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폴리시, 최고 정책전문가가 말한다] 제대로 된 연금개혁안 만들기

2024. 5. 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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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K정책플랫폼 거버너스연구위원·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이제 연금개혁은 22대 국회의 몫으로 넘겨졌다. 개혁안의 핵심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합'을 두고, 여야는 21대 국회 막판까지 논의했다. 여야는 보험료율 13%에는 합의했으나 소득대체율에서 갈렸다. 국민의 힘은 43%, 민주당은 45%를 제시했는데, 끝내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대해 여야가 보험료율 상향에 동의한 것은 큰 성과이며 의견 차이는 소득대체율 2%포인트에 불과하니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조속히 합의해서(가령 중간인 44%로) 개혁안을 만들라는 주문이 많다. 반면에, 이 정도로는 재정 안정에 태부족이라면서 훨씬 더 강한 재정 안정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13%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44%'가 지속 가능성 확보에 크게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소득대체율 상향이 노후 빈곤 해소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다. 빈곤 노인의 대다수는 국민연금 수급권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의 국민연금 수급률은 50% 정도이다. 수십 년 뒤에도 수급률은 80%에도 못 미치므로 여전히 정말 가난한 노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설령 빈곤 노인이 수급권을 갖는다 해도 이들의 급여액은 낮다. 급여액이 200만 원인 사람은 소득대체율이 10% 높아지면 20만 원이 증가하지만, 급여액이 50만 원인 사람은 5만 원만 늘어난다.

노후 빈곤 해소와는 별개로, 국민연금 급여액이 전반적으로 너무 낮으니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연금 급여액을 높이는 데에도 그리 좋은 방안이 아니다. 소득대체율은 '지급률×가입기간'에 의해 정해진다. 지급률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1년동안 내면 소득의 몇 %가 연금급여로 계산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연금액이 낮은 주된 이유는 지급률이 낮아서가 아니라 가입기간이 짧아서이다. 작년도 국민연금 신규 수급자의 평균 가입기간은 20년이 채 안 된다. 이에 비해 유럽 국가의 평균 가입기간은 35년이 넘는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유럽 평균만큼 되었다면 급여액은 75% 이상 늘어 62만 원이 아니라 110만 원이 넘었을 것이다.

국민연금의 낮은 급여액이 짧은 가입기간 탓이라면 '가입기간 늘리기'가 처방이어야 한다. 왜 우리는 가입기간이 짧을까. 우리 정부가 유럽 국가에 비해 가입기간 확대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에 가려졌지만, 그동안 가입기간 확대 방안도 다수 논의되었다. 예를 들면 의무가입 상한 연령 64세로 상향, 첫 자녀부터 자녀당 2년간 출산크레딧 부여, 전체 군 복무 기간 크레딧 부여,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등이다. 유럽 국가는 이미 하고 있으며, 사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제껏 못한 것은 돈이 들기 때문인데 돈이 들더라도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같은 규모의 재원을 급여액 높이는 데 사용한다면, 가입기간 확대 정책에 사용하는 것이 소득대체율(지급률) 높이는 것보다 훨씬 형평성 높고 더욱 효율적이다. 소득대체율 상향 혜택은 고소득층이 훨씬 크다. 가입기간 확대 정책은 소득계층과 무관하거나, 저소득층일수록 크다. 또한, 자발적으로 가입기간을 늘리려는 동기를 촉진한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미수급권자인 전업주부도 출산크레딧에 추가하여 몇 년만 더 보험료를 내면 수급권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입기간 확대 정책은 공론화 시민대표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전문가들도 이견 없이 찬성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의당 해야 하지 않겠는가. 22대 국회에서 만들어질 개혁안에서 꼭 피해야 할 시나리오가 있다. 보험료율 13%에 소득대체율 43%-45% 사이의 어느 것으로 정하고는, 가입기간 확대를 위한 조치는 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이번에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논의하자고 하면 안 된다. 막판 시간에 쫓긴 21대 국회와는 달리, 22대 국회에서는 여유가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개혁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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