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경제 최악인데 라이시까지 사망, ‘벼랑 끝’ 이란의 미래는? [디브리핑]

2024. 5. 2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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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인플레·외교적 고립 ‘최악의 상황’
‘히틀러’ 소리 듣던 초강경파 지도자 사망
“파벌 치열…격동의 시기 접어들 듯”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AFP]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헬기 추락으로 사망하면서 이란은 국가 안팎으로 전례 없는 위기에 놓이게 됐다.

미국의 제재로 외교·경제적 고립이 시작된 후 이란은 물가 폭등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히잡 시위’를 유혈 진압하며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돼 왔다. 여기에 이스라엘과의 갈등으로 군사적 긴장감까지 고조된 터라 이란이 어떤 행보를 보일 지 국제 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40%대 인플레·외교적 고립 ‘최악의 상황’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AFP]

이날 CNN은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보도하며 “그의 죽음은 중동 지역과 이란이 불안한 시기에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이란은 지난 7개월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가자 전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왔다.

지난달에는 이스라엘과 직접 분쟁을 겪기도 했다. CNN은 “가자 전쟁은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수십 년간의 그림자 전쟁을 드러내게 했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지난달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자국 영사관 공습으로 이란혁명수비대(IRGC) 고위관계자가 사망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본토에 전례 없는 대규모 미사일·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도 이란 군사 기지에 대한 재보복을 감행하며 ‘맞불 공격’을 이어갔다. 이스라엘을 끝으로 두 국가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불안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제재로 이란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다. 이란은 2018년 외교적 고립이 시작된 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따라 대부분 억제됐으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5월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하면서 재개됐다. 미국이 그동안 유예했던 제재를 이행하면서 이란의 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CNN은 “이란의 보수 강경파 지도부는 미국 주도의 제재에 강하게 타격을 입은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것을 견뎌냈다”고 했다.

‘히틀러’ 소리 듣던 초강경파 지도자 사망
1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중심부 발리아스르 광장에서 이란인들이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호세인 아미르-압돌라이안 외무장관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로이터]

2022년 히잡 시위 이후 이란의 인플레이션은 최고조에 달해 지난해 12월에만 44%(전년 대비) 치솟았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지난해를 ‘인플레이션 통제의 해’로 명명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3월 이란의 통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으며 인플레이션율은 종종 30%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강경 보수 성향의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을 둘러싼 각종 위기를 철인 정치로 극복하고자 했다. 히잡 시위 국면에서 라이시 대통령은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또 가자 전쟁 중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영사관 공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는 등 대외적으로도 초강경 이미지를 굳혀왔다.

과거 그는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 대규모 포로 처형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라이시 취임 당시 정치범들은 “라이시는 살인자였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에게 행했던 것과 똑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행보가 이란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는 평가도 있다. CNN은 “시위는 대부분 중단되었지만, 개혁과 일자리 그리고 억압적인 종교 통치에서 벗어나길 갈망하는 많은 이란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정부 심리가 깊이 자리잡았다”고 지적했다.

“파벌 치열…격동의 시기 접어들 듯”

엇갈린 평가를 받았던 지도자였던 만큼 그의 사망 후 이란 사회가 더욱 혼란 빠질 수 있다. 우선 강경 보수파로 채워진 국회에서 ‘라이시 후임’을 두고 격돌할 수 있다. 이란 전문가인 아라쉬 아지지 클렘슨대 선임 강사는 CNN에 라이시 대통령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여러 파벌 간의 권력 투쟁은 확실히 더 치열해질 것이다”며 “이란이 ‘격동의 시기’에 접어들 전망”이라고 전했다.

한편 라이시 대통령의 시신은 이란 타브리스 시로 이송될 예정이다. 중동의 알자리라방송에 따르면 라이시 대통령이 탑승한 헬리콥터가 전날 오후 아제르바이잔주 중부의 바르즈건 디즈마르 산악지대에 추락해 화재와 함께 산산조각 났으며, 탑승자 9명이 모두 사망했다고 전했다.

헬리콥터는 추락하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객실 전체가 완전히 불에 탔다.

이란 당국은 “일부 시신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탔으며, 현장에서는 누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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