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전쟁에 반대할 자유
유학 시절에 강의 조교 월급만으로 부족해 기숙사 부사감을 한 적이 있다. 다양한 사건을 경험했지만 지금도 생생한 것은 누군가가 어떤 유대계 학생 방문에 ‘나치 문양’(Hakenkreuz)을 붙여놓고 달아난 일이다. 소문은 몇 시간 만에 대학 전체로 퍼졌다. 학교 당국에서는 절차에 따라 그것을 붙인 학생을 찾아내 바로 정학시켰다. 표현의 자유가 잘 보장되는 미국 사회지만 학교는 유럽의 프로축구에서처럼 인종차별적인 일에 대해서는 좀 엄격한 편이다. 그래도 그 학생은 감옥에 가지는 않았다. ‘히틀러 경례’를 형사 처벌하는 독일에서라면 최소한 벌금형은 받았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전쟁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와 ‘캠핑 농성’이 전국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 캠퍼스가 정치적인 이유로 소란스러운 것은 오래간만이다. ‘반유대주의’ 및 ‘외부세력’ 프레임으로 학생들의 행동을 제어해보려 하지만 적지 않은 유대계 학생들도 집회에 가담하고 있다. ‘1968년’의 생생한 에너지가 다시 살아난 느낌이다.
1980년대 대학생들은 레이건의 8년 통치하에 자라난 ‘공화당 키즈’가 다수여서 국제적 이슈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 이유를 1960년대의 민권 및 반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진보적 부모에 대해 자녀들이 갖는 특유의 반항심리에서 찾는 지식인들도 있었다. 진보적인 학생들은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개입에 항의하는 집회를 자주 열기는 했지만, 대다수가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에 미국 대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인종차별 및 분리정책)에 대한 항의 집회였다.
최근 미국 캠퍼스 집회에서 이스라엘과 군수업체로부터의 ‘투자 회수’(divest)라는 구호를 접할 수 있는데 그 원조는 남아공에 대해 미국 정부나 기업은 손을 떼라는 외침이었다. 27년을 복역한 넬슨 만델라와 동료들은 결국 1990년에 석방되었고 우여곡절을 거쳐 만델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다이베스트’ 운동도 남아공의 민주화와 극단적 인종 차별 폐지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이번의 대학생 시위는 갑작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960년대 후반부터 저변에 축적된 저항의 에너지 덕에 가능한 듯하다. (한국의 캠퍼스는 왜 이리 조용할까?)
내가 이번 일에서 특히 관심을 두는 것은 학생들의 정치적 의사 표출 문제다. 평화적 집회를 경찰력으로 진압하고 학생들을 체포한 것은, 망설이던 학교 당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교칙과 법률에 근거했으리라 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은 집회의 권리와 의사 표현의 자유를 무시한 헌법 위배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미국 헌법 제1 수정안은 “언론 및 출판의 자유, 민(民)이 평화적으로 집회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 수 없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구속력은 없지만, 유엔에서 1948년에 기적적으로 통과된 ‘세계인권선언’도 “모든 인간은 의사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갖는다”(제19조), “모든 인간은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갖는다”(제20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가 많긴 하지만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미국은 여전히 배울 게 많은 나라다. 가령 이미 연방대법원은 1943년 ‘웨스트버지니아 교육위원회 대 바네트’ 소송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및 ‘충성맹세’를 강요하는 것은 헌법 제1 수정안에 위반된다고 보았다. “다를 수 있는 자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유의 본질을 가늠하는 것은 기존 질서의 핵심을 건드리는 일에 대해 다를 수 있는 자유다.” 전쟁 와중에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미국의 저력을 보여준다. 국기 소각 등 유사한 행위를 처벌하려는 시도는 1984년, 1989년에도 있었지만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 쪽에 손을 들어줬다.
평화적 집회 및 표현의 자유는, 인종·종교·성별·성적 지향 등에 의거해 증오를 표출하며 폭력을 선동하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의 범죄화와 모순될까? 세계적인 추세는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면서도 동시에 일정한 선을 넘어서는 특정한 집단, 특히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증오 발언은 규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서도 ‘폭력을 선동’하는 혐오 발언은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 의사 표현의 자유가 폭력적 증오까지 포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통령실 “김 여사, 다음 순방 동행 않기로”…이후 동행 여부는 그때 가서 결정
- 명태균 “청와대 가면 뒈진다고 했다”…김건희에게 대통령실 이전 조언 정황
- 김예지, 활동 중단 원인은 쏟아진 ‘악플’ 때문이었다
- 유승민 “역시 ‘상남자’···사과·쇄신 기대했는데 ‘자기 여자’ 비호 바빴다”
- [제주 어선침몰]생존자 “그물 들어올리다 배가 순식간에 넘어갔다”
- [트럼프 2기] 한국의 ‘4B’ 운동이 뭐기에···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관심 급증
- ‘프로포폴 불법 투여’ 강남 병원장 검찰 송치···아내도 ‘중독 사망’
- 서울대 외벽 탄 ‘장발장’···그는 12년간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 주말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교통정보 미리 확인하세요”
- 조훈현·이창호도 나섰지만···‘세계 유일’ 바둑학과 폐지 수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