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도 못 늘린다...누가 전력망 대란을 불렀나
우리 국민 대다수는 내가 쓰는 전력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모른다. 정부와 전력 당국의 노력 덕분에 지난 수십 년간 값 싸고 질 좋은 전력을 아무 걱정 없이 써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아야 할 때가 왔다. 석탄과 가스로 지탱해 온 전력산업 전반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 원인은 기후위기다. 화석 연료가 뱉어 내는 탄소를 줄여야만 지구 도처에서 벌어지는 기후 재난의 심화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
기후위기가 몰고 온 변화는 자연재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럽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최소 십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대적인 에너지산업 구조조정을 벌였다. 목표를 초과달성하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늘려 가는 중이다.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새 무역 질서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강제하고 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은 주요 신재생에너지 설비 공급 물량을 과점하며 세계 시장 주도권을 손에 넣은지 오래다. 기후 자본주의가 도래하고 있다.
강대국들이 에너지 전환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반면 우리는 제자리 걸음이다. 최근 수년간 탈원전이냐, 탈탈원전이냐를 놓고 극한대립을 벌이는 동안 우리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 미만으로 OECD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청정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제품을 팔 수 없게될 우리 대기업은 수 조원을 들여 앞다퉈 해외 공장을 짓고 있다.
탄소 배출 감축 뿐만 아니라 수출 주도형 국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 우리는 복합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한국 자연환경에서 바람이나 햇빛으로 충분한 전력을 얻는 게 가능한지 묻는 회의론부터, 난맥상을 보이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인허가 과정, ‘에너지 혈관’이라 할 수 있는 전력망의 부족, 이제는 짐이 된 경직된 전력시장 구조까지 어느 것 하나 해결이 쉽지 않다.
뉴스타파는 에너지전환포럼, 방송기자연합회와 함께 한국 신재생에너지 핵심 대안으로 꼽히는 해상풍력의 세계 최강국, 덴마크를 방문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에너지전환의 진통을 소개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덴마크의 상황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1)탄소중립 핵심 대안? 멈춰 선 한국 해상풍력
지금도 늘어나는 석탄발전소
기후위기를 초래한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된 ‘악당’은 석탄화력발전소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18년 보고서를 통해 지구 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은 인류의 석탄 사용으로, 특히 30% 이상의 책임이 석탄발전에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는 지금도 대형 석탄발전소가 새로 들어서고 있다. 2022년부터 가동한 강릉에코파워, 곧 가동을 앞둔 삼척블루파워 등 동해안에서만 최근 2년 동안 일반 원전 4기 규모에 달하는 석탄발전소가 추가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결정하고 수조 원이 넘는 공사비를 들인 신규 석탄발전소가 10여 년이 지나 하나씩 완공된 것이다. 삼척블루파워를 마지막으로 국내에는 더 이상 석탄발전소를 짓지 않기로 했지만, 이미 30년의 설계수명을 보장받아 최소 2050년대까지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0’으로 줄이겠다고 국제 사회에 선포한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 ‘대책 없는 포퓰리즘 아니냐’는 의구심을 샀던 이유이기도 하다.
