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토크쇼 '세상에 나쁜 수학은 없다'…'대중 눈높이'와 '깊이' 모두 살렸다

이채린 기자 2024. 5. 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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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재단, 수학 권위자 9명 총출동 '카오스강연' 7월 17일까지 매주 수요일 공개
7일 세나수를 촬영 중인 서울 구로구의 한 스튜디오. 이채린 기자

입시 수학 공부에 여념없는 학생부터 '수포자'를 자청하는 성인까지 즐길 수 있는 신개념 수학 토크쇼가 등장했다.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김민형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천정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등 국내 수학 분야 권위자 9인이 총출동하는 토크쇼다. 

과학문화 비영리 재단인 '카오스재단'은 5월 15일부터 7월 17일까지 봄 카오스강연 '세상에 나쁜 수학은 없다'(세나수)를 개최한다. 카오스재단은 과학계 석학들이 선정한 주제로 매년 봄과 가을 무료 정기 강연인 카오스강연을 열고 있다. 세나수는 카오스재단 유튜브 채널 ‘카오스 사이언스’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한 편씩 총 10주에 걸쳐 업로드된다. 

● 쉽게 또 쉽게…대중 '눈높이' 맞추려 사전 튜토리얼까지 제작

이번 카오스강연의 주제는 카오스재단이 처음 기획될 때 집중했던 기초과학 분야 중 하나인 수학으로 돌아가 올해를 기초과학 대중화의 원년으로 삼기 위해 결정됐다. 서울대 물리천문학과 82학번 출신인 이기형 그래디언트 대표이사이자 인터파크 전 회장은 2012년 '카오스 수학콘서트' 진행을 시작으로 기초과학에 대한 각별한 애착을 갖고 카오스재단을 2014년 11월 설립했다. 카오스강연은 수학을 비롯해 상대성이론, 진화, 인공지능(AI) 등 여러 주제를 다뤄왔다. 

2014년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수학자대회(ICM)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의미도 있다. 이번 강연을 총괄 기획한 박형주 교수는 당시 ICM 조직위원장으로 한국에서 지구촌 최대 수학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박 교수는 "2014년 ICM이 열리며 수학계는 당시를 '수학의 해'로 선포했었다"면서 "이번 강연을 통해 다시금 그 의미를 되새기고 수포자를 양산하는 원흉으로 떠오른 수학에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2014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수학자대회’ 폐막식. 서울 ICM 조직위원 제공

세나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수학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된다. 전훈 카오스재단 사무국장은 "수학을 어려워하고 피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토크 형식을 도입해 강연 느낌이 나는 것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신예리 전 JTBC 본부장(가운데)이 강연 준비에 한창이다. 이채린 기자

특히 세나수 제작에는 JT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전 제작진인 김선희 PD, 서자영·박정경 작가가 참여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를 기획했고 JTBC에서 <밤샘토론>, <밤샘토크>를 진행했던 앵커 신예리 전 JTBC 본부장이 진행자로 나섰다.

매 토크쇼엔 신 전 본부장과 박 교수, 이승재 인천대 수학과 교수, 김연응 서울과기대 인공지능응용학과 교수 등 전문가 패널 그리고 주요 연사가 참여해 재미있게 수학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교수는 "젊은 수학 교수로서 수학 이야기를 요즘 트렌드에 맞춰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지난 5월 7일 카오스강연을 촬영하는 서울 구로시의 한 스튜디오를 찾았을 때 대본 연습을 하던 출연진들은 "더 쉽게 설명해볼까요?", "천천히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여기서 제가 한 번 더 질문을 던질게요"라고 말하며 시청자 이해를 돕는 것을 최우선으로 진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1강에서 신 전 본부장은 "저에 대한 고백부터 해야 할 것 같다. 학창시절 암기과목으로 수학을 공부했다. 오늘 강연을 저를 이해시킨다는 생각으로 진행하면 시청자들이 이해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주요 연사로 등장한 이 교수는 "제 역할은 '신예리를 이해시켜라'인 것 같다. 좋은 목표다"라며 강연을 대중 눈높이에 맞춰 진행할 것이라는 의지를 다진다. 

카오스강연 기획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카오스재단 제공

김 PD는 "대중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던 경험을 바탕으로 시청자가 최대한 수학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했다. 김 PD는 토크쇼 대본을 반복해서 읽으며 '대중은 이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쉬운 표현이 더 없을까?' 등을 계속 고민하고 패널, 작가들과 대본을 수정해 나갔다. 

김 PD는 수강생들이 강연을 더욱 잘 이해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본 강연 전 다섯 편의 '수학 튜토리얼'을 제작하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수학 튜토리얼은 본 강연의 이해를 돕는 수학 지식을 소개하는 영상 콘텐츠다. '루트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0차원의 점이 바꾼 수학?', '피타고라스가 자기 발목을 잡은 사연은?' 등의 신선한 주제로 대중에게 다가간다. 

