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꿀벌 실종사건의 주범은 기후변화?
벌을 연구하면서
기후변화의 무서움을
더 절실히 깨닫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연구와
많은 다른 연구들은
기후변화를
벌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벌이 사라지면
당신의 모닝커피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지구생태계가
무너진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교수님, 왜 꿀벌 연구하시나요?” 최근 들어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아무래도 내가 곤충을 연구하는 곤충·생물·생태학자가 아니라 기후변화, 특히 탄소순환을 주로 연구하는 기후과학자이기에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벌이 무섭다. 어릴 때 친구들이랑 벌을 잡다가 쏘인 트라우마로 인해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나에게는 밀림의 제왕 사자보다 무서운 존재다. 그런 내가 벌들과 함께 지내는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벌의 실종 사건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이슈이지만, 아직 뚜렷한 원인을 못 찾고 있다. 그래서 만약 꿀벌 문제가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면 사람들이 좀 더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우리는 무섭고도 험난한 꿀벌과의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우려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꿀벌의 실종과 기후변화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하나둘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2018년 서울대에 부임하고 2023년 여름 우리 기후연구실에서 두 명의 첫 박사가 나왔다. 한 명은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를 연구하는 박사 그리고 또 한 명은 벌을 연구하는 박사이다. 이 정도면 내가 얼마나 벌에 진심인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이다. 내가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방식은 기후변화가 왜 발생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기후변화가 인류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파악해서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기후변화의 원인에 해당하는 온실가스와 같은 탄소순환 연구, 기후변화의 결과에 해당하는 자연생태계 영향 연구를 같이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기후변화의 해결책이라면 이런 접근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생태계 구성 요소 중 벌을 택한 이유는 앞서 말한 대중의 관심사가 매우 크다는 점도 있지만, 벌은 육상생태계 나아가 지구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 구성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벌은 수분매개자로서 식물의 생장 및 영양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벌이 없다면 수분매개가 필요한 식물은 사라질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식물이 사라지면 그 식물에 의존하는 여러 동물의 생존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 대다수가 벌과 같은 수분매개자가 필요한 작물이다. 특히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커피, 그리고 지금 가격이 치솟으며 애플레이션(apple+in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사과 등도 마찬가지다. 바꾸어 말하면 벌이 사라지면 내일 아침 커피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벌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용의자들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벌이 본격적으로 채밀하러 나가는 봄철 같은 경우 미세먼지가 벌의 시정을 방해하여 비행에 영향을 끼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참고로 여기서 미세먼지를 주목한 이유는 미세먼지가 기후변화 유발 물질인 탄소 기반 물질을 통해 생성되기 때문이다. 벌은 기본적으로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풍경을 보고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태양과 벌 사이의 편광을 보고 자신의 위치를 기억하고 채밀한다.
미세먼지 높으면 귀가 시간 2배로
그래서 벌의 등에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를 부착하여 비행시간을 측정한 결과 대기 중 미세먼지가 높은 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 보통 40분이면 돌아와야 하는데 거의 80분 가까이 걸린 것이다. 미세먼지로 편광이 소멸하거나 약해지면 집으로 찾아오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바로 벌이 사라지는 것과 연결되지는 않지만, 더 많은 외부 위협 요인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걸 뜻한다. 또 한편으로는 벌의 체력을 고갈시켜 전체 라이프사이클을 유지하는 에너지가 결핍될 수 있기에 질병에 대한 취약성이 커질 수 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폭염과 폭우 같은 이상기후가 등장한다. 이제는 너무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해 당연한 듯 찾아온다. 그래서 이러한 폭염과 폭우에 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기후변화에 벌들이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이들이 무엇에 취약하고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 이해해야 우리가 도울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험실이 아닌 야외 벌통 안에 첨단장비를 설치하여 벌통 속 내부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그리고 벌의 체온을 측정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고 기온이 올라가더라도 벌은 항상성(서식지를 살아가기 위한 최적의 환경으로 유지하는 것)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잘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폭우를 동반한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벌통 속 데이터에 특이한 시그널이 나타났다. 미안한 마음이지만 드디어 기다리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벌은 벌통 내 항상성을 위해 폭우가 내리면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벌이 3가지 변수를 모두 통제할 수 없기에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우리가 측정한 데이터에 따르면 벌은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산화탄소를 포기한 결과가 나타났다. 습도와 온도는 빠르게 일정한 값으로 조절이 되는데 벌통 내부의 이산화탄소는 매우 높아진 것이다. 벌이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벌통 내부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 이 부분은 곤충 생리 분야이기에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다른 연구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해외 연구 사례를 보니, 고농도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실험실에서 곤충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결과 고농도 이산화탄소에 노출되면 일벌의 수명은 단축되고 여왕벌은 산란율이 저하됐다. 사람은 보통 방 안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으면 수면마취제 같은 효과로 졸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환기하면 되지만, 벌은 이미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체력이 고갈된 상태라 고농도 이산화탄소에 대응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더 이상 환기를 할 힘이 없는 상황에서는 인간처럼 단순히 졸린 것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
실종인지 폐사인지 정확히 가려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니 또 다른 예상 밖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창궐하는 말벌로 인해 우리 연구실 벌통이 쑥대밭이 되었다. 여기저기에 말벌 트랩을 설치해 우리 벌들을 지키려 안간힘을 썼지만, 끝도 없이 밀려드는 말벌을 당해내기 힘들었다. 최근 들어 몇몇 연구들이 말벌의 잦은 출현과 관련하여 기후변화 영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후가 변하면서 말벌의 개체수가 늘어나거나 새로운 종이 출현했다는 내용이다. 결국 기후변화로 인해 말벌이 번성하면서 꿀벌의 외부 위협이 더 커지게 된 셈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지난 한 해 동안 연구실의 결과를 보면 그 어느 것도 기후변화와 관련이 없는 것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기후변화는 분명히 벌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얘기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은 분명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아직도 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특히 한 가지 분명히 해두어야 할 점은 정확히 실종인지, 폐사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CCD(Colony Collapse Disorder)라고 불리는 군집붕괴현상 이후 실종이라는 단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연구실 꿀벌들만 보더라도 말벌로 인한 떼죽음의 영향이 컸고 이로 인한 개체군 악화가 월동을 하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벌을 연구하면서 기후변화의 무서움을 더욱 절실히 깨닫고 있다. 사실 마음 한편으론 기후변화와 상관이 없었으면 하는 기대도 있었다. 차라리 기후 문제가 아니라 살충제 때문이라면 좀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연구 그리고 많은 다른 연구들은 기후변화를 벌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벌이 사라지면 당신이 즐기는 모닝커피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생태계가 무너진다는 것을 확실히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를 줄이고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 이유라는 점도.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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