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시인’은 왜 자신을 그었나… 인간, 그 영원한 이방인에 대하여 [2024 칸영화제]
※초반 도입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는 ‘칼을 든 시인’이었습니다. 소련 시절의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을 건너가면서도 그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 실망해 다시 러시아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역시 실망하지요.
‘이 세계에 인간의 완전한 이상을 실현할 장소가 없다’는 절망과 환멸 때문에 그는 칼로 타인을, 그리고 자신을 베고 찌르기 시작합니다. 올해 제77회 프랑스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영화 ‘리모노프: 더 발라드’ 설정입니다. 이 영화를 20일(현지시각) 칸영화제 뤼미에르 극장에서 관람하며 살펴봤습니다.
리모노프는 소련 시절의 러시아(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을 시인으로 여겼지만, 공산주의 사회 내부에서의 예술이란 언제나 전체주의의 이상 아래 놓여 있었고, 예술가란 작자들도 저항보다 순응에 익숙했습니다. 리모노프는 모스크바 체류 중에 평생의 연인이 될 엘레나와 사랑에 빠지고, 둘은 즉시 뉴욕으로 건너갑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에서의 삶도 엉망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초호화 부티크가 즐비한 소비의 천국이자 마약과 일탈과 일상화된 공간이었으니까요.
리모노프는 ‘공산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를 동시에 경험한 인물’로서 자신이 보는 사회의 현실과 이상을 책으로 써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하지만 세상은 장밋빛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모델 일을 택한 연인 엘레나가 ‘자본주의 성(性)문화의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방세계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다시 소련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고국은 열광하지만, 그것 역시 리모노프에겐 증오심 가득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는 냉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킬 사회로의 당 활동과 전복적 시도(테러 등)을 꿈꿉니다. 그는 결국 수감되고 유배생활 끝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봅니다. 그 사이에 소련은 사라졌지만 말입니다.
주인공 리모노프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냉전 시대의 두 체제를 동시에 경험했고 이를 글과 삶으로 알린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절반으로 쪼개진 두 개의 세상 속에서, 자신이 머무를 장소가 없다는 것, 리모노프의 그런 고민은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에게도 유효한 것만 같습니다.
그는 저항가였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낭만적인 작가였습니다. 벤 위쇼는 깊게 따지고 보면 결국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불안을 표정과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그가 독백으로 “I’m nowhere(나는 어느 곳에도 없다)”라는 말은 이 영화의 중심을 이룹니다.
‘리모노프: 더 발라드’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인 경쟁 부문 진출작입니다. 세계적 명작가 에마뉘엘 카레르의 동명소설을 원작 삼았다는 점에서도 화제입니다. 최종 수상 결과는 25일(현지시각) 저녁 발표 예정입니다. 그날 벤 위쇼는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요.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쏟아지는 주문에 매일 연장근무”…즐거운 비명 지르는 ‘이 회사’ - 매일경제
- [속보] “이란 대통령 등 헬기 탑승자 전원 사망 추정” - 매일경제
- “출국금지까지 신청했는데”…‘음주운전 뺑소니’ 김호중 공연 강행하는 이유 - 매일경제
- [단독]‘직구 금지’했으면 특수부대도 큰일날뻔…야전용 물품 미국 유럽산 천하 - 매일경제
- “금리 내리면 주식보다 빨리 움직인다”…잠잠하던 ‘이것’ 들썩 - 매일경제
- “한국 IT기업 성지 판교 아니었어?”...삼성·쿠팡 있는 이곳은 - 매일경제
- “정신 차리니 침대 위”…버닝썬 피해女, 입 열었다 - 매일경제
- [속보] 이란 당국자, 라이시 대통령·외무장관 사망 확인<로이터> - 매일경제
- “이정재 걸어다니는 기업되겠네”...오징어게임2 출연료에 ‘헉’ - 매일경제
- EPL 역대 6호 3번째 10골-10도움 달성에 UEL 확정까지... 캡틴 손흥민, 시즌 최종전 두 마리 토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