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시대정신] 길가메시의 꿈
신화와 픽션 넘어 과학의 힘으로
불로불사의 실마리 찾고 있지만
수명연장의 끝은 과연 축복일까
지인을 만날 때마다 권하는 전시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이다. 1월 종료로 알고 있었는데 9월까지 연장됐다는 소식에 한 번 더 느긋하게 둘러봤다. 수메르,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등등 이름만으로도 역덕(역사덕후)의 심장을 뛰게 하는 수천 년 전 기록들을 이렇게 가깝게, 게다가 무료로 만날 수 있다니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싶은 전시다.
이 최초의 영웅 서사시의 끝은 어떠할까.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신격화된 길가메시는 괴물들을 물리치며 힘과 권력을 자랑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는다. 거침없이 살아온 자신 앞에도 유한한 생이 가로막고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마지막 상대인 죽음을 이기기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되는데 그 결말이 묘하다. 고생 끝에 깊은 물속에서 불로초를 캐지만 잠깐 쉬는 사이 뱀이 먹어버려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다. 불멸의 꿈은 꿈처럼 사라지고 이야기만 남았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 ‘불멸’에서 필멸(必滅)의 인간이 욕망하는 불멸(不滅)을 예술, 사랑, 명성 등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영혼의 불멸을 넘어 육체의 불멸을 꿈꾼다. 길가메시가 그랬고 진시황이 그랬다. 이 서사는 지속적으로 변주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일리언 시리즈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에도 미래판 길가메시와 진시황이 나온다. 영화는 인공지능 로봇의 창조자인 초거대기업의 수장이 생명 연장을 위해 인류의 창조자를 찾아 먼 우주로 떠나는,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이야기다. 인공지능과 우주개발을 이끄는 억만장자 기업인이라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지 않은가.
현재 세계 경제와 미래 기술 과학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의 수장들 얘기다. 실제로 이들이 사재를 털어가며 몰두하고 있는 분야가 노화 방지 기술이다.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 챗GPT의 아버지 샘 올트먼 등이 관련 스타트업에 조 단위의 돈을 쏟아붓고 있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메타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도 실리콘밸리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브레이크스루 상(Breakthrough Prize)’에 매년 거액을 기부한다. 인간의 삶을 연장하는 혁신적인 돌파(breakthrough)를 이룬 생명과학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상이다.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또한 항노화 연구에 매년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을 지원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된 바 있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장수인으로 기록된 사람은 1997년, 122세의 나이로 사망한 프랑스 여성 잔 칼망이다. 관련 연구자들은 이제 120세를 넘어 150세 시대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노화를 늦출 뿐 아니라 역노화 시대도 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나이 든 세포를 어린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술이 핵심이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수명 연장을 목표로 설립된 구글의 자회사 캘리코는 늙지 않는 동물, 벌거숭이두더지쥐에서 불로불사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마법 같은 항노화 기술들에 대해 학계의 우려도 공존한다. 기술적으로 과장됐으며 상업적으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 안에 인간 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인류는 노화를 억제할 수 있는 시대, 죽음이 선택이 되는 시대라는 이례적인 문명의 분기점 앞에 서있다.
기록으로 남은 인류 최초의 순간부터 인간은 영원불멸의 삶을 꿈꿔왔다. 길가메시가 찾아 헤매던, SF 영화 속에서나 상상해 보던 그 꿈이 이제 신화와 픽션을 넘어 과학이란 배를 타고 새로운 시대의 물살을 가르고 있다. 기존의 수명에 맞춰진 생의 공식은 거친 격랑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축복의 섬에 닻을 내릴 수도, 혼돈과 재앙의 폭풍을 견뎌야 할 수도 있다. 잃어버린 길가메시의 꿈에 도전하는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안내할지 궁금해진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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