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PF 대책, 시장원리가 중요한 이유는 [홍길용의 화식열전]
땅값 싸질수록 금융지원·주택공급 자극
금융권은 감당할만, 중소건설사는 타격
이익은 사유 위기는 시스템 공유 막아야
시행사 이익독점, 금융·건설사 위험집중
불평등·지속불가능한 구조 개선 이뤄져야
정부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책을 내놓은 지 1주일이 지났다. 좋게는 ‘옥석 가리기’, 거칠게는 ‘살생부(殺生簿)’다. 가닥을 잘 잡았다는 평가가 있다. 부실로 인한 충격을 막기에 부족할 수 있다는 걱정도 들린다. 이후 정부 행보를 보니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시장’이 키워드다. 그 동안 부동산으로 돈을 번 이들이 그에 합당한 책임을 감당하라는 접근이다.
지난 주 중국도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내놨다. 대출을 쉽게 하고 미분양 주택을 공공이 매입하는 내용이다. 정부가 대규모 특별국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의 상당부분 투입될 듯하다. 우리 정부와는 사뭇 다른 접근이다. 왜 우리 정부는 중국처럼 직접 나서지 않고 시장에 해결을 맡기기로 했을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체제 차이도 있지만 상황도 다르다.
중국은 이미 시장이 부실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아직 시장이 부실을 감당할 만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향후 주택시장 안정과 함께 재발방지 안전판 구축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상당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이를 잘 받아낼 지다. 시장 내 해결이 최선이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중국식 접근이 불가피할 수 있다.
▶명확한 기준…구조개선・부실사업장 예상 웃돌 듯
이번 대책은 돈 안되는 사업장은 구조를 바꿔 돈이 되도록 개선하거나 과감히 정리해서 추가적인 손실을 막자는 게 핵심이다. 돈이 될 만한 사업장에는 은행과 보험사에서 비교적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준다고 한다. 작전은 금융위가 짜고 실탄은 금융권에서 공급하는 구조다. 금융권이 낼 돈이 그리 충분해 보이지 않은 게 단점이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생사’의 선별 기준은 대출기간, 만기연장 횟수, 토지매입 및 인허가 여부 등 정량 요소가 많다. 브릿지론은 △최초 대출 만기 도래 후 장기간(6개월)이 경과했고 토지매입이 미완료된 경우, △최초 대출 만기 도래 후 장기간(12개월)이 경과했고 인허가가 미완료된 경우 △인허가가 완료된 이후 장기간(18개월)이 경과했는데 본PF로 전환하지 못한 경우 등에는 '부실우려' 사업장이 된다. 브릿지론과 본 PF 공통적으로 만기를 4회 이상 연장했거나, 연체이자를 납부하지 않고 만기 연장했거나, 경·공매에서 3회 이상 유찰되면 정리 상이 되는 ‘부실우려' 사업장이 된다.
금융당국이 부동산PF 문제를 들여다 본 지 이미 오래다. ‘살생부’ 후보자 명단은 이미 절반쯤 만들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작업은 빠르게 진행될 듯하다. 시장의 걱정은 크게 두 가지다. 구조개선이 어려운 곳이나 정리해야 할 곳이 너무 많을 수 있다. 그에 따라 금융회사와 건설사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불안이 부실을 더 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땅값 싸져야 집값도 안정…경・공매로 공급가격 합리화
부동산PF 구조를 보면 사업이 성공하면 토지매입 과정부터 대규모 차입을 일으킨 시행사가 가장 큰 이익을 보게 된다. 가격(분양가)에 따라 이익 규모가 달라진다. 금융회사는 대출이자, 건설사는 공사이익으로 몫이 고정돼 있다. 사업이 좌초되면 이익으로 얻을 수 있는 액수보다 훨씬 많은 부담을 지는 구조다. 불공정한 구조인데 과연 얼마나 투명할까? 사실 2011년 터진 저축은행 사태도 비슷한 문제였다. 재발을 막기 위해 정부 입장에서 이 참에 구조를 확 바꾸려 할 만도 하다.
