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의 아들에서 대만 총통으로 우뚝선 라이칭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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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총통은 1959년 신베이시의 시골 마을 완리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이었지만 라이 총통은 국립대만대 의대에 입학한 뒤 미국 하버드대 공공보건학 석사를 거쳐 의사 생활을 했다.
라이 총통은 대만 독립과 관련해 민진당 내에서도 강경파로 꼽힐 정도로 중국은 그가 총통 선거에 출마할 당시부터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며 비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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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독립 성향…中 "가장 위험한 인물"
20일 제16대 대만 총통으로 취임한 라이칭더 신임 총통은 가난한 광부의 아들에서 의사를 거쳐 총통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라이 총통은 1959년 신베이시의 시골 마을 완리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100일이 안돼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해 어머니 밑에서 5남매와 함께 자랐다.
어려운 가정 형편이었지만 라이 총통은 국립대만대 의대에 입학한 뒤 미국 하버드대 공공보건학 석사를 거쳐 의사 생활을 했다.
그가 정치에 뛰어든 계기는 1996년 3차 대만 위기였다. 그는 언론 기고문에서 "1996년 중국이 군사적으로 대만 해협을 위협하는 순간이 결정적 계기였다"며 "대만 민주주의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날 취임사 서두에서도 "저는 젊었을 때 의술을 베풀고 사람을 구하겠다고 결심했다"면서 "정치에 입문하면서 대만을 바꾸겠다고 다짐했고 이제 이 자리에 서서 나라를 강하게 하리라 결심한다"고 말했다.
라이 총통은 1999년 입법위원(국회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나섰다. 2010년까지 4선 의원을 지내고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대만 남부 타이난 시장을 지낸 뒤 2017년에는 차이잉원 정권의 두 번째 행정원장(총리)에 임명됐다.
2019년에는 민주진보당(민징당) 내 총통 후보 경선에서 차이 총통과 경쟁했지만 패배했다.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 총통의 러닝메이트로 뛰었고 결국 그해 5월 부총통이 됐다.
이를 통해 그는 차이 총통의 뒤를 이을 민진당 내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마침내 지난 1월 13일 치러진 제16대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후보로 총통에 당선됐다.
라이 총통은 대만 독립과 관련해 민진당 내에서도 강경파로 꼽힐 정도로 중국은 그가 총통 선거에 출마할 당시부터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며 비판해왔다.
이날 취임사에서 독립 관련 발언을 최대한 자제했지만 중국 측은 라이 총통을 향해 "대만 독립은 죽음의 길", "대만 독립 일꾼의 본성을 충분히 드러냈다"는 등 그를 맹비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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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CBS노컷뉴스 임진수 특파원 jsl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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