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기업국가 탄생의 서막 [뉴스룸에서]

김경락 기자 2024. 5. 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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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주쿠에 있는 라인 사무실 모습. 일본어판 라인-에이치알(HR) 블로그 갈무리

김경락 | 경제산업부장

‘라인야후 사태’는 많은 이들에게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짐작게 한 사건이었지만 나에겐 다른 차원의 고민에 빠지게 한 사건으로 다가왔다. 기업 이익이 국가의 이익으로 간주되는 데서 한발 나아가 국가가 기업의 이익을 재단·판단해서 서둘러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쉽게 공감을 얻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일본 정부가 네이버와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가 공동 지배하는 라인야후에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한 것이 외관상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았다. 고객 정보 유출 원인인 해킹 사고가 발생한 위탁처는 네이버의 완전(지분 100%) 자회사 네이버클라우드였다. 위탁처가 대주주 계열사이기에 라인야후가 책임을 묻고 개선을 요구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고, 더구나 위탁처 변경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카카오톡의 고객 정보 관리 회사가 그룹 총수의 개인회사라면 데이터 관리와 처리 지배구조에 내포된 위험이 없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튼실한 법적 근거 없이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한 탓에 논란은 불붙었지만 일본 당국의 행정지도 논리는 데이터 안정성 확보 여부가 지배구조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명제 위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자국민 다수가 쓰며 일부 행정 인프라에도 활용되는 메신저 운영사인 라인야후의 지배구조에 잠재된 위험에 대해 일본 정부가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거나, 지배구조 개편의 종착역이 지분 정리라고 해서 이를 ‘경영권 강탈’이라고 직진하는 건 너무 나아간 주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준공공재 성격을 띠고 있는 한국의 민간 전산망의 대주주가 외국자본이거나 국내 자본의 외피를 둘러쓴 검은 머리 외국인이었다면, 국내 여론은 어땠을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라인야후 사태가 정당하지 않은 행정 권력의 횡포에서 비롯됐는지는 이렇듯 좀더 신중하게 따져볼 문제이지만, 오늘날 여론은 그런 신중함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주권국가로서 지니고 있는 권능을 즉각적으로 발휘하길 바라는 여론이 압도적이라는 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일본에서 계속 사업을 하고 싶은 건지, 제값 받고 지분을 팔고 싶은 것인지 정작 네이버의 계산은 드러나기도 전에 많은 이들은 ‘국가대표 기업이 일본에 당했다’ ‘일본이 한국을 적성국 대하듯 한다’란 자극적 서사에 호응했다.

이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거대한 ‘글로벌 사조’가 되어버린 듯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자유주의적 질서에 대한 불만과 반발을 자양분 삼아 등장한 ‘자국 보호주의’는 해마다 강화·변주하며 국가는 기업 혹은 시장의 영역을 매우 깊숙하게 침투하고 있다. 수년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웨이퍼를 들고 기자회견을 할 때만 해도 몰락한 미국 제조업을 위한 전통적인 산업정책의 부활로만 받아들여졌지만 오늘날엔 미 상무부와 재무부가 기업의 경영 전략과 재무 전략을 지휘 통솔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게 오늘날의 실상이라면 앞으로 삼성전자·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미 정부와 보조금 협상에 나설 때 우리 기업이 미국의 ‘호구’가 되지 않도록 정부 관료가 교섭 대표로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실제 그런 광경을 우리가 보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싶다.

1980년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질서 아래에선 자본의 이익이 국가 즉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무역협정에 담겨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는 주권국가의 권능에 대한 자본의 도전 혹은 승리라는 해석이 진보 일각에 팽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오늘날 국가와 기업의 관계 맺음은 다시 변모하고 있다. 전자의 질서는 기업의 이익에 봉사하는 국가를 상정했다면, 오늘날엔 국가 스스로 기업이 되려 하고 되어야 한다고 여론은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반복되고 갈등과 논란은 불거질 것이다. 최근 ‘해외 직구 금지령’ 논란도 황당한 탁상행정쯤으로 이해되지만 이런 전환 과정에서 갈팡질팡하는 국가의 당혹스러운 얼굴도 비치는 듯하다. 금지령은 ‘알·테·쉬’(알리, 테무, 쉬인) 등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의 국내 시장 잠식을 국가가 방어해야 한다는 여론이 배경이었기에 그렇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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