총 5440자 분량의 취임 연설에서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민주’는 모두 31회 언급됐다. 차이잉원 전 총통의 2016년(24회)과 2020년(9회) 연설 때보다 늘어난 것이다.
‘대만’도 79회로 2016년(41회)과 2020년(49회) 언급 빈도를 뛰어넘었고, 대만을 뜻하는 ‘중화민국’ 역시 9회로 2016년(5회)·2020년(5회)보다 많이 언급되는 등 중국과의 차이점을 더 부각했다는 평가다. 차이잉원 정부가 도입한 국호인 ‘중화민국 대만’도 3회 쓰였다.
차이잉원 전 총통의 앞선 두 차례 취임 연설 때는 ‘중국’이나 중국을 의미하는 ‘대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번 취임 연설에는 ‘중국’이 총 7회 언급돼 눈길을 끌었다.
중국은 이날 라이 총통이 민주주의를 거듭 언급하며 중국과 차이를 강조한 취임사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대만과 중국은 서로 종속 관계에 있지 않다’는 라이 총통의 발언에 대해 “대만 독립은 어떠한 명분이나 구실이 될 수 없다”며 “대만 독립 활동은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의 중국’ 원칙은 국제 사회의 보편적인 합의일 뿐 아니라 국제 관계의 기본 규범”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대만이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 행위이자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중국은 반드시 대만과의 통일을 이룰 것이고 누구도 이를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양안갈등 국면에서 한국과 대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나왔다. 마상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가톨릭대 교수)은 지난 16일 대만 중앙연구원 정치연구소에서 열린 ‘라이칭더 시대의 양안관계’ 세미나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서 역내국가들의 역학관계는 복잡하다. 한국과는 전통적 역사관계와 문화, 공공외교, 미국 안보이슈 등에서 구조적으로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 라이 대만 중앙연구원 박사는 “앞으로 양안관계는 ‘차이잉원 시대 정책의 2.0버전’으로 급속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봤다. 김동찬 연세대 교수도 “양안문제의 협력과 한반도 문제의 안정이 보이지 않는 연관관계에 있기에 역내 정치에서 각자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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