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문건]① 비밀보고서에 "쌍방울, 대북사업 내세워 주가조작" 정황

봉지욱 2024. 5. 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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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이 자사의 주가를 띄우기 위해 북한 측 인사와 사전에 모의했고, 이를 통해 발생할 수익금도 북측과 나누기로 했다는 첩보 등이 담긴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비밀 문건을 입수했다. 모두 45건에 이르는 문건에는 쌍방울이 대북 사업 호재를 이용해 주가 조작에 나설 가능성을 국정원이 사전에 포착했고, 그에 따른 대책까지 세웠던 사실도 들어있다.   

김성태 회장의 대북 송금 목적이 주가를 띄우기 위해서였다는 국정원 첩보는, 경기도가 추진한 스마트팜 사업과 이재명 지사의 방북을 위한 대가로 대북 송금이 이루어졌다는 지난 2년 간의 검찰 수사 내용과 배치된다.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며 국가정보원으로부터 2급 비밀 문건 3건을 제출받은 공문(2023.5.19.)

국정원 비밀 문건 최초 공개...800만 달러 대북송금 사건의 '스모킹건'

대북송금 사건의 핵심 쟁점은 김성태 쌍방울회장이 북측에 건넨 '800만 달러'의 사용처다. 검찰은 김성태와 쌍방울 임원들의 진술을 근거로 800만 달러 중 500만 달러는 경기도가 북한에 약속한 스마트팜(지능형 농장) 비용을 대신 내준 것이고, 나머지 300만 달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이 경기도 대신 북측에 비용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이재명 도지사에게 모두 보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확인한 국정원 문건에는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과 관련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쌍방울이 대북 사업을 미끼로 북측과 사전에 짜고, 주가 부양을 시도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국정원 문건 내용이 사실일 경우, 김성태의 800만 달러 대북 송금은 '경기도 비용 대납'이 아닌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으로 또다시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뉴스타파는 대북송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국정원 비밀 문건의 내용을 오늘(20일)부터 연속해서 보도할 계획이다.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씨가 작성한 2급 비밀문건 1쪽(2019.2.1 생산)

국정원 문건 45건 중 3건은 '2급 비밀'...김성태와 안부수 주시한 국정원

대북송금 사건을 수사하는 수원지검은 지난해 5~6월 국정원을 세 차례 압수수색해 문서 45건을 확보했다. 분량은 140여 쪽이다. 문건 작성자는 국정원 대북 정보 담당 요원들이다. 문건에는 이들이 2018년 8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첩보를 수집해 보고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신원이 철저히 가려진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 씨가 작성한 보고서 3건은 '2급 비밀'로 분류됐다. 극도로 민감한 내용은 국정원이 검찰에 제출하는 단계에서 이미 지워졌다. 

국정원 블랙요원 김 씨는 지난해 6~7월 재판에 증인으로 두 차례 출석했지만,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다. 국정원 문건의 내용이 아직까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 뉴스타파는 대북 송금 사건의 실체적 진실 파악에 '국정원 문건'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검증해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문건 내용을 종합하면, 국정원은 2018년부터 아태평화교류협회(이하 아태협) 안부수 회장과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 방용철 쌍방울그룹 부회장 등을 밀착 관리했다. 국정원은 경기도와 쌍방울이 각각 추진하는 대북 사업 전반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보고서를 작성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 북한 고위 인사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이들에게 '임무'를 주기도 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정원 문건에 따르면 쌍방울과 경기도를 북한 측과 연결해준 안부수 아태협 회장은 국정원이 '협조자'로 지정해 특별 관리한 것으로 확인된다. 또 안 회장은 국정원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북측 고위 인사들에게 명품 시계, 명품백, 달러화 등을 건넸고, 자신이 파악한 정보를 국정원에 보고한 것으로 나온다. 쌍방울은 안부수의 북한 인맥을 등에 업고 북한 고위 인사들을 수시로 만났고, 결국 대북 사업 협약까지 맺는다.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 씨가 작성한 2급 비밀문건 2쪽(2019.2.1. 생산)

대북사업 호재로 쌍방울 계열사 '주가 부양'...국정원, 협조자와 관계 종결

그러나 국정원은 협조자로 관리하던 안부수를 해고하기에 이른다. 2019년 2월 1일, 블랙요원 김 씨가 작성한 2급 기밀 문건의 제목은 '○○96○○ 종결 계획'이다. 여기서 ○○96○○은 안부수 아태협 회장을 지칭한다.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은 '협조자 주변 인물의 주가 조작 실행 가능성과 이에 따른 국정원 연루설 가능성이 제기되었다'면서 안부수의 협조자 지위를 종결하겠다고 적었다. 다만, 이 종결이 누구의 결정인지는 내용을 볼 수 없게 가려진 상태다. 