석탄발전소를 덮친 송전망 대란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와 빗발치는 반대 여론을 뚫고 건설을 마무리한 동해안의 석탄발전소 사업자들은 이제 안심하고 있을까. 현실은 정반대다. 신규 발전소뿐만 아니라 동해안에 설치된 상당수 석탄발전소는 최근 들어 발전량을 줄이거나 가동을 아예 멈추고 있다. 강릉에코파워, GS동해전력, 삼척 남부발전 등의 석탄발전소는 지난 4월 초부터 발전량을 줄여서 운전하다 이번 달 들어 가동을 중지했다. 업계에 따르면 당분간 정상 가동이 어려워 올해에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소들이 지자체에 납부했던 발전 기금도 크게 줄 수밖에 없어 해당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동해안 지역 석탄발전소들이 정상 가동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산된 전력을 보낼 전력망, 즉 송전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내는 송전망이 깔려 있지만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지 오래다. 발전소와 전력망의 관계를 심장과 혈관에 비유하자면, 새로운 대형 심장이 박동을 시작하려는데, 혈액을 공급할 혈관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심장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기존 혈관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수의 석탄발전소가 의존하고 있었던 동해안의 혈관, 즉 송전망에 결정적 부담을 안겨준 것은 지난 4월 초 가동이 시작된 핵발전소 신한울 2호기였다. 현재 동해안 송전망이 소화할 수 있는 발전소의 적정 규모는 11기가와트 수준이다. 신한울 2호기가 가동하기 전에도 원전 7기를 포함한 동해안 주요 발전기 총 설비 규모는 이미 13.6기가와트로, 적정 송전 용량을 2기가와트 이상 초과한 상태였다. 여기에 1.4기가와트 규모의 신한울 2호기가 추가된 것이다. 동해안에는 전력망이 부족해 발전소를 수시로 멈춰야 하는 ‘전력망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반면 원전의 경우 전력망 대란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력 생산 비용이 가장 싼 것으로 평가 받는 원전을 다른 발전기보다 먼저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한번 가동을 시작하면 발전량을 줄이거나 가동을 중단하기 어려운 기술적 특성도 원전이 다른 발전원보다 우선 가동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결국, 석탄발전소 입장에서는 우선 가동되는 원전이 늘수록 사용할 수 있는 전력망이 급격히 줄면서 정상 가동이 더욱 어렵게 된다. 2기가와트 규모의 대형 석탄발전소 삼척블루파워가 조만간 본격 가동에 들어가게 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익명을 요청한 동해안 A 석탄발전소 관계자는 “한전에서는 2026년까지 전력망을 보강하겠다고 하지만, 일부 구간은 주민 동의를 구하지 못해 착공조차 못한 상태라 언제 정상 가동을 할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다"며 “원전이 고장 나거나 운전을 쉴 때만 가동할 수 있는 상황이라 동해안 석탄발전소들의 가동률은 20% 수준에 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력망의 절대적 부족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에 따라 원전 비중이 계속 확대될 경우, 가동에 제약 받게 되는 발전소의 종류와 숫자도 증가할 전망이다.
전력망 대란에 발목잡힌 신재생에너지 보급
전력망 대란은 전국적 현상이다. 석탄발전소 사업자들만의 고민도 아니다. 전력망 부족 문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시급히 높여야 하는 한국의 에너지 전환에도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발전사업 허가를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전기위원회는 지난해 12월, 4곳의 사업자가 낸 발전사업 신청에 대해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렸다. 총사업비 2조 4,000억 원 규모의 ‘영광 각이 해상풍력' 사업도 그중 하나다.
전남 영광군 각이도 바다에 0.4기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 단지를 건설하려는 사업은 정부의 강화된 재무 기준 등을 만족했지만 정식 허가가 아닌 조건부 허가를 받아야 했다. 풍력발전기가 생산한 전력을 실어 나를 송전망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기위원회는 “2031년 예정된 계통(전력망)보강 이후 연계가 가능하다는 한전의 의견을 반영해, 이에 대한 사업자의 동의 여부를 확인한 후 조건부 허가”했다고 밝혔다. 2031년에 전력망이 보강되면 발전소 연결이 가능하다는 조건에 사업자가 동의해야만 발전사업허가를 내준다는 것이다.
한전이 예정하고 있다는 2031년 송전망 보강 또한 ‘예정'일 뿐, 확실히 된다는 보장은 없다. 비단 영광군 해상풍력 사업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최근 1년 간 전기위원회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린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44건 가운데 60%가 넘는 28건이 송전망 등 전력망 부족에 따른 것이었다.
