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 “‘출입국 간소화·에라스무스’ 등 체감 변화 필요” [오늘의 안보 이슈]
20일 외교부와 국립외교원이 공동 주최한 ‘한일 신협력비전포럼’에서는 정부와 민간의 한·일 관계 전문가들이 모여 양국 관계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 방향을 논의했다.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이날 포럼의 개회사를 맡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한·일 양국이) 어렵게 일궈낸 관계 개선의 흐름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서로를 이해하며 관계를 소중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글로벌 복합 위기 속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양국의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올해 초) 취임 직후 외교부 내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사업 그림을 그려볼 것을 지시한 바 있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대략적인 얼개만 마련됐을뿐 아직 살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권 없이 출입국…‘한일판 솅겐조약’ 가능할까
해당 TF 단장을 맡은 정병원 외교부 차관보는 ‘한일관계의 현 단계와 미래 비전’을 주제로 진행된 라운드테이블에서 “(일본 측과) 올해 안에는 구체적인 사업 계획의 협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일 국민들의 출입국 간소화, 화폐 통합, 청년 교류 확대 프로그램 등을 양국이 함께 추진할 만한 구체적 사업으로 제안했다.
특히 지난달 말 주일대사 간담회 이후 화제가 된 출입국 간소화에 대한 언급이 주목됐다.
한일포럼 대표 간사를 맡고 있는 장제국 동서대 총장은 “연간 1000만명이 우리나라에서 일본을 가는데, 외교부에서 나오는 여권 없이 오가는 방안이라든가 공항에 한국인을 위한 입국 통로가 따로 만들어지는 등의 ‘특별대우’가 가능해진다면 국민들이 한·일 관계 개선 효과를 더 체감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정병원 차관보는 “내년 60주년에 양국 관계 업그레이드를 위한 사업 계획 중에는 다양한 축제성 행사를 비롯해 이동의 자유, 대규모 교류 협력 사업, 공통 프로젝트 추진 등이 있다”며 “이는 정부 부처간 협의 등 국내 의견 수렴이 필요해 시간적 여유를 두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전 세션 이후 진행된 오찬사에서도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이 한·일 양국민의 출입국 절차가 간편해지는 것에 대한 산업계의 기대감이 있다고 전했다.
장 총장은 또 유럽에서 에라스무스를 통해 프랑스와 독일 간 반목 해결에 큰 도움이 됐던 사례를 언급하며 한·일 간에도 이를 도입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장 총장은 “한 학기 정도 양국 대학생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공부할 수 있게 하고, 현지에서 일본 기업 인턴십 기회도 갖는 등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안을 최근 개최한 한·일 대학 간 포럼에서 제안했다”며 “교육부에서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외교부에서도 정부 차원의 관심을 갖고 움직여준다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한·일 관계의 우려 요소로 부상한 ‘라인 사태’에 대해서는 전문가 간 의견이 엇갈렸다. 일본 정부가 메신저 라인의 모기업인 네이버의 지분 매각을 요구하는 듯한 이례적인 행정 지도를 내린 데 대해 국내에선 “하루아침에 네이버가 키운 라인을 일본에 빼앗길 위기”라며 반일감정이 포착되고 있다.
장 총장은 일본과의 문제가 민감성을 갖는 만큼 당국이 보다 적극적인 초기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일관계가 안정된 단계가 아닌 만큼 외교부가 민감하게 대응했으면 한다”며 “라인 사태 등을 볼 때 기업 간 일이라 초기 대응에 나서지 않는듯 보이는데 정치권에서 이슈를 활용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당국과 긴밀한 대화 채널을 가동해 사태가 커지기 전 사전 예방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반면 진창수 센터장은 “이 문제를 기업의 이익, 경제안보, 한일관계라는 세 가지 시각에서 볼 때 네이버가 아무런 얘기를 안 하는데 정부가 개입해 여러 상황을 만드는 것보다는 원칙적 대응이 마땅하다”며 “정부가 늑장대응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진 센터장은 “기업이 어떻게 나올지 아직도 전략적으로 불투명한 만큼 앞으로 전략적으로 교섭하는 것을 좀 더 지켜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새로운 버전 나와야
이날 포럼에선 새로운 한일관계의 ‘제도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박준우 전 벨기에·유럽연합(EU)대사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 간 체결한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잇는 ‘한일 공동선언 2.0’ 체결을 현실적 방안으로 제안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업그레이드하는 새로운 조약 체결은 국내 정치 상황상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 더 발전시키기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며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조금씩 액션을 취하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차관보는 이와 관련해 “과거사 문제는 사실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는 과거 역사 문제가 미래 지향적인 발전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정신에 입각해서 협의를 해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일관계 개선의 지속 여부에 대한 기대가 아직은 낮은 상황”이라며 “단기적으로 특정 이슈가 한일협력의 큰 분위기를 저해하지 않도록 양국 정부와 여론지도층이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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