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 측근’ 부통령이 대행…이란, 권력공백 혼란 불가피
안으론 민심 악화·경제 파탄
밖으론 이스라엘과 무력충돌
‘정권 정당성’ 위기 속 또 악재
종교지도자 후계자도 안갯속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63)의 헬기 추락사는 가뜩이나 불안정했던 이란 국내 정서와 중동 정세가 또 한 차례 출렁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탄압과 경제 파탄으로 악화된 민심 속에서 차기 대통령과 최고 종교지도자의 후계자를 이른 시일 내 찾아야 한다. 가자지구 전쟁에 휩쓸린 중동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이란 헌법은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 사망하면 최고지도자의 승인을 거쳐 제1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과 직무를 맡도록 규정한다. 또한 부통령, 국회의장과 사법부 수장은 권한대행 임명 이후 50일 이내로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모하마드 모흐베르 제1부통령(69)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에서 대통령은 최고 종교지도자의 뒤를 잇는 권력 2인자로 꼽힌다. 강경보수 성향이던 라이시 대통령은 생전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5)의 측근이자 후임으로 꼽혔단 점에서 존재감이 컸다. 따라서 이제 이란 정계는 차기 대통령과 차기 종교지도자를 동시에 물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권한대행이 될 모흐베르 부통령은 라이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하메네이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최고지도자와 연계된 투자기관인 세타드(Setad)의 대표로서 ‘하메네이의 자금줄’로 활동했으며, 핵 또는 탄도미사일 활동에 연루된 혐의로 과거 유럽연합(EU)에서 제재를 받은 적이 있다.
1989년부터 집권 중인 하메네이는 고령으로 인한 노환과 지병을 앓고 있어 후계자 확정이 시급하다. 후계자로는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55)가 라이시 대통령과 경쟁 구도를 형성했던 만큼 가장 유력하게 꼽힌다. 최고 종교지도자는 국민의 직접선거가 아닌 임기 8년의 성직자 86명으로 구성된 전문가회의에서 선출한다. 모즈타바가 최고 종교지도자 자리를 세습할 경우 전문가회의를 비롯한 이란 사회가 ‘이슬람혁명 정신에 어긋난다’며 반기지 않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가디언의 패트릭 윈투어 에디터는 “모흐베르를 차기 대통령감으로 보는 시선은 거의 없다”면서 “이란의 최고지도부에게 50일이란 시간은 대통령이자 어쩌면 최고 종교지도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을 추리기엔 짧은 시간”이라고 짚었다.
이란은 대내외적으로 격변의 시기에 대통령 사망이라는 악재가 덮친 모양새다. 국내적으로 보면, 이란에선 2022년 대학생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가장 큰 시위가 번졌다. 현재 시위는 잦아들었지만 억압적 통치를 향한 반감은 남아 있다.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물가상승률이 30%를 넘나드는 암울한 경제도 정권 위협 요인이다. 국제위기그룹(ICG) 알리 바에즈 이란 담당 국장은 뉴욕타임스에 “이란 정권은 국내에서 정당성 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이란 당국이 국내에서 얼마나 인기가 없는지를 보여준다”면서 “이란은 이 일대에서 이스라엘 및 미국을 향해 칼날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라이시 사망은) 이란엔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중동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이란은 오래도록 ‘이스라엘의 숙적’이자 ‘팔레스타인의 후원자’로 자국을 규정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지자 이란은 헤즈볼라를 비롯한 무장세력을 지원함으로써 이스라엘에 압박을 가하는 ‘그림자 전쟁’을 수행했다. 이는 결국 지난 4월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폭격을 계기로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는 직접적인 무력충돌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라이시 대통령 추락사에 이스라엘이 연루됐다는 증거는 없다. 이스라엘 측은 헬기 추락과 라이시 대통령 사망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차기 이란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JCPOA) 협상 재개를 비롯한 핵 개발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난해부터 협상이 다시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며 전망이 흐려졌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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