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여학생 성폭행" 자백 후 자살한 男 유서, 대법원서 증거로 채택 안 된 이유는

김세령 2024. 5. 2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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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4년 5월 20일 (월요일)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이상민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원화 변호사 (이하 이원화) : 형사재판에서 유서는 과연 증거로 활용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누군가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별다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재판이 열려야 한다면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유서가 결정적 증거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 X파일 안녕하세요. 저는 변호사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이상민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 이상민 변호사(이하 이상민) :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이상민 변호사입니다.

◆ 이원화 : 오늘 저희가 다뤄볼 쟁점은 형사재판에서 유서가 결정적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가 이 부분입니다. 보통 유서, 유언 이런 거 하면 상속 과정에서 증거로 많이 활용된다 이렇게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 같거든요.

◇ 이상민 : 네 상속 과정에서 유언은 민법에서 정한 방식에 의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는데요. 흔히 생각하는 유서는 자필증서 즉 당사자의 자필에 의해 작성되는 문서를 의미하고 이러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내용 전체와 작성한 유언자의 주소, 성명을 직접 작성하고 낙인 즉 도장까지 찍어야 합니다.

◆ 이원화 : 형사사건에서는 유서가 증거로 제출되는 경우는 많지는 않죠?

◇ 이상민 : 아무래도 일반적인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사건의 당사자인 피고인이나 피해자가 생존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유서가 증거로 제출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이원화 : 아무튼 오늘 유서가 증거로 제출된 두 가지 형사사건을 비교해서 자세히 살펴볼까 하는데요. 먼저 최근에 보도된 사건입니다. 본인이 성폭행 가해자였다 고백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런 사건이 있었죠?

◇ 이상민 : 네 이 사건의 경우 2021년 3월 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유서가 발단이 된 사건인데요. 이 유서에는 2006년 중학교 3학년이던 시절 이 남성이 친구 3명과 함께 같은 학교 2학년 여학생을 불러 술을 먹이고 집단으로 성폭행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남성의 사망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유서를 확인하고 성폭행 사건에 대한 수사에 나서게 되면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 이원화 : 유서에는 혹시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었는지 아십니까?

◇ 이상민 : 유서에는 구체적으로 그날 왜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고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며 이 사건이 꼭 해결되길 바란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고, 유서를 작성한 남성이 친구 3명과 함께 같은 학교 2학년 여학생을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 이원화 : 경찰이 곧바로 수사에 들어갔나요?

◇ 이상민 : 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유서의 내용을 확인한 경찰은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 수사를 진행하였고, 피해자와 유서를 작성한 남성이 공범으로 지목한 3명 모두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나, 검찰에서는 당시 술에 취한 채로 귀가했고 속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는 등의 피해자의 진술이 유서의 내용과 동일하다고 판단하여 남성 3명을 기소하였습니다.

◆ 이원화 : 유서에 따르면 본인을 제외하고 3명의 가해자가 더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이 3명의 가해자들은 혐의 인정했나요?

◇ 이상민 : 공범으로 지목된 3명의 남성은 2006년 발생했던 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이원화 :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거는 피해자 진술일 것 같은데, 피해자는 뭐라고 하던가요?

◇ 이상민 : 구체적으로 피해자가 정확히 어떠한 진술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사건 당시 피해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귀가를 하였고, 속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는 등의 진술을 하여 성폭행 범행을 당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이원화 : 이 사건 같은 경우에 1심, 항소심, 대법원까지 간 케이스거든요. 일단 1심에서는 무죄가 나왔잖아요. 그러니까 가해자의 유서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던 거죠. 1심 재판부가 왜 그런 결정했는지 자세히 한번 설명해 주시죠.

◇ 이상민 : 네 1심에서는 유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즉 유서의 증거 능력을 부정하였는데, 당시 1심은 피해자 진술을 봐도 당시 성폭력을 당했는지가 명확하지 않고, 이 사건 직후 산부인과 진료 과정에서도 성폭력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볼 때 유서를 그대로 믿기 어렵고, 유서 작성 당시 작성자의 우울증 등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있었다라는 점을 설명하면서 유서를 증거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형사소송에서 증거능력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 사건 유서처럼 피고인, 즉 재판을 받는 자가 아닌 사람이 작성한 서류는 원칙적으로 재판에서 작성자에 의해 성립되었다는 점이 확인되어야 하고, 이 사건처럼 작성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해당 진술의 내용이 특별히 믿을 수 있는 상황에서 작성되었다는 점이 입증이 되어야 형사소송에서 증거로 쓸 수 있는데, 1심 법원은 이 사건 유서가 특별히 그 내용을 믿을 수 있는 상황에서 작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해서 유서를 증거로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이원화 : 법원에 나와서 이 유서를 확인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은 지금 이미 사망을 한 상태고 그렇다면 특별히 믿을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됐다라는 그런 다른 사정들이 존재해야 되는데 그런 사정은 없다 이렇게 본 거죠.

◇ 이상민 : 네 맞습니다.

◆ 이원화 : 그런데 항소심에서는 1심 결과 뒤집고 가해자들에게 유죄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와는 뭐가 달랐던 겁니까?

◇ 이상민 : 항소심에서는 1심과 달리 유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한 것인데요. 항소심에서는 유서를 작성한 남성이 중학교 친구들을 무고할 동기가 없는 데다 유서 내용이 구체적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피해자의 진술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유서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한편 유서 작성 당시 제3자의 회유나 강요가 개입된 정황이 없고 불안정한 심리 상태였다 할지라도 망상이나 환각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유서가 그 내용을 믿을 수 있는 상황에서 작성되었다고 본 것입니다.

