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 아파 빨리 관두고 싶다”···‘문 정부 블랙리스트’ 사퇴 압박 배치되는 진술 공개
문재인 정부 당시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에게 사직을 강요했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 재판에 기관장 중 처음으로 정창길 전 한국중부발전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사장은 “정부 측으로부터 사직서 제출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증인신문 과정에서 자신이 회사 내부 사정으로 인해 스스로 사퇴할 뜻을 밝힌 적이 있다는 증언이 나오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답변을 피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재판장 김중남)는 20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조현옥 전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의 재판을 열었다. 이날 증인신문에는 정 전 사장이 공공기관장으로선 처음으로 출석했다. 백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9월~2018년 4월 전 정부에서 임명된 11개 공공기관장에게 부당하게 사표를 제출받은 혐의를 받는다. 정 전 사장은 2016년 1월 임명됐으나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2017년 9월 사직했다.
정 전 사장은 “박모 산업부 국장한테서 연락이 와서 만났는데 정부 입장을 전달하며 사직서를 제출하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의 입장’이 “‘포괄적으로 결정된 정부의 입장’이라고 들었다”며 “산하기관장으로서 정부 입장에 반한 선택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부 측의 사퇴 압박을 견딜 수 없어 자진 사퇴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재판에서 백 전 장관의 변호인은 정 전 사장이 스스로 중부발전 입찰비리 의혹 등으로 직원이 자살하고 방만한 퇴직제도 운용으로 감사원 감사까지 받아 힘들어했다는 진술을 공개했다. 정 전 사장을 만났던 박 국장이 검찰 조사에서 “정 전 사장은 간부 자살 사건으로 골치가 아픈데 하루빨리 관두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 전 사장이 먼저 ‘이왕 나가는 거 다른 발전 사장들과 같이 나가는 것도 모양이 괜찮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도 기억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 전 사장이 정부의 사퇴 압박 때문에 사퇴한 게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사퇴를 고려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진술이다.
이 진술 내용이 공개되자 정 전 사장은 “기억이 안 난다” “모르겠다”는 대답만 했다.
중부발전에서는 2017년 8월 롯데건설이 중부발전 자회사에서 발주한 군산바이오 발전소 건설사업 입찰비리 사건으로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직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정 전 사장이 박 국장을 만나기 2주 전에는 중부발전 건설처장이 자살했다. 비슷한 시기에 방만한 퇴직제도 운용으로 진행된 감사원 감사 결과가 ‘부적절’하다고 나왔다.
재판부는 다음 달 17일에는 또 다른 기관장인 장재원 전 한국남동발전 사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하기로 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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