이번 카오스강연에 출연하는 이승재 교수, 김연응 교수, 박형주 교수(왼쪽부터)가 아주대를 방문해 학생들을 만나 세나수 기획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유튜브 캡처

● 한국 현대 수학 3인방 재조명…필즈상 허준이 교수 업적까지 총망라

강연 주제는 크게 '대수학과 군론', '대수기하학', '대수적위상수학'으로 나뉜다. 토크쇼는 1회차에 각 주제를 대표하는 한국 수학자의 생애를 소개한 뒤 수학 개념을 설명하는 강연을 거쳐 주제를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형태로 진행된다. 서 작가는 "수학 개념을 바로 설명하면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강연 초반에 주제와 관련 있는 인물의 생애를 다루도록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유튜브에 공개된 1강에서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수학자 고(故) 이임학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의 일생이 소개된다. 혹독한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태어난 이 교수는 임덕상 전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와 함께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한 수학사전에 오른 단 두 명의 한국인이다. 국제 저널에 수학 논문을 발표한 최초의 한국인이기도 하다. 

강연에서 박형주 교수는 "대학교 2학년 때 20세기 전 세계 수학의 큰 업적을 분류하고 어떤 수학자가 큰 기여를 했는지 설명하는 책을 읽었다"면서 "책 전체를 통틀어 딱 한 명 등장하는 한국인이 이임학 교수"라고 말했다. "책에 이 교수가 군론 분야에 공헌한 인물로 소개돼 있다"면서 '군론'이라는 수학 개념을 소개한다. 군론은 군(Group)에 대해 연구하는 수학 분야로 군은 결합 법칙이 존재하고 항등원과 역원이 존재하는 집합이다. 군론은 현재 수학뿐만 아니라 물리학, 화학 같은 분야에서도 응용돼 쓰이고 있다. 

3강에는 암호학 분야 권위자인 천정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가 주요 연사로 등장한다. 'AI의 역습! 암호가 세상을 구한다'를 주제로 천 교수는 암호의 발전사와 AI 시대에 개발되고 있는 새로운 암호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7강은 김연응 서울과기대 교수가 한국 수학의 위상을 높인 세계적인 수학자 故 권경환 포스텍 명예교수를 소개한다. 권 교수는 향년 95세를 일기로 지난 3월 미국에서 별세했다. 권 교수의 연구 분야는 수학적 공간 구조를 연구하는 위상수학이다. 위상수학은 20세기 이후 현대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로 꼽히는 학문 중 하나다.

권경환 포스텍 명예교수. 포스텍 제공

5강을 통해서는 수학계 노벨상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의 연구 내용에 바짝 다가갈 수 있다. 허 교수의 석사 지절 지도교수인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가 허 교수의 분야 중 하나인 대수기하학의 발전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2022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에서 열린 필즈상 시상식에서의 허준이 교수. 수학동아 제공

세나수에서 소개된 수학이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도 살펴본다. 6강에서 AI 기반의 토익 학습 솔루션 '산타'의 운영사 뤼이드의 노현빈 연구원이 교육AI를 탄생시키는 데 어떤 수학이 활용되는지 소개한다.

9강에서는 최수영 아주대 수학과 교수는 "수학이 발전하면서 도형의 본질적인 모양을 연구하는 위상수학이 탄생했다"며 "덕분에 데이터와 같은 추상적인 대상의 모양을 다룰 수 있게 되며 위상적 데이터 분석(TDA) 기법이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도형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고 응용함으로써 문명이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함께 알아볼 예정이다.

세나수는 처음 기획됐던 지난해 12월부터 PD, 작가, 카오스재단 관계자, 패널 등이 틈날 때마다 만나 머리를 맞대 고민해 나온 결과물이다. 이승재 교수는 "강연 주제부터 대본 작성, 섭외까지 참여했다"면서 "강연 내용을 틀리지 않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나씩 하면서 대본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이번 카오스강연을 위해 PD, 작가 등이 이승재 교수 연구실에 모여 강연 시연을 듣고 있다. 카오스재단 제공

박 교수는 "유튜브를 살펴 보면 대중을 대상으로 한 과학 콘텐츠가 많지만 깊이 있게 현대 수학에 대해 다룬 컨텐츠는 거의 없다"라면서 "세나수를 통해 대중의 눈높이를 노리면서도 심도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겠다. 세나수가 성공리에 마무리 되면 가을 카오스강연도 수학을 주제로 열릴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세상에 나쁜 수학은 없다' 강연 시리즈 포스터. 카오스재단 제공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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