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우리 평범한 정신질환자들을 위해…<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이라하

서혜미 기자 2024. 5. 2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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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21WRITERS 이라하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을 따뜻한 시선으로
이라하(필명) 작가의 뒷모습. 이라하 제공

어디까지가 본인 경험이고 어디까지가 꾸며낸 이야기일까? 이라하(필명) 작가의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봤다면 한 번쯤 품을 법한 궁금증이다. 작가가 6년 동안 실제 정신병동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이라하 작가는 2010∼2016년 한 대학병원 정신과 간호사로 일했다. 원작 웹툰과 드라마 모두 다양한 정신질환과 병원 현장을 생생히 고증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2023년 11월 넷플릭스 드라마 방영을 계기로 정신질환 당사자와 의료진의 감상 후기가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곳곳에 올라왔다.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사회적 편견을 깼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실화 의심케 하는 ‘낯선 현실성’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엔 조증·우울증, 망상장애, 거식증 등 식이장애, 알코올 사용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자가 등장한다. 외형은 귀여운 동식물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연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망상장애가 있는 ‘다람’은 보이스피싱으로 전 재산을 잃었다. 우울증이 있는 ‘솔팽’은 회사 후임에게 스토킹 피해를 당했다. ‘영덕계’는 군에 입대한 자녀가 의문사로 숨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떡집 가지 아저씨는 사고로 가족이 숨진 뒤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가 됐다. 회사 생활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직장인과 팬데믹으로 코로나 블루를 겪는 프리랜서, 학업 스트레스로 자해하는 청소년도 나온다.

이 때문인지 웹툰 연재 초기 독자들은 좀처럼 의구심을 거두지 못했다. “본 만화는 현실 사건이나 인물과 관계가 없음을 밝혀둡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믿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병원에서 만났던 환자를 그린 게 아닐까?’ ‘간호사로 일하면서 환자를 잃은 경험이 있거나, 본인이 우울증이 있는 건 아닐까?’라는 반응이 나왔다.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면 환자의 내면과 감정을 이렇게 자세히 묘사할 수 있을 리 없다는 인식 탓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낯선 현실성’이야말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정신질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 매우 적었고, 그마저도 특정한 모습으로만 정신질환이 재현됐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전직 정신과 간호사, 넷플릭스 드라마 원작 작가라는 이력 때문에 그를 찾는 사람은 적지 않다. 여러 사람 앞에 설 때는 얼굴을 가린다. 길고 긴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음에도 그는 기념행사 참여, 강연, 수업 등을 할 때 반드시 마스크를 쓴다. 혹시라도 주최 쪽 카메라에 찍혀 얼굴 사진이 퍼지거나 강의를 들으러 온 이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심지어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는 음성을 변조했다. 취재원을 향한 호기심이 크게 들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으면 좋겠어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74화.

—어떻게 정신과 간호사로 일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간호대를 졸업했어요. 보통 병원에선 일반 신규 간호사를 배정할 때 기피 병동을 한두 개 적어내라고 하고, 기피 부서가 아닌 부서로 보내요. 자리가 있는 곳으로 배정하기 때문에 원하는 부서로 갈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에요. 저는 정신과에서 일을 시작했고요. 일을 썩 잘하진 못했지만 환자분들이 저를 정말 좋아해주셨어요. 그렇게 병원에 다니면서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이렇게 되는구나’라는 걸 조금씩 몇 년에 걸쳐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분들과 감정 교류가 이뤄지면서 저도 사회화된 거죠. 저는 제가 환자분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해요.”

—강연할 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언론 인터뷰를 할 때도 얼굴 사진 촬영은 안 하고 실명도 안 밝히는 이유가 환자분들을 생각해서라고요.

“저도 얼굴을 드러내거나 대형서점에서 사인회를 하며 독자와 만나고 싶은 마음, 어떤 티브이(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있죠. 그런데 제 환자분들의 구체적인 얼굴이 떠올라요. 그러니까 ‘김아무개님은 절 정말 좋아했고, 저랑 진짜 친한 친구였고…’. 간호대학 실습 2년, 병원에서 일한 6년까지 8년 동안 매년 한두 달 정도 저랑 같이 시간을 보낸 거예요. 그분은 정말 마음이 여리거든요. 제가 만일 얼굴을 드러내서 그분이 저를 알아보면, ‘내가 모든 이야기를 다 한 그 간호사가 설마 내 이야기로 돈을 벌고 있나?’라고 엄청 마음 아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한테 따지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혼자 화내고 땅을 칠지언정 저한테는 뭐라고 하실 분이 아니거든요.