요원 김 씨가 문건을 작성하기 2주 전인 2019년 1월 17일, 쌍방울그룹은 중국 심양에서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위)와 대북 사업 협약을 체결한다. 북한에 매장된 희토류 등을 공동 개발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 사업은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가 맡았다.(나노스는 SBW생명과학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올해 3월 다시 퓨처코어로 상호변경했다. 퓨처코어는 현재(5월 20일) 거래정지 중이다.)

국정원은 협조자(안부수)가 협약 엿새 뒤인 1월 24일에 '나노스'의 이사로 취임한 사실을 포착했다. 문건은 또 나노스가 주식 시장에 대북 사업과 관련한 각종 호재 정보들을 임의로 흘리면서 나노스 주가가 '1월 초 5천원선에서 1.24경 9천원으로 수직 상승'한 사실도 기재했는데, 이것도 협조자 안부수와 관계를 끊은 이유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씨가 작성한 2급 비밀문건 4쪽(2019.2.1 생산)

2급 비밀에 등장한 쌍방울 오너 김성태...주가 조작에 국정원 연루 가능성 차단 

블랙요원 김 씨는 안부수와 관계를 종결하는 사유로 '○○96○○ 주변 인물(쌍방울 오너 김성태)의 주가 조작 및 국정원 연루 의혹 제기 가능성에 따른 사전 예방적 차원에서 종결(1.30.)'이라고 적었다. 이 내용 바로 아래는 가림막 처리 됐는데, 김성태의 주가 조작 가능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적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쌍방울그룹 계열사 나노스는 휴대전화 카메라 모듈 등 부품 생산을 한 곳이다. 그런데 2019년 1월 쌍방울이 대북 사업 협약을 하기 직전, 나노스는 사업 분야에 '광물자원 개발'을 추가했고,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 등 대북 관련 인물들을 전격 영입해서 발표했다. 다음달 미국과 북한의 베트남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잇따른 대북 관련 호재로 나노스의 주가가 두 배 가까이 폭등했는데 국정원이 이를 눈여겨 본 것이다. 

이에 대해 요원 김 씨는 '김성태가 이화영 부지사 및 ○○96○○을 앞세운 주가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는 한편 향후 當院(국정원) 연루의혹 제기 가능성 등 활용 시 위험성 지적'이라고 적었는데, 여기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일각에서 '국정원 연루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고 사전에 예측한 것이다. 

이는 요원 김 씨가 안부수를 협조자로 활용하며 국정원 특수활동비까지 지급해온 상황에서 안부수가 김성태의 대북 사업을 통한 '주가 조작'을 돕거나 방조했다가 사후에 적발될 경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요원 김 씨는 2019년 1월 30일 지난 8개월간 관리해 온 협조자 안부수와의 관계를 즉시 종결해야 한다고 상부에 보고했고 결국 받아들여진 것이다.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씨가 작성한 2급 비밀문건 5쪽(2019.2.1. 생산)

 또 다른 국정원 문건엔  '쌍방울이 북한과 주가조작 수익 나누기로 했다' 첩보

김성태 회장은 대북송금 사건 재판에서 "북측에 건넨 800만 달러는 모두 경기도 및 이재명 지사를 위한 돈"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 자신에 대해 대북 사업 '주가 조작' 의혹을 제기하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며, 실제로 주가가 오르지도 않았다는 게 김성태 회장의 입장이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확보한 국정원 문건에는 "북측 고위 인사가 쌍방울과 주가 조작 수익을 나누기로 약속하고, 구체적인 액수의 돈을 상납받는 방법까지 모색한 사실이 있다"는 첩보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문건의 작성자는 요원 김 씨가 아니었다. 이는 또 다른 대북 담당 요원도 투입돼 경기도와 쌍방울, 안부수 대북 행각을 면밀하게 감시해왔다는 방증이다. 

45건의 국정원 문서를 종합하면, 쌍방울그룹 김성태 회장이 계열사의 주가를 띄우기 위해 대북 사업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확인된다. 자사의 주가 부양을 위해 북측에 협조를 부탁했고, 그에 따라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다면 대북송금 사건의 실체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검찰은 김성태 회장에 대한 '주가 조작(자본시장법상 시세 조종)' 혐의는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뒤늦게 국정원 문건을 확보한 검찰이 이를 토대로 주가 조작의 실체가 있는지 추가 수사를 벌일 확률은 적어 보인다. 그럴 경우, 북으로 건너간 800만 달러의 성격이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타파 봉지욱 b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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