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동상 세우면 국가 폭력을 반복하는 겁니다”
“실장(반장) 친구가 학교 결석해도 ‘아픈가보다’ 싶었지. 고 라경일 열사 면회 가는지 몰랐어요.”
지난 16일 대구 중구 대안동 공간7549에서 만난 김찬수 4·9인혁열사 계승사업회 이사장이 1975년을 회고했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3월 대구 서구 내당동에 있는 달성고에 입학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1975년 4월9일치 신문 1면은 모두 같은 기사로 인쇄됐다고 한다. “민복기 대법관이 공산주의 사상으로 국가를 전복하려 한 8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조선일보, 동아일보 할 것 없이 아주 크게 났죠”라고 했다. 역사에 무지했지만 8명 사형은 어린 그에게 큰 충격으로 남아있었다.
이날 이후부터 그 실장 친구가 말없이 자주 학교에 결석을 했단다. 당시에는 영문을 몰랐다. 1975년 4월9일은 세칭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8명에 대해 사형 집행이 진행된 날이다. 그날 새벽 4시30분께, 당시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에서 8명이 숨졌다. 서도원, 김용원, 여정남, 우홍선, 도예종, 하재완, 이수병, 송상진이다. 나머지는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 라경일 열사는 2010년 복역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결석을 자주 하니까 몸이 안 좋거나 집에 일이 있겠거니 싶었지. 10년쯤 지나 노동운동을 하다가 알게 됐어요. 같은 반에 있던 그 실장 친구가 고 라경일 열사 아들이라는 사실을요. 당시에는 입 밖에 이름 석 자 내뱉지도 못했거든요. 이제야 말할 수 있지. 담임 선생님한테만 말하고 몰래 아버지 면회 다녀온 그 심정이 어땠을까요?”
유족들의 삶에 대해 김 이사장은 “2007년 무죄 선고가 나기 전까지 인혁열사 자식이라고 말을 못했어요. 들키면 빨갱이 자식으로 치부하던 시절이에요. 그렇게 없는 사람의 자식으로 산 거죠.” 지난 2007년 서울중앙지법에서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1989년 4월 대구 경북대에서 처음 열린 인혁열사 ‘공개’ 추모제에 그는 실무진으로 함께했다. 인혁열사 사형 한 달 뒤 박정희 정권이 선포한 긴급조치 9호의 잔재는 정권이 3번 바뀌어도 사회에 남아있었다고 한다. 긴급조치 9호는 한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독재정권의 손발이었다. 당시 길거리에서 “박정희는 참 나쁜 x이다”고 외친 황현승 인혁열사의 부인은 경찰 폭력에 시달리다 끝내 후유증으로 1981년 세상을 등졌다. 언행을 비롯해 언론, 집회, 결사 자유가 국가에 의해 억압되던 시절이었다.
14년이 지난 1989년도 마찬가지였다. 인혁열사 공개 추모제 추진위원회 쪽 사람들이 경찰서에 연행됐다고 한다. 그는 “추모제를 개최했다는 이유만으로 노태우 정권에 의해 고초를 겪었어요. 학교 마당에서 추모제를 추진했던 청년과 학생 등 저의 선·후배들이 경찰서에 가서 조사받고 그랬죠.”
대구시의회 ‘박정희 조례’ 가결하자 유족들 “분노로 가슴 떨려 잠 못이뤄”
대구도서관·동대구역 동상 건립은
“대구 정신·상징공간, 독재자로 색칠”
대구서 ‘박정희우상화반대본부’ 꾸려
“홍준표 시장, 대권 욕심에 역사 농단
인혁열사 2·3세대에 국가 폭력 반복”
3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여전히 국가의 억압에 저항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에서 ‘박정희우상화반대 범시민운동본부’ 조직을 꾸리고 있다. 그는 “박정희 정권 때 폭력을 휘두르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억압은 아니지만 현시대에도 여전히 정신을 지배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그 단적인 예시가 박정희 동상”이라고 말했다. 조직 결성 계기는 지난 1일 홍준표 대구시장이 올린 페이스북 글이었다. 홍 시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라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2일, 대구시의회 본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안’이 가결됐다. 김 이사장은 “2007년 무죄가 나왔다고 해서 돌아가신 분이 다시 살아오지는 못하지만 유족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가지고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대구시 차원에서 그것도 시민 혈세로 동상을 세운다고 한다. 유족들은 매일 밤 분노로 가슴이 떨려서 잠을 못 이룬다고 저에게 말해요”라고 했다.
대구시는 박정희 동상을 동대구역과 남구 대명동에 지어지고 있는 대구도서관에 세운다는 방침이다. 두 공간에 짓는 의미에 대해 묻자 김 이사장은 “대구의 정신을 통째로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색칠하려는 거다. 대구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학생들에게는 진리의 상징을, 외부인과 대구 시민에게는 대구의 관문으로 존재하는 곳이다. 18년 동안 독재로 나라를 다스리던 사람을 존경하는 행위 자체가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맞지 않다”고 했다.
또 차기 대권을 위한 정치적 행보라고 지적했다. 그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선에 대한 욕심 때문에 대구 시민을 볼모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끌어들여서 정치적인 효과를 보려고 한다.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본인을 부각하는 그런 얄팍한 수다. 정치적 출세를 위해 역사를 농단하는 정치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보여줄 곳이 있다며 공간7549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자 어스름한 노란 조명 밑으로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패가 보였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설명하는 인혁열사 추모 공간이었다. 인혁열사 8인의 가족사진도 전시돼 있었다. 그는 “대구 이 넓은 땅에 독재로 희생된 열사를 추모하는 번듯한 공간이 하나 없다. 유족들이 기부한 배상금 일부로 공간7549 건물을 사고 추모공간을 꾸렸다”며 “국가 폭력을 당한 열사 유족들이 살아있고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다. 가해자 동상을 세우는 건 국가 폭력을 인혁열사 2세대, 3세대에게 반복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배현정 기자 spr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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