◆ 이원화 :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됐는데 대법원에서는 어떤 결정이 내려졌습니까?

◇ 이상민 :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는 유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는데요. 작성자가 유서 내용처럼 오랜 시간 상당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기억이 과장되거나 왜곡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유서에는 범행의 구체적 정황 등에 관한 상세한 내용도 기재되어 있지 않고 범행을 어떻게 분담해 실행했는지 등이 나와 있지 않는 점 등을 언급하며 유서의 내용이 법정에서의 반대, 신문 등을 통한 검증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신빙성이 충분히 담보됐다고 평가할 수 없다라고 하며 형사소송법상 예외적인 사유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 이원화 : 대법원에서 결국에는 항소심 판결을 파기한 건데요. 원심 파기 결정을 내리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이상민 :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유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한 부분이 잘못되었고 이에 따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증거를 토대로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의 판단은 잘못되었다고 판단을 한 것이기에 항소심 법원의 유서의 증거 능력에 대해서 다시 판단한 뒤 사건에 대한 판결을 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당시 항소심으로 보내게 되는데 이를 법률용어로 파기환송이라고 합니다.

◆ 이원화 : 그러면 대법원에서 직접 재판을 하지 않고 원심인 항소심 법원으로 다시 사건을 돌려보낸다. 이 얘기인 거죠?

◇ 이상민 :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사건을 재판하게 된 서울고등법원으로서는 원칙적으로 유서의 증거 능력과 관련한 대법원의 판단을 따라야 하기에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 한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할 것이며 이러한 경우 항소심에서 유죄 선고를 한 결정적인 증거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기에 무죄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 이원화 : 그러면 대법원에서 직접 판단하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이 사건을 돌려받은 항소심 법원에서도 대법원 취지에 따라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사건도 살펴보겠습니다.

◇ 이상민 : 네 두 번째 사건은 2018년 겨울 한 여고생이 2016년에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의 사장으로부터 추행을 당하고 모텔에서 성폭행을 당하였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는데요. 수사기관은 이 유서를 근거로 식당 사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뒤 검찰에서는 유서를 주요 증거로 삼아 기소를 하였고, 재판에서는 이 유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이 되었던 사건입니다.

◆ 이원화 : 검찰에서 그러면 유서를 바탕으로 기소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 이상민 : 해당 유서가 발견된 이후 수사기관에서는 수사가 진행되었고 검찰은 유서를 주요 증거로 삼아 식당 사장을 기소하였는데요. 식당 사장에게 적용된 죄명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이 법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흔히 알고 있는 성폭행인 강간죄에서 말하는 피해자의 저항을 억압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위력이라고 하여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유무형의 세력을 행사하여 아동청소년을 가늠하면 처벌을 받게 되는데 이 사건에서는 이러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어 기소가 된 것입니다.

◆ 이원화 :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그러니까 여고생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식당의 주인이죠? 혐의를 인정했나요?

◇ 이상민 : 식당의 사장은 성관계가 있었음을 인정하였으나 강제나 위력이 아니라 서로 합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면서 혐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이원화 :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피해자의 유서가 증거로 채택이 됐나요?

◇ 이상민 : 당시 재판을 담당했던 재판부에서는 '피해자는 유서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학교생활의 허물까지 솔직히 드러내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적시했다. 피해자가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피고인을 무고할 뚜렷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하며 유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한편 알바 첫날 피해자와 신체 접촉에 합의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수긍하기가 어렵다라고 설명하면서 피고인에게 징역 3년 6개월의 형을 선고한 것과 더불어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 5년을 명령하였습니다.

◆ 이원화 : 앞서 살펴본 케이스와는 어떤 이유로 증거 능력, 증거 채택 여부가 달라진 겁니다.

◇ 이상민 : 앞서 살펴본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결국 유서가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지 즉 증거 능력이 문제가 된 케이스였는데요. 결국에 유서의 작성자가 사망한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유서의 증거 능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유서 작성 당시 작성자가 유서의 내용을 특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쓰였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는데 앞서 살펴본 케이스에서는 작성자의 당시 심리 상태 및 내용의 구체성 등을 근거로 유서의 내용을 특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쓰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반면, 이번 케이스의 경우에는 작성자가 진술의 내용의 신빙성 등을 인정하여 유서의 내용을 특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쓰였다고 판단하였기에 어떻게 보면 같은 사안에서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이원화 : 결국에는 유서의 내용에 따라서 개별적으로 판단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볼 수 있겠는데요.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남긴 유서를 근거로 검찰이 기소하고 재판까지 열리게 된 두 가지 형사사건 짚어봤는데 변호사님도 사건 살펴보시면서 많은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형사사건에서 유서를 증거로 활용하는 부분 어떤 의견 갖고 계십니까?

◇ 이상민 : 유서도 사건 당사자가 남긴 증거의 하나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증거로 활용되어야 하며, 특히 유서에 작성된 내용이 세세하게 작성되어 있고 실제 사실관계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어떤 사건에서 유력한 증거로 사용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형사재판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은 존중되어야 하고,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한 증거 능력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기에 이번에 알아본 두 가지 케이스와 같이 앞으로도 유서가 거의 유일한 증거가 되는 사안이 발생한다면 그 증거 능력을 인정함에 있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 이원화 : 사건 X파일. 오늘은 형사사건에서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유서가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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