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순정…<순정 히포크라테스> 골드키위새
◆<메지나> <죽어도 좋아♡> <순정 히포크라테스> 골드키위새 작가의 이야기가 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한 세계를 만드는 신은 공평해야지’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521.html)◆
순정·로맨스·스릴러를 다 섞은 ‘섞어찌개’
—‘습니다’로 단호하게 말하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 인터뷰 콘셉트가 바뀐 것 같다. 바뀐 김에 개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소위 ‘약 빤’ 작가로 유명하다. 작품 중간중간 들어찬 개그가 일품이다. 후기 만화도 개그가 통으로 들어가 있어서 인기가 높다. 어떤 개그 수련을 쌓았나. 평소에도 코미디 많이 보고 웃기는 게 떠오르면 바로 메모할 것 같다.
“개그가 아니어도 소재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하려고 하는 편이긴 합니다. 후기 만화는 가끔 그리니까 재미있는 거지 생활툰처럼 매주 하는 건 어려워요. 개그는 웃기려는 생각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조던 필 감독이 했던 말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개그와 공포는 같은 문법으로 쓰인다.” 둘 다 분위기 조성과 예측 불허성이 정말 중요한 장르니까요.”
—그동안의 작품들은 대부분 순정 혹은 로맨스 드라마 장르지만 세부적인 장르로 본다면 무척 다양하다. 폭도 넓고 어떤 장르를 하든 해당 장르의 기존 문법을 명확히 알고 비튼다. 장르에 대한 철학이나 생각이 궁금하다.
“<순히포> 후기에도 쓴 얘기지만 저는 순정이 형용할 수 없는 장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자라면서 봐왔던 순정만화들에는 ‘순정만화는 이거야’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많았거든요. 제 만화도 그래요. 드라마도 있는 것 같고 스릴러도 있는 것 같고 어딘가는 또 로맨스도 있는 것 같고 그냥 섞어찌개 장르는 없나, 약간 이런 생각을 합니다.”
—방금 짚어준 1990년대 순정만화의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성이 작가의 작품 속에 가득 담겨 있다. 순정의 한 명맥이 이 시대에 로맨스 판타지, 현대 로맨스 같은 이름으로 정착했다면, 다른 명맥은 작가를 비롯한 개인 작가들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고 본다. 다음 골드키위새표 만화가 궁금하다.
“그동안 만든 작품들은 <메지나>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기획 통과를 노리고 만들어진 면이 있어요. 100% 제 취향이라기보다는 플랫폼의 니즈와 대중성, 제 취향을 조금씩 뭉쳐서 만든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그렸던 만화들이 진짜가 아니라든가 애착이 없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그런데 이번에 몸이 안 좋아지다보니 이번에야말로 뭘 그려야 통과될지 생각하지 않고 정말 그리고 싶었던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기획서가 아니라 초반부 회차를 제작해서 연재처에 제안했어요. 다행히 통과돼 카카오에서 2024년 10월부터 연재할 예정입니다. 동양풍 가상 시대물이고, 조심스럽지만 <메지나>를 즐겨 보신 분들이라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돛단배가 할 수 있는 일
—기획 반려는 고려사항에도 없었다는 뚝심이 반갑다. 또 한 번 최고작을 경신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개인 작가로서 현 웹툰 산업의 기업화된 스튜디오 작품이 잔뜩 쌓인 마당에서 경쟁하게 된다. 이번에도 혼자 작업할 텐데.
“혼자는 아닙니다. <순히포> 때 호흡을 맞췄던 최강의 어시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안 계시면 마감 못 지킨다고 봐야죠. 오히려 저는 최소 인원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는 쪽이 더 마음이 편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요즘은 스튜디오 작품이 많고, 또 대형 자본이 들어간 웹툰에 여러 인원이 참가하는 경우가 많아졌잖아요. 이렇게 승조원이 많은 함선이 할 수 있는 일은 크고 대단하지만, 저 같은 작은 돛단배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죽지 않고 작업하려 하는 편입니다.”
에필로그
인터뷰 원고를 아무리 추려도 분량을 훌쩍 넘긴다. 뺄 것을 빼면서 더 압축적으로 내용을 구성하려 작가에게 한 번 더 만나줄 것을 청했다. 작가가 좋아한다는 원사운드 작가의 단행본을 미끼로 걸었다. 그랬더니 <죽좋>의 백과장 포메라니안 인형이 하나 남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만나 물건을 교환하고 원고를 손보다 반가운 소식까지 입수했다.
골드키위새 작가의 데뷔작 <메지나>가 5월5일 오전 10시부터 카카오웹툰에서 재연재를 시작했다.(이미 “검증된 완결 명작을 다시 감상할 수 있도록” 순차적으로 유료회차가 무료로 전환된다는 작품 공지가 올라와 있다.) ‘다시보기’는 곧 새로운 독자의 유입이 일어나는 일종의 플랫폼 프로모션이다. 게다가 차기작 공개 즈음까지 무료회차 전환이 이어질 테니, 작가와 팬 모두에게 무척 반가울 일이다.
그런데 기쁜 소식 속에 작가의 안색을 살피니 벌써 연재 모드로 진입한 분위기다. “연재하실 때는 쉴 때와 좀 많이 달라지나요?” 내 질문에 마침 선물로 가져온 인형을 가리키며 답이 돌아온다. “이렇게 됩니다.” 새가 개가 된다니…, 최애 작가의 건투를 기원한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한겨레21이 사랑한 웹툰 작가’ 21명을 인터뷰한 ‘21 라이터스 ④’는 한겨레 네이버스토어에서 낱권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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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목록
<메지나> 2011년~2014년 다음 만화속세상(시즌 1∼4)과 레진코믹스(시즌5)에서 연재한 데뷔작. 현재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 중. 문학동네 단행본 출간. 판타지는 아닌 서양풍 가상 시대물. 골드키위새표 지략 대결과 망사랑의 원형이 담겼다.
<우리집 새새끼> 2013년 다음 만화속세상 연재. 현재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 중. 애니북스 단행본 출간. 이런 반려동물 생활툰은 없었다. 울다 웃고 웃다가 우는, 골드키위새표 후기 만화 스타일의 참신한 생활툰.
<죽어도 좋아♡> 2015~2016년 다음 만화속세상 연재. 현재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 중. 생각정거장 단행본 출간. 한국과 중국에서 각각 드라마화. 악덕 상사가 죽으면 주인공 루다의 하루가 리셋된다. 루프물 속에서 그려지는 요절복통 사람 고쳐 쓰기.
<망고의 뼈> 2016~2017년 레진코믹스 연재. 골드키위새 글, 넋부자들 그림. 현재 레진코믹스와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 중. 성장 배경이 다른 네 청소년이 서로를 통해 구원받고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
<순정 히포크라테스> 2019~2023년 카카오웹툰에 연재. 현재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 중. 의대생 군상극이자 골드키위새의 대표 순정만화. 중심인물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서사도 충실해 여러 감정과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인어의 연서> 2023년 젊은 만화가 테마단편집 <이 편지가 도착하면은>(문학동네) 수록 단편. 안데르센을 모티프 삼은 흑백 출판만화. <메지나>와 같은 시기에 기획했던 작품을 단편으로 소화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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