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청춘의 작가' 폴 오스터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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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가 최근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듣자마자 내 청춘의 한 시절이 함께 떠난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 만난 사랑과 도시와 음악과 예술의 황홀함을 묘사하며, 동시에 실패로 가득한 청춘의 방황을 쓰는 소설가를 응원하지 않을 방도는 없었다.
훗날 인기 작가가 됐지만 그의 청춘을 지탱한 건 가난에서 해방되려는 절실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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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가 최근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듣자마자 내 청춘의 한 시절이 함께 떠난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학창 시절 영화 '스모크'를 본 뒤 원작 소설 '뉴욕 3부작'을 통해 이 작가를 처음 만났다. 이후 20년 넘게 그의 곁을 동행했다.
폴 오스터는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며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청춘의 이야기를 썼다. 처음 만난 사랑과 도시와 음악과 예술의 황홀함을 묘사하며, 동시에 실패로 가득한 청춘의 방황을 쓰는 소설가를 응원하지 않을 방도는 없었다. '빵굽는 타자기' '겨울 일기' 등을 통해 그는 자전적 이야기를 여러 번 책으로 펴냈다. 그의 삶은 실제로도 젊은 날의 방랑과 죽을 뻔한 사건과 맥없이 스러져 간 가족 같은 비극과 희극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훗날 인기 작가가 됐지만 그의 청춘을 지탱한 건 가난에서 해방되려는 절실함이었다. '빵굽는 타자기'에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고백을 접하면 그가 첫 탐정소설을 펴내는 결말에선 박수를 치게 된다. 비록 900달러밖에 못 벌었지만 말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무엇보다 세상을, 도시를 보는 시각을 바꿔준다. 폴 오스터는 누구보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제대로 알려준 작가였다. '달의 궁전'(1989)이 묘사한 뉴욕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주인공 마르코 포그가 집 없이 방황하며 센트럴파크에서 노숙을 하는 장면에서 이 공원은 거대하고 위협적인 정글처럼 묘사된다. 이 소설을 읽은 뒤 찾은 뉴욕은 이전과 달랐다. 신화 속 비극의 주인공 같던 포그의 삶과 기이한 이야기가 살아나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포그가 소설 속에서 바라보는 어둠 속에 떠오르는 둥글고 노란 달을 실제로 뉴욕에서 마주했을 땐 묘한 감동까지 받았다.
더 이상 그의 새 책을 기다릴 순 없게 됐지만 다행히 읽지 않은 책이 남아 있다. 유작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 최근 한국에 번역된 2017년 소설 '4321'은 '숏폼' 영상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마어마한 벽돌책이다. 10년 만의 장편을 그는 무려 1500쪽으로 완성했다. 퍼거슨이라는 같은 이름과 같은 몸을 가진 네 인물이 겪는 네 개의 삶을 다룬 기이하고 방대한 이야기다. 그의 마지막 선물을 만나는 여름밤은 길고도 즐거울 것만 같다.
[김슬기 문화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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