상황은 계속 악화할 전망이다. 정부는 전력망 부족 문제가 발생한 지역에 대해서는 아예 신규 발전 사업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강원 동해안을 포함해 전남과 제주 등이 대상지로 거론되고 있다. 원전이나 석탄발전소처럼 전통적인 대형 발전소의 경우 신규 허가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신규 신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주된 불허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전반이 심각한 침체를 겪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양예빈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아예 사업 인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조건부 허가를 받아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업을 추진하거나 그도 아니면 어렵게 만든 발전기를 멈춰 세우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며 “전력망 부족으로 신재생에너지산업 전반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양 연구원은 “전력망 문제는 뒤로 미룬 채 입지와 사업자를 먼저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력망 연계 방안이 반드시 선제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신재생에너지 계획입지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9개국, 2050년까지 해상풍력 300기가와트 보급
발전소를 지어도 전력망이 부족해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난 4월, 취재진이 찾은 덴마크 에너지 당국과 해상풍력 기업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업자가 먼저 부지를 선정하고 기초 조사를 마친 다음 발전사업 허가를 받는 한국과 달리, 정부가 전력망 연결 계획을 비롯한 사전 입지 조사를 마친 후 사업자를 선정하는 덴마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발전 사업과 관련된 정부의 인허가를 총괄하는 덴마크 에너지청의 마스 피터 한센 국제 협력 수석 담당관은 “해상풍력 사업자로 선정이 되면 기본적으로 1기가와트까지는 전력망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자들 역시 전력 당국이 약속한 시점에 맞춰 전력망을 공급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덴마크 국영 해상풍력 기업 오스테드의 오이빈드 베시아 대외협력 이사는 “전력망 문제 때문에 사업이 지연된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전력망 부족으로 인한 발전소 가동 제한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한국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발전소는 지어지는 데 전력망 연결이 안 된다면, 전력망 사업자(한전)와 정부 간에 대화가 없었던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력망 공급을 포함해 정부의 철저한 사전 계획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해상풍력 사업 경험을 축적한 유럽 국가들은 보다 대담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덴마크,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9개국 에너지 장관들은 지난해 4월 네덜란드 오스텐드에 모여 북해 해상풍력의 규모를 2030년까지 120기가와트, 2050년에는 300기가와트까지 확대하는 ‘오스텐드 선언'을 공동 발표했다. 일반 원전 300기 규모의 풍력 발전기를 북해에 짓겠다는 구상이다.
이들 국가는 급격히 늘어나는 해상풍력 발전소를 뒷받침할 전력망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에너지 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인공섬을 건설하거나 기존의 섬을 이용한 전력망 허브를 마련해 대규모 발전 단지를 육지나 다른 에너지섬으로 한 번에 연결하겠다는 계획이다. 먼바다에 있는 개별 해상풍력 발전단지에서 일일이 육지까지 전력망을 연결할 때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덴마크 또한 북해와 발트해에 2개의 에너지섬을 건설하기로 하고 입지 선정을 진행 중이다. 또한 에너지섬으로 공급되는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등 추가 사업도 함께 모색 중이다.
발전소 계획 따로, 전력망 계획 따로
덴마크와 달리 한국은 건설된 발전소를 끄는 것도 모자라 소규모 신재생에너지조차 추가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전력망 대란을 마주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나라 발전소 및 송전망의 건설·운영 계획은 법정 계획인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이를 뒤따르는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을 통해 마련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통해 주요 발전설비를 언제까지 얼마나 늘릴지 결정하면, 한전이 필요한 물량과 장소, 시기 등을 고려해 전력망 확충을 위한 송·변전 설비 계획을 내놓는 식이다.
그러나 뒤늦게 발표되는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조차 선행하는 전력수급 기본 계획과 심각한 괴리를 보인다. 지난해 감사원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은 문재인 정부 초반부터 심각한 엇박자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가 문재인 정부 정책을 표적 삼은 ‘정치 감사’였다는 일각의 비판을 감안한다 해도, 전력망 확충 대책이 크게 부족했다는 평가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내놓으면서 2031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규모를 58.6기가와트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8년 7월 발표된 장기 송·변전설비 계획에서 한전이 확충하겠다고 밝힌 전력망은 2031년 목표치의 25.3%(14.8기가와트)에 불과했다. 앞서 산자부가 발표한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의 설치 위치와 시기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미 확정된 사업에 대해서만 전력망 보강을 추진하고, 나머지(74.5%, 43.8기가와트)는 차기 계획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3년 뒤 발표된 후속 계획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2020년 12월 산업부가 발표한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도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할 지역과 시기를 정하지 않고 목표치만 제시했다. 구체적인 지역과 시기를 명시할 경우, 지역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한전도 마찬가지로 2021년 9월 발표한 9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에서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치의 59.1%에 해당하는 일부 송·변전 설비에 대한 확충 계획만 내놨다. 가뜩이나 에너지전환 속도가 느린 것으로 평가 받는 대한민국 정부가, 앞뒤가 맞지 않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4년 넘게 방치해 온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목표치를 늘리는 데만 주목한 나머지, 이를 구현할 대책 마련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9차 전력수급계획과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을 발표했던 2021년에는 이미 송전망 부족 문제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었다. 특히 삼척블루파워와 신한울 1, 2호기 등 대형 석탄발전소와 원전이 추가되는 동해안 지역의 송전망 부족은 이미 예견됐지만, 결과적으로 대책 마련에 실패했다.
