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전 오늘 광주서 순직한 경찰…"아버지도 명령 받았을 뿐"
"그날 너희 아버지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정원영씨(55·남)는 44년 전인 1980년 5월 21일 오전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이른 오전 동네 골목에 나갔을 때 정씨를 보는 어른들의 눈빛이 달랐다. 가족같은 이웃들이 어린 정씨를 보고 아는 척도, 인사도 하지 않았다. 어른들의 눈빛이 12살 정씨에겐 차갑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이상하다 싶었는데 멀리서 실신한 어머니를 어른들이 부축해서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게 보였다"고 했다.
그날 정씨 집에는 고인 시신이 없는 빈소가 차려졌다. 셋째인 정씨를 포함해 다섯 형제 자매는 상주가 됐다. 장례는 한달 가까이 이어졌다. 정씨는 "한달이 지나서야 아버지 유골함을 볼 수 있었다"며 "아버지 동료분들이 시신을 어렵게 수습해 화장해 주신 것"이라고 했다.
정씨는 19살이 돼서야 경찰관이던 아버지가 동료 3명과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어떻게 숨졌는지 알게 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아버지 동료는 '너도 이제는 알아야 한다'며 그날의 현장을 설명해줬다.
1980년 5월 18일 공수부대가 광주에서 시민과 충돌하면서 전남도경(현 전라남도경찰청)은 경찰력을 광주에 집중했다. 고인이 명령을 받고 함평서 동료 50여명과 전남도청(현 광주광역시 5·18민주광장) 경비를 위해 현장에 도착한 건 20일 오후 7시쯤이었다.
시민들은 늦게 도착한 경찰관을 위해 시위 대열 사이로 길을 열어줄 만큼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공수부대는 앞서 18일부터 시위대와 시민을 가리지 않고 대검으로 찌르고 곤봉으로 폭행하는 등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전날(19일) 오전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이 시민들에게 울먹이며 "공수부대에 잡히면 죽는다"며 "도망가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20일 늦은 오후엔 시위대를 태운 버스가 금남로를 가득 메웠다. 일대엔 공수부대가 쏜 최루탄이 터지면서 최루가스가 가득했다. 이때 시위대를 태운 버스가 경찰 저지선을 들이받았다. 경찰관 4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당시 버스를 몰던 배모씨는 재판에서 "최루가스가 버스 안으로 들어와 눈을 뜰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다친 동료를 병원으로 옮긴 경찰관을 향해 시민들은 "경찰복 입고 있다가 큰일 난다"며 "내 옷을 입고 나가라"며 사복을 내어줬다. 함평서 직원들은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고 부상자는 병원에 둔 채 흩어져서 밤새 걸어 함평으로 복귀했다.
정씨는 줄곧 아버지와 동료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정부와 정당, 5월 단체 등 어디서도 알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2006년이 되어서야 고인은 국가 유공자로 인정됐다.
정씨는 "보훈처에선 안병하 치안감이 경우 5·18 민주화 운동 이후에 수사기관에서 고문을 받고 재판을 받는 등의 과정을 5·18민주화 운동유공으로 인정했다"며 "당시 현장에서 순직한 경찰관들은 인정받지 못했다. 아버지와 동료들은 당시 전남경찰국장인 안 치안감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다 현장에서 순직한 경찰관의 명예도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안병하 치안감(당시 전라남도 경찰국장)은 2003년 5·18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정씨는 "다시는 비극적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찰 공무원이 부당한 지시를 받고 거부해도 구제해 주는 법률적 제도나 장치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며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5·18민주화 운동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동료 경찰관들의 명예를 지금이라도 국가가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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