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 헬기 추락 사망… 중동정세 요동칠까 주목
임기를 약 1년 남겨둔 이란의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갑작스러운 헬리콥터 추락으로 사망하면서 이란 안팎에서 정치적 혼란이 예상된다. 이란 정부는 강경 우파 세력이자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였던 라이시가 사라졌지만 의회가 우파 손에 남아 있는 만큼, 계속 서방 및 이스라엘과 적대하는 정책을 유지할 전망이다.
외무장관 등 9명 전원 사망 "악천후 영향"… 내각 "차질없이 국정운영"
프랑스 AFP통신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20일(현지시간) 내각 명의로 성명을 내고 라이시의 사망을 확인했다. 이어 "국정은 아무런 차질 없이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날 모흐센 만수리 이란 행정 담당 부통령도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라이시가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고 알렸다.
향년 63세인 라이시는 전날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 주(州)에서 열린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했다. 그는 행사 이후 일행과 3대의 헬리콥터를 이용해 주도 타브리즈의 정유공장으로 이동했다. 2대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그가 탑승한 헬리콥터는 이란 중부 바르즈건 인근의 디즈마르 산악 지대에서 연락이 끊겼다. 당시 사건 현장에는 짙은 안개 속에서 폭우가 몰아쳤다. 이란 구조팀은 연락 두절 이후 12시간 만에 완전히 불에 탄 잔해를 발견했으나 생존자를 찾지 못했다. 범 아랍 매체인 알자지라 방송은 전문가를 인용해 악천후가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아마드 바히디 이란 내무 장관도 헬리콥터가 "악천후와 안개로 인해 경착륙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날씨가 사고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추락한 헬리콥터는 미국 기업 '벨 헬리콥터'가 개발한 '벨-212'로 1968년에 초도 비행을 실시한 낡은 기종이었다. 미국에게 온갖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이 어떻게 미국 기체를 운용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추락 당시 헬리콥터에는 라이시 뿐만 아니라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무 장관, 말리크 라흐마티 동아제르바이잔 주지사도 탑승했다.
이외에도 타브리즈 지역 성직자로 금요 기도회의 이맘(이슬람 종교 지도자)을 맡고 있는 아야톨라 알 하솀이 동승했으며 조종사와 경호원 등 탑승했던 총 9명 모두 사망했다.
50일 안에 보궐선거로 새 대통령 뽑아야… 후계구도·정치적 혼란 불가피
이슬람 혁명으로 태어난 이란 정부는 대통령 위에 최고지도자라는 더 높은 지위가 있다. 현재 국가 최고지도자, 종교 최고지도자, 군 최고 통수권자를 겸직하고 있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대통령 인준·해임권을 가지고 있다. 최고지도자는 입법과 사법, 행정 등 국정 전반에서 최후의 의사결정권자다. 이란의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최고지도자의 후계자들이 맡으며 하메네이 역시 과거 이란의 3~4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지난 2021년 8월에 8대 대통령에 취임한 라이시는 강경 우파 성향으로 4년 임기 가운데 약 1년을 남긴 상황이다. 부통령이 12명인 이란은 대통령이 임기 중 사망할 경우 헌법 131조에 따라 제 1부통령이 최고지도자의 인준을 받아 대통령 역할을 수행한다. 부통령과 국회의장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는 최대 50일 안에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이란의 제 1부통령은 하메네이의 충성파로 알려진 모하마드 모르베크다. 모르베크는 올해 69세로 2007년 준 정부 금융기관 '세타드' 수장에 임명돼 14년간 이끌었다. 세타드는 이슬람 혁명 이후 몰수된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1980년대 후반 설립되었으나 사실상 최고지도자의 '돈줄' 역할을 하는 기업 조직이다. 세타드는 보건, 금융 등 다양한 기업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인다.
강경 우파가 의회 장악, 反서방정책 유지… 하마스 "이란과 완전한 결속"
라이시는 2022년 '히잡 시위'로 이란 전역에서 반(反)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이를 강경 진압했다. 그는 대외적으로도 미국 및 서방과 대립했으며 미국과 핵협상 복귀를 도모하는 대신 우라늄 농축을 계속했다. 지난해 발생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도 간접적으로 개입했고 지난 4월에는 이스라엘 본토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아울러 지난 3월 이란 총선에서는 서방에 반대하는 강경 우파가 245석의 이란 의회에서 약 200석을 차지했다. 가디언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의회를 장악한 우파가 더욱 강경한 반서방 노선을 요구한다고 내다봤다. TOI는 라이시와 함께 사망한 아미르 압돌라히안을 지적하며 이란의 외교 노선이 흔들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스라엘 사태 이후 지속적으로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과 접촉하며 이스라엘 및 서방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하마스는 20일 성명에서 이란 국민과 "고통과 슬픔"을 함께한다며 "이란과 완전한 결속"을 강조했다. 같은날 알자지라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현재 이스라엘과 서방에 대한 노선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태 이후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 변화에 주목했다. 미국 등 6개국과 이란은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체결하고 이란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경제 제재를 풀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2018년에 핵합의를 탈퇴하고 경제 제재를 복원했다. 라이시는 2021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핵합의 복원 협상을 진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대신 긴장 강도를 높였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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