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명 처단한 ‘테헤란 도살자’...강경파 라이시 사망 후 이란은

김지원 기자 2024. 5. 2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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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2024년 4월 17일 이란 테헤란의 한 군 기지에서 열린 연례 국군의 날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취임 33개월 만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1979년 친미 왕정을 축출하고 들어선 신정(神政) 체제의 정통 후계자로 꼽히던 인물이다. 특히 권력 서열 1위인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총애하는 최측근이었다.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에서는 최고지도자가 절대 권력을 갖고 내정을 총괄하며, 대통령은 대외적 외교 활동을 담당하는 한편 최고지도자 휘하에서 행정부 수장으로 나라를 대표한다.

1960년 이란 시아파 성지인 마슈하드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난 라이시는 열다섯 살에 무슬림 교리학교에 입학, 정통 무슬림 신학교육을 받았다. 1979년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반미·반정부 시위에 적극 동참했고, 호메이니 집권 후에는 본격적인 출세 가도를 달렸다. 스물다섯 살 때 수도 테헤란을 관할하는 검찰청 차장검사에 올랐다. 이후 검사장·검찰총장을 거쳐 사법부 수장까지 지냈다.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을 모두 지낸 뒤 대통령에 오른 셈이다.

화려한 경력 뒤에는 반정부 인사 탄압의 선봉에 섰던 과거의 이력이 계속 따라붙었다. 그의 법조인 시절 별명은 ‘테헤란(이란 수도)의 도살자’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1988년 설치된 특별 법정 소속 판사로 활동할 당시 반체제 인사들을 즉결 심판·처형하는 데 깊이 관여했다고 알려졌다. 국제 앰네스티는 당시 해당 법정에서만 5000여 명이 처형됐다고 보고 있다. 2021년 대통령 당선 당시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라이시는 살인·고문·실종 등 반인권 범죄에 대해 수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2024년 5월 20일 이란 테헤란에서 한 이란 남성이 고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망사고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고 있다. /로이터 뉴스1

2022년 9월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에 끌려갔다 의문사한 이후엔 전국적으로 번진 반정부 시위를 무력 진압해 반발을 샀다. 유엔에 따르면 라이시 대통령의 지시로 인한 보안군의 총격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 551명이 사망하고 2만명 이상이 구금됐다.

서방국가들과의 대화를 강조했던 전임 대통령 하산 로하니와 달리 라이시는 무력 충돌도 불사하는 강경파였다. 그가 집권한 후 이란은 핵 원료인 우라늄 농축량을 늘렸으며, 하마스·헤즈볼라·후티 등 중동 내 이슬람 무장 단체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며 역내 긴장 수위를 높여왔다. 지난달엔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 자국 영사관을 공격해 혁명수비대원을 사살하자, 드론과 미사일 수백발을 동원해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보복 공습했다.

이 같은 강경 노선을 고수하면서 이란은 서방의 제재로 인한 만성적인 경제난을 겪었지만, 라이시는 이란 주류 보수 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이 때문에 그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호메이니(1979~1989)와 하메네이(1989~현재)에 이어 3대 최고지도자로 영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끊이지 않았다.

모하마드 모흐베르 이란 제1부통령이 고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초상화) 자리가 비어 있는 가운데 지난 5월 20일 테헤란에서 내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라이시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이란은 7월 대통령 보궐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라이시 대통령의 임기는 2025년 8월까지였다. 이란 헌법 131조는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50일 이내 새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부통령 12명 중 가장 선임인 모하마드 모흐베르가 일단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보궐선거를 준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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