부동산PF 부실 우려로 최근 주택건축 시장이 과도하게 위축됐다. 수 년 후 주택공급 부족 사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 입장에서 시장의 지나친 불안을 제거해 사업성 있는 주택은 계속 지어지도록 해야 한다. 최근 주택 공급부족 우려를 키우는 요인으로는 부동산PF 불안과 함께 인플레이션도 꼽힌다. 건설 비용 상승에 따른 집값 급등을 막으려면 땅값을 낮춰야 한다. 땅값을 낮추려면 부동산PF에 묶인 토지의 가치를 재설정해야 한다. 지금은 사업성이 부족하지만 경・공매 등으로 땅값이 낮아지면 원가가 하락해 분양가가 떨어지고 수요가 늘어 사업성이 높아질 수 있다.
▶금융권, 부실 부담 여력 충분…건설사, 시장원리 적용 불가피
땅값이 하락하면 돈을 댄 시행사와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준 금융회사, 보증을 선 건설사는 그만큼 손해를 봐야 한다. 금융회사는 부실채권 발생에 따른 충당금 적립, 건설사는 대위변제 부담이 발생한다. 시행사는 대부분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주주로 유한책임만 진다. 잘 되면 대박이지만 못 되더라도 이미 낸 돈으로 손실이 제한된다.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금융회사는 돈이 부족하면 증자 등을 통해 외부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인수합병(M&A)도 가능하다. 부실회사를 인수할 대형 금융그룹도 충분하다.
문제는 건설사다. 공사가 멈추면 돈줄도 끊긴다. 재무구조가 악화된 건설사에 돈을 빌려줄 금융회사는 많지 않다. 건설사 부도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우리 경제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대형 건설회사들은 부동산PF 부실 부담을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지방의 중소건설사가 약한 고리다. 스스로 살 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총선을 치른 후에야 이번 대책을 내놓았다는 점을 상기하면 지금 상황이 이해될 듯 하다.
▶이익의 사유화, 위기의 공익화 안돼…시장서 질서 제대로 잡아야
구조개선이 필요하거나 부실한 사업장 수나 경・공매로 넘어가는 토지들이 예상을 웃돌 가능성이 상당하다. 금융위가 ‘설득’을 해도 은행이나 대형보험사가 사업성이 없는 곳까지 대출을 집행할 리는 없다. 경・공매에서 유찰이 늘고 낙찰가가 낮아지면 싸게 사는 쪽에서는 그만큼 이익을 낼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 낮은 값에 팔린 땅에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나 보증을 선 건설사에 대한 시장 우려는 커질 게 뻔하다. 충당금 적립의무도 무거워졌다. ‘부실우려’ 판정을 받으면 75%를 쌓야야 한다.
신용평가사들이 금융회사와 건설사 신용등급 조정에 나서면 자금시장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된다. 상황에 따라 정부와 공적 부분의 역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공적 부분이 최대한 나서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주택 수요 구조 변화…부동산개발 사업구조 바뀌어야
당분간 지난 20년과 같은 초저금리가 재현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집값이 전반적으로 크게 오를 것이란 예상도 많지 않다. 최근의 건설 부진에 따른 공급 부족이 나타나도 서울과 강남, 수도권 등 일부 인기지역 집값만 계속 오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치솟은 집값을 감당하기에 소득 증가세가 너무 더디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의 규제로 특례대출이 아니면 목돈 만들기도 어렵다. 버텨봐야 부실이 심각한 부동산PF 사업장이 정상화되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지금의 부동산PF 부실은 이번에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골치덩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저금리 시대, 가계가 충분한 차입이 가능하던 때처럼 ‘지으면 팔리던’ 시대도 지났다. 가계부채가 너무 많아 부동산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도 어렵다. 짓는 비용은 많이 들고 사는 이들이 돈 구하기는 어려워졌다면 주택건설 시장에서도 새로운 사업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공자(孔子)의 제자 가운데 가장 극적 변화를 겪는 이가 자장(子張)이다. 재주가 많지만 허영심과 명예심도 높던 자장은 논어(論語)에 등장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가르침 이후 절제와 겸손을 배워 유가(儒家)의 큰 줄기가 된 인물이다.
어느 날 자장이 스승인 공자와 ‘통달(達)’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자장은 이른바 유명세(必聞)를 얻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자는 질직호의(質直好義), 찰언관색(察言觀色), 여이하인(慮以下人)이란 12글자로 정리한다. 정부 정책에 담겨야 할 덕목으로 삼을만하다. 쉽게 풀면 ‘질박하고 정의롭게 현장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하라’ 다. 우리 경제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PF 부실에 대한 정부의 이번 대책이 시장에서 제대로 통하기를 기대해 본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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