당초 한전은 동해안에 밀집된 석탄발전소와 신규 원전의 송전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동해안-신가평 선로를 2021년까지, 동해안-수도권 선로는 2022년까지 완공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2021년 발표한 9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에서 각각 2025년과 2026년으로 시기를 미뤘다. 송전 선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들의 동의조차 받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혔고, 새롭게 적용하려는 신형 송전선 기술 또한 아직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수도권 반도체 단지, 10기가와트 전력 추가 공급 필요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는 전체 국가 전력망을 2036년까지 1.5배 가량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10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을 내놨다. 이를 실현하려면 2036년까지 56조 5,150억 원의 투자금이 필요하다. 나아가 발전소 건설 계획과 전력망 확충 계획을 사실상 별도로 추진하던 과거 방식을 바꿔, 정부가 주도적으로 입지를 선정하고, 연결할 수 있는 전력망 범위 내에서 사업자를 선정하는 계획 입지 방식을 새롭게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전력계통 혁신 대책’을 발표하며 전력망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10여 년 넘게 적체된 전력망 문제가 원만하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일단은 2023년 연말 기준 한전의 누적 부채가 202조 원이 넘는 상황에서 전력망 추가 구축을 위한 재원 마련부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 어려운 문제는 과거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보듯 전력망 설비를 기피하고 정부와 한전을 불신하는 국민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로 전력망을 건설할 지역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급증하는 수도권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발전소뿐만 아니라 송전선로까지 지역이 떠안아야 한다는 논리는 더는 정당성을 얻기 힘들게 됐다. 수도권 중심의 장거리 전력 수송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전력 수요를 분산시키는 한편 수요지에서 직접 전력을 생산해 장거리 송전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의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지난해 5월 여야 합의로 통과 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같은 시기 경기도 용인에 10기가와트 이상의 전력이 필요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선언하면서 정부의 전력망 개혁 의지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 단지에 3기가와트 규모의 가스 발전소를 건설하고 나머지 7기가와트는 2037년까지 대규모 전력망을 추가 건설해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만 만든 전기를 쓰기로 약속한 ‘RE100’ 가입 기업을 위해 수십 년간 가스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정부가 내놓은 것이다. 당장 동해안 전력망 부족 사태조차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정부가 천문학적인 부채를 떠안고 있는 한전이 정권이 두 번 이상 바뀌게 될 10여 년 후에 초대형 전력망을 추가로 건설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그대로 믿는 이들은 드물다.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전력망 부족 사태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은 총체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전영환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전력망 문제 해결을 위한 실행 계획을 세워 매년 성과와 추이를 점검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데, 정부의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감사원 감사까지 있었지만, 전력망 부족 사태를 초래한 산자부와 한전에는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송전망이 없어서 해상풍력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을 못 하는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총체적인 시스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를 먼저 끄는 나라
원자력과 석탄, 가스가 지배하던 한국 전력산업을 겨우 비집고 들어온 신재생에너지가 지난해 생산한 전력 비중은 9.2%에 불과하다. 수력발전이나 바이오에너지(가축 분뇨 등을 이용) 등을 제외하고 태양광과 풍력만 계산하면 5% 수준이다. 세계 평균치(13%)에 비교해도 절반 이하 수준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확대가 더딘 탓이기도 하지만 이유는 또 있다.
전력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상태가 되면 핵발전이나 석탄·가스 발전에 비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기의 ‘스위치'를 먼저 끄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날씨에 따라 변덕이 심한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전력망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먼저 꺼야 한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음 마지막 세 번째 보도에서는 모두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뒷전으로 밀려난 재생에너지 거래 시장의 현실을 다룰 예정이다.
뉴스타파 조원일 callme11@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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