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만에 철회한 해외직구 금지 정책... 이커머스 업계 혼란 가중

김은영 기자 2024. 5. 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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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전형적 탁상행정 지적
전문가 “직구시장 구멍... 사전적 가이드라인 갖춰야”

“처음 정책이 나왔을 때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들었다. 시간을 갖고 결론을 내렸어야 했는데 (정부가) 성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국가인증통합마크(KC)를 받지 않은 제품의 해외직접구매(구매) 금지 방침을 사흘 만에 철회하자 시장에선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20일 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정책이 발표되자 마자 해외직구팀을 중심으로 발 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방법론이 없어 난감했다”면서 “주변 상황이나 여건을 살피지 않은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했다.

인천 중구 인천공항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관계자가 중국발 장기 재고 화물을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6일 정부는 해외직구 대책을 발표했다.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완구 등 어린이용 34개 품목,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 등 80개 품목 제품 중 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직구를 원천 차단한다는 게 골자다. 이는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산업부, 관세청, 환경부 등 유관 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해외직구 종합대책 태스크포스(TF)를 3월 구성한 지 두 달 만에 내놓은 대책이었다.

하지만 소비자와 정치권은 ‘소비자 선택권’을 무시한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정부는 사흘 만에 해당 대책을 철회한다고 번복했다. 19일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브리핑을 열고 “저희가 말씀드린 80개 위해 품목의 해외 직구를 사전적으로 전면 금지·차단한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지금대로 직구해서 쓰셔도 된다”라고 말했다.

당초 정부가 이 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최근 들어 알리(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이른바 중국 쇼핑 플랫폼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하면서 위해 상품의 국내 유통이 늘었다는 판단에서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해외 직구액은 지난 2021년 5조1000억원에서 2022년 5조3000억원, 지난해 6조8000억원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해당 대책은 중국 플랫폼을 제재하기는커녕,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혼란만 가중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오픈마켓 플랫폼 관계자는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중국 플랫폼과 자율 협약을 맺었다고 하더니, 이에 연결되는 정책으로 KC 인증 관련 정책을 내놓은 것 같다”면서 “하지만 KC 인증을 받으면 제품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일일이 검수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공정위는 지난 13일 한국소비자연맹에서 알리·테무와 ‘자율 제품안전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배우 마동석이 출연한 알리익스프레스 광고. /유튜브 캡처

또 다른 이커머스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알리, 테무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직구도 막는 정책”이라면서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철회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KC 인증은 CE(유럽공동체마크), UL(미국보험협회시험소인증) 등 해외 인증과 상호 호환이 안 돼 국내에 들어오는 업체라면 새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수용할 글로벌 기업들이 많지 않았을 거라는 게 이 관계자의 생각이다.

이 관계자는 “저가 제품을 대량으로 파는 알리, 테무라면 몰라도 미국, 유럽 회사들은 한 건에 수백만 원이 드는 인증을 받으면서까지 국내에 제품을 팔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마존에서 유모차를 살 때 UL 인증을 받으면 살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소비자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정책이 오히려 중국계 이커머스에 유리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중국산 부품을 들여와 전자제품을 조립해 파는 한 업체 관계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개당 300원짜리 부품 1만 개 주문하는데, 규제를 적용하면 수백만 원을 내고 모두 KC 인증을 받아야 한다”며 “한국 기업이 일일이 인증을 받는 사이 알리, 테무는 완제품을 한 번만 인증 받아 들어올 수 있다. 중국 플랫폼은 살려주고 영세 테크기업들은 죽으라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글로벌 거래가 확산하고 있어 직구 관련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전망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직구 과정에서 위해 제품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알리, 테무를 떠나 직구 시장에 구멍이 생겼다는 걸 의미한다”면서 “국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사전적인 가이드라인을 갖추고 실효성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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