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움직임 ‘감감’… “전문의 중심 의료시스템 검토할 때” [전공의 복귀 '데드라인']

이정우 2024. 5. 2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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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응·유화책 고심
전공의측 “8월이 복귀 시한” 주장
정부 “수련기간 해석 틀려” 반박
시험 응시 못해 2025년 전문의 부족
응시자격 유지 허용 가능성 나와
“PA 간호사 등 최대한 활용하며
‘위드아웃 전공의’ 체계 마련해야”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집단이탈한 지 3개월이 지나면서 정부가 ‘복귀 데드라인’을 넘긴 전공의들에게 ‘유화책’을 제시할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의료계에선 집단이탈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을 면제할 것을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당장 내년 전문의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유지하게 하는 등 ‘개별 복귀’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을 정부가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20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지난 2월19일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 가운데 내년에 전문의 시험에 응시하려면 20일까지는 복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까지 병원에 남거나 복귀한 전공의 규모는 600명가량이다. 일부 전공의들이 병원에 복귀 절차를 문의하긴 했지만, 뚜렷한 복귀 움직임은 아직 없다. 이대로라면 당장 내년부터 전문의 부족 사태 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전문의 응시자격 완화 등의 유화책을 고민하는 배경이다.
새 국면 언제쯤… 전공의들이 집단이탈을 본격화한 지 3개월째인 2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19일부터 이탈한 전공의는 오늘까지 복귀해야 수련기간 인정 및 내년도 전문의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밝혔지만, 복귀 움직임은 미미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시스
보건복지부는 내년 초 전문의 시험을 치를 3∼4년 차 레지던트 숫자를 2910명으로 보고 있다. 전문의 자격시험은 매년 1∼2월에 필기 및 실습·면접 등으로 치러지는데, 응시하려면 2월까지 수련기간을 채워야 한다. 만약 1개월 이상 공백이 생기면 추가 수련을 해야 하고, 이마저도 같은해 5월31일까지 마쳐야 한다. 복지부가 전공의들에게 “수련 공백을 3개월을 넘겨서는 안 된다”고 밝힌 이유다. 전공의들은 2월19일 집단사직을 시작하고, 이튿날부터 집단으로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전공의들은 복귀 데드라인과 관련해 정부 방침과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의사 커뮤니티에서 “8월29일까지만 복귀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에 대해 중대본 브리핑에서 “합당한 법 해석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회의 주요 내용 등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전공의들이 복귀 데드라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집단이탈 장기화로 생활고가 이어지는 상황에다, 추가 수련이 무의미해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싶어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복귀 시한 이후라도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실리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병가나 연차 처리 등 여러 방안을 활용해 수련기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지금까지는 돌아오면 수련을 계속해서 진행할 수 있었다면 이후에는 돌아와도 계약 때문에 안 되는 것”이라며 “전공의 입장에서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을 테니 (진행된 수련 과정을) 살리고 싶고 수련 의지가 있다면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물밑 접촉을 해보면 실제로 돌아오고 싶은 의사 표현을 하는 전공의들이 꽤 있다”며 “내부에서도 고민하는 전공의들이 꽤 있지 않나 싶다. 분위기 변화가 좀 있는 것으로 본다”고 전공의 복귀에 대한 희망을 드러냈다.

교수 등 남은 의료진의 피로도가 쌓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자체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64.5%가 “의료진 소진이 심각해지고 있어 진료 일정 조정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울산대학교병원·강릉아산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둔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총회를 열고 “내년까지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직 후 휴진 보장, 외래 환자 수 조정, 중증환자 치료 집중을 위한 경증 환자 전원 등으로 업무량을 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전공의 모집 홍보물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이탈로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병원들은 이른바 ‘가을턴’으로 불리는 후반기 전공의 모집을 기대하는 실정이다. 수련병원별로 7∼8월 임용 공고를 내고 9월부터 임용한다. 통상 전반기 모집 대비 임용 규모가 적지만, 올해는 집단이탈 여파로 확대될 여지도 있다.

전공의 집단이탈 장기화 상황에선 아예 전공의가 없는 ‘위드아웃(without) 전공의’ 시스템을 빨리 갖추는 게 합리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병원들이 전공의의 공백을 진료지원(PA) 간호사 등의 대체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이른 시일 내에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모든 병원이 충분한 전문의를 갖출 순 없겠지만, 발 빠르게 움직이는 병원만 결국 살아남게 되지 않겠느냐”며 “전공의도 지금처럼 ‘진료하는’ 의사가 아닌 진정한 ‘수련받는’ 의사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우·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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