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 떨어진 달…비밀 품은 비버가 몰려들었다 [요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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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뚝 떨어진 걸까.
마치 동화 속 초현실적인 세계에 던져진 것만 같은, 이 기이한 광경은 도산대로가 가로지르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갤러리 송은 지하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함께 활동한 스웨덴 출신 작가 듀오인 나탈리 뒤버그와 한스 버그의 전시 '문명의 대지 아래, 숨 쉬는 비밀(Beneath the Cultivated Grounds, Secrets Await)'이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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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달이 뚝 떨어진 걸까. 달은 기둥 사이에 받쳐 둔 그물망에 대롱대롱 걸렸다. 땅과 한층 더 가까워진 달이 은은하게 비추는 어느 밤, 순도 높은 선명한 ‘울트라마린’ 색상의 나뭇가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비버들이 익살스러운 행동을 한다. 마치 새벽녘 곳곳에 숨겨둔 숲 속 비밀이 깨어나는 듯, 현실인지 꿈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오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마치 동화 속 초현실적인 세계에 던져진 것만 같은, 이 기이한 광경은 도산대로가 가로지르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갤러리 송은 지하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함께 활동한 스웨덴 출신 작가 듀오인 나탈리 뒤버그와 한스 버그의 전시 ‘문명의 대지 아래, 숨 쉬는 비밀(Beneath the Cultivated Grounds, Secrets Await)’이 개막했다. 뒤버그는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2009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송은이 가진 공간적 특성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이 제작되고 전시가 구성된 점이 특별하다. 작품을 단편적으로 나열한 전시가 아니라는 의미다. 뒤버그의 조각과 애니메이션이 갤러리 1~3층에 이어 지하 전시장에 걸쳐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또 순환된다. 이와 함께 한스가 제작한 사운드가 각 작품이 만들어내는 장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순간마다 덧입혀졌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작가들의 예술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지난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뒤버그는 “내 작품은 완벽하지 않다”면서 “그런데 이런 취약성이 그래서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술은 작업과정 그 자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우화적인 방식으로 비튼 블랙코미디 같다. 위트 있지만 불쾌하고, 낭만적이지만 현실적이다. 반대되는 개념이 공존할 때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그의 작업은 기괴하다.
‘스톱모션’(Stop Motion) 방식으로 제작된 5~6분 내외의 영상 애니메이션 3부작이 대표적이다. 영상 속 늑대의 꾀임에 넘어가 잡아먹히게 된 달걀이 달로 둔갑하는가 하면, 휘엉청 뜬 달이 암퇘지를 탐하는 늑대를 보고도 무기력하게 체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기자기한 배경에 등장하는 의인화된 동물들이 미묘하게 어긋난 순수와 타락 사이에서 복잡한 인간성을 보여주는데, 서사는 이렇다 할 결말이 없다. 이는 피하고 싶은 무의식을 날카롭게 건드리는 작가만의 방식이다.
특히 세계적인 듀오 건축가인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의 나선형 설계 구조가 돋보이는 갤러리 송은의 지하 공간은 이 전시의 백미다. 마치 우물처럼 보이는, 텅 빈 공간에 놓인 거대한 달은 그 자체로 강렬하고 예술적이다. 이에 대해 한스는 “내면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자기’가 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한편 프라다재단의 지원을 받는 뒤버그는 지난 2009년 프라다 트랜스포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인전을 위해 당시 한국에 방문했다. 이번 전시는 15년 만에 여는 그의 두 번째 국내 전시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무료.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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