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영국 상식부 장관이 촉발한 ‘상식이란 무엇인가’
▷프랑스어에는 영어의 ‘코먼 센스(common sense)’와 달리 ‘봉 상스(bon sens)’라는 말이 있다. 양식(良識)이라고 번역한다. 상식도 양식도 일본에서 번역된 말이다. 일본 철학자 미키 기요시(三木淸)는 양식을 상식의 상위 개념으로 본다. 상식을 무오류의 것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상식에 의문을 지닌 지혜를 양식이라고 했다. 실제 영어권과 불어권에서 쓰이는 용법에 맞는 해석인지와는 별도로 상식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는 일리가 있다.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불확실성의 시대’란 책이 한국에서 널린 읽힌 미국 비주류 진보 경제학자다. 그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면서도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생각을 지칭하기 위해 사회 통념(conventional wisdom)이란 말을 사용했다. 상식을 사회 통념과 구분하고 나서 보면 상식은 양식일 때만 제대로 된 상식으로 성립할 수 있다. 현실에 있어서는 사회 통념에 불과한 것이 상식이란 말로 선동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말 상식부 특임장관(Minister for Common Sense)직이 신설돼 에스터 맥베이란 여성이 임명됐다. 이 자리의 공식 명칭은 무임소(無任所) 장관이다. 그러나 리시 수낵 총리가 정부 부처가 영국의 상식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는 맥베이 장관의 판단을 따르라고 해서 상식부 장관이란 별칭을 얻었다. 상식은 본래 자명한 것이어야 하지만 오늘날에는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사회 통념에 불과한지 구별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런 부서까지 만들었을 것이다. 영국인 특유의 실용성이 느껴진다.
▷맥베이 장관이 공무원 신분증을 목에 걸 때 정부가 제공한 표준 목줄 외에는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깔이 들어가거나 팔레스타인 국기가 그려진 목줄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직이 정치적 행동주의에 오염되는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상식이라는 게 상식부 장관이 정하면 상식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다만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가 아무리 불분명해졌어도 무엇이 상식인지 따져보는 사회는 ‘법만 저촉하지 않으면 됐지 상식은 무슨 필요가 있냐’는 사회보다는 훨씬 건강해 보인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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