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이란 대통령의 헬기 추락 사망
헬리콥터는 날개가 고정된 항공기가 갖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다. 긴 활주로가 없어도 좁은 공간에서 이착륙할 수 있는 편리함이다. 산불 진화 등 긴급한 인력·물자 이송에 유용하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치명적 단점을 수반한다. 회전하는 날개의 동력으로 수직 이륙해 낮은 고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적에게 격추될 위험이 크고, 바람만 세게 불어도 추진 동력이 쉽게 상실돼 떨어질 수 있다.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에 따르면, 헬리콥터는 10만 비행시간당 9.84건의 사고를 기록해 고정익 항공기(7.28건)보다 30%가량 사고 비율이 높다. 헬리콥터를 매우 제한된 여건에서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 19일 헬리콥터를 타고 지방 출장을 갔다가 이란 북서부 아제르바이잔 국경 인근 산악지대에 추락해 숨졌다. 이란 국영통신 IRNA는 라이시 대통령과 함께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교장관을 비롯한 동승자 전원이 “복무 중 순교”했다고 전했다. 헬리콥터로 댐 건설 현장을 방문한 뒤 북서부 거점도시 타브리즈로 귀환하던 중 벌어진 사고였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란 정부는 피격보다 사고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당시 이 지역에 몰아친 강풍과 폭우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의 대외관계를 결정하는 두 핵심 인물이 숨진 것이 향후 중동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안하게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다. 종교 성직자 출신인 라이시 대통령은 2021년 취임해 이란의 강경한 대외정책을 주도해왔다. 그는 36년째 집권 중인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뒤를 이을 것이 유력한 인물이었다. 2022년 이란 내 히잡 시위를 강경 진압했고, 최근엔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공격에 대응해 초유의 이스라엘 본토 보복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하메네이는 라이시 사망에도 정부의 단절은 없을 것이라고 신속하게 단언했다. 하지만 권력 승계 과정에서 또 어떤 예상치 못한 난기류가 이란 정가를 휩쓸지 모를 일이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대량 학살이 7개월 이상 이어져온 가운데, 이란 내의 갑작스러운 변고가 중동 정세에 더 큰 참상의 전조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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