저한텐 그렇게 생각나는 분이 대여섯 분 있어요. 그분들한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제 만화를 열심히 찾아보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 제가 조심하는 게 낫죠. 제 만화가 그분들과 있던 경험의 감정만 녹여내 재가공한 거라고 해도요. 밥을 못 먹거나 많이 먹는 게 우울증의 일반적 증상인데, 그분들을 묘사한 게 아니라고 해도 오해할 수 있어요. (환자들이) 혼자 속상해하는 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그분들이 정말 좋았기 때문에 그런 걸 조심하고 싶어요.”

—정신과는 다른 과보다 입원환자와 쌓는 유대감이나 친밀함이 남다른가봐요.

“2박3일 수련회를 가면 아이들끼리 확 친해지잖아요. 제가 정신병동에서 일할 때는 환자분들이 보통 2주 정도 입원했거든요. 2주간 병동에서 먹고 자고 하는데 80시간 정도 저를 보는 거예요. 의사는 가끔 와서 면담하고 가지만, 담당 간호사는 계속 왔다 갔다 하거든요. 병원에서 자고 일어나면 또 “안녕” 하면서 오는 거예요. 8시간 내내 옆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식사와 약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물어보고, 보호자를 만나서 환자에게 필요한 물건을 전해달라고 하거든요. 굉장히 밀접한 교류인 셈이죠. 엄청 좋거나, 엄청 싫거나.”

당신도 환자가 될 수 있다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93화. ⓒ이라하/위즈덤하우스

—정신병동과 정신질환이라는, 기존에 잘 볼 수 없었던 소재로 웹툰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요. 연재를 시작한 2017년은 지금보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더 심했을 텐데.

“처음 만화를 그릴 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환자와 일반인을 가르는 명확한 구분이 있는 게 아니라 ‘나도 언제든지 환자가 될 수 있다’는 거요. 지금 환자가 아니라면 당신이 평탄하게 좋은 길을 걸어가고 있어서,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하필 뾰족한 돌이 많은 자갈길을 걸어서 상처를 너무 많이 입고, 너무 많이 넘어졌기 때문에 잠깐 환자인 거라고요. 또 지금 환자라고 해서 평생 환자인 게 아니라 나아서 딱지가 생긴 뒤 다시 걸어갈 수 있는 거죠.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고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주인공이 간호사인 거고요. 간호사나 의사들은 ‘나와 내 가족은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방패 같은 믿음이 있어요. 그런데 본인이 발병했을 때 누구보다 잘 알고 환자들도 많이 봐왔지만 자기 일이 되면 객관성을 잃고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어요. 그렇지만 주인공 정시나는 제가 아니에요. 자전적 요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제가 아니죠. ‘환자를 잃은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했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전 저의 트라우마를 드라마로 만든 게 아니고 가상의 이야기를 꾸며낸 거라 너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이라하 작가 인터뷰는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10년이 걸려서라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515.html)◆

팁박스-우울증과 이별하는 법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199화. ⓒ이라하/위즈덤하우스

첫 직장인 하얀병원을 그만둔 ‘시나’는 우울증으로 결국 정신병동에 입원한다. 작가는 2~3부에서 시나가 천천히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 국내외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우울증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하는 방법들이 그려진다. 시나는 정신과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고, 전문가와 심리상담을 진행한다. 조언대로 감사일기를 써보면서 먼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목욕이나 가벼운 산책, 운동으로 기분을 전환하고, 친구와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주변 사람이 주는 정서적 지지와 위로를 받는다. 혼자서 주변 환경을 정리·정돈하는 게 어렵다면 가족, 청소전문가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집을 정리한다.

우울증이 있는 주변인에게도 도움이 될 법한 내용이 많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나도 그랬어”라는 말로 대화의 초점을 자신에게 돌리거나, 당사자에게 함부로 조언하고 충고하지 않는 것. 또 그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곁에서 독려하는 것, 무엇보다 그가 고립된 채 외로운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곁에 있어 주는 모습이 묘사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증이 하루이틀 사이 급격하게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천천히 시간을 들이면 우리는 나아질 수 있다고, 다시 삶의 기쁨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작품 전체에 걸쳐 이야기한다.

작품 목록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17년 10월~2022년 10월 코미코에 연재. 현재 네이버 시리즈에서 서비스 중이다. 위즈덤하우스에서 1~3권 단행본이 출간됐고, 2023년 넷플릭스가 드라마로 제작해 공개했다.

정신병동을 찾는 환자와 그 가족,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을 다룬 웹툰.

웹소설

<환생신의> 2023년 9월∼2024년 4월 문피아에 연재. 문피아와 네이버 시리즈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한의사 아버지, 의사 어머니를 둔 주인공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무림 세계에서 환생해 의술을 펼치는 웹소설.

*‘한겨레21이 사랑한 웹툰 작가’ 21명을 인터뷰한 ‘21 라이터스 ④’는 한겨레 네이버스토어에서 낱권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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