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인 섭외 '잘했다'더니…사흘 만에 '아무래도 조수빈으로'
KBS '역사저널 그날' 낙하산 논란 및 프로그램 중단 장기화…사측 입장은 의문 더 키워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KBS 1TV '역사저널 그날' MC로 조수빈씨를 요구했던 사측 인사가 한가인씨 섭외 소식을 듣고 '잘 했다'더니, 돌연 입장을 바꿨던 것으로 나타났다. 낙하산 MC 강요 논란에 '역사저널' 녹화가 취소된 지 21일 째, 프로그램 중단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19일로 예정된 첫 방영도 무산됐다.
KBS는 지난 14일 <'역사저널' 관련 사실관계는 이렇습니다> 제목의 자료에서 그간 경과를 일지 형태로 정리했다. 앞서 '역사저널' 제작진이 출연진 섭외를 마치고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중 이제원 제작1본부장으로부터 조수빈씨를 MC로 앉히라는 요구를 받았고, 이를 거부하자 무기한 잠정 중단을 통보 받았다고 밝힌 성명에 대응하는 성격이다.
이 입장문은 이 본부장이 녹화 예정일로부터 사흘 전(업무일 기준)에 일방적으로 MC를 요구하다 프로그램을 무산시켰다는 지적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측이 제시한 '진행 경과'는 되레 이 본부장이 한가인씨 섭외를 인지하고도 조수빈씨를 재차 요구했다는 지적을 뒷받침한다.
이 일지만 놓고 보면 이 본부장은 지난 3월22일 '역사저널' 담당 CP(Chief Producer·흔히 부장급인 책임프로듀서)와 통화에서 조수빈씨도 MC 후보로 고려하라 제안했고, 이를 들은 CP는 가능성이 작지만 배우 한가인씨를 MC로 섭외 중이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4월5일 CP 전체 회의에서 담당 CP가 한가인씨 섭외를 완료했다고 보고하자, 본부장과 CP 모두 섭외를 잘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랬던 이 본부장은 4월8일 “(다시 생각해보니) 조수빈을 MC로 해야 할 것 같다고 CP에게 직접 전달했고 CP는 프로그램이 무산되는 걸 막기 위해 사장, 조수빈 면담 등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으며 “본부장은 지휘계통이 있는데 부장이 사장 면담을 요청하는 건 곤란하다는 취지로 반대”했다고 한다.
이후 4월30일로 첫 녹화가 예정된 상황에서 조수빈씨를 MC로 두라는 요구가 반복적으로 이뤄졌고, 제작진이 이를 반대하자 이 본부장의 녹화 연기 및 편성 중단이 이뤄진 수순은 노사 양측이 동일하게 밝힌 내용이다.
이는 한가인 MC가 확정됐다는 보고를 받고 '섭외 잘했다'던 이 본부장이 왜 사흘 만에 이를 번복하고 조수빈씨를 고집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애초 조수빈씨를 지속적으로 섭외하라고 요구한 근거도 불분명하다. 한가인씨는 정치·이념적 논란에 한 번도 거론된 적 없는 유명 배우로, 제작진이 한씨 출연에 따라 2억 원 가까운 협찬(사측 자료 기준 1억8000만 원)을 받기로 한 상태였다. 이미 '역사저널'이 지난 2월 갑작스러운 폐지로 논란을 불렀던 만큼, 제작진은 한씨를 비롯한 출연진 모두 어렵게 설득해 섭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조수빈씨는 KBS '뉴스9' 등 앵커 등 경력이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산하 미디어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고, 현재 백선엽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 2022년에는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 국민의힘 전략공천 후보로 거론되는 등 특정 정치 세력과의 접점을 의심 받을 우려가 있다. 이 본부장은 4월18일 예정됐던 KBS '다큐 인사이트'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방영을 4·10 총선에 미칠 영향 등을 들어 불방시킨 바 있다. 정쟁과 무관한 세월호 특집을 무산시킨 그가 조씨를 강요한 것이 더욱 의아한 이유다.
이번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가인씨를 비롯한 출연진,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모인 제작진과 스태프는 물론 KBS에 대한 대외적 이미지 등도 타격을 입게 됐다. 녹화가 취소되고 프로그램 중단이 장기화하면서 기존에 준비된 수준의 제작과 협찬 등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시청자들은 '역사저널'을 언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지난 13일 현 제작진이 성명을 내면서 사태가 공론화된 가운데 14일 KBS PD협회 기자회견, 16일 그간 '역사저널'을 제작해온 PD들의 릴레이 성명 등 KBS 내부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 같이노조 등 사내 노동조합들도 이번 사태를 비판하며 이 본부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이 본부장과 제작진 모두 박민 사장에게 현 사태를 알렸다는 점에서 박 사장 등 경영진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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