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6이닝 의무제? 선발 빼면 DH도 같이 빼라? MLB는 ‘선발 야구’가 그립다, 파격적인 아이디어들

심진용 기자 2024. 5. 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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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전당에 헌액된 대투수 그레그 매덕스는 MLB 23시즌 통산 5008.1이닝을 던졌다. 게티이미지


전설적인 좌완 강속구 투수 랜디 존슨은 MLB 통산 22시즌 중 14차례 200이닝 이상 시즌을 기록했다. 게티이미지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MLB)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투수는 샌프란시스코 로건 웹이다. 33차례 선발 등판해 216이닝을 던졌다. 적은 이닝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요즘 시대 기준의 이야기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3시즌에 대입하면 웹의 기록은 리그 15위에 불과하다. 그해 로이 할러데이가 266이닝, 바톨로 콜론이 242이닝을 던졌다. 2003 시즌 당시 44명에 달했던 ‘200이닝 선발’은 지난 시즌 웹을 포함해 5명밖에 되지 않았다.

멸종 위기 ‘200이닝 선발’


선발 투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달라졌다. 과거 MLB 선발 투수들은 경우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지면서 팀이 이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게 미덕이었다면, 지금은 최대한 위력적인 공을 던지면서 실점을 최소화하는 게 우선순위가 됐다. 선발이 일단 5회만 막아주면, 남은 4이닝은 불펜 투수들을 동원해 실점을 억제한다. 구속 혁명 이후 각 팀 불펜에는 150㎞를 가볍게 던지는 파이어볼러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MLB 각 팀이 내린 최선의 답안이 결국 완투·완봉이 없고, 200이닝 선발이 없는 지금의 야구다.

MLB 2003시즌과 2023시즌 이닝 소화 상위 10명 비교.


그러나 문제는 흥행이다. ‘랜디 존슨 대 그레그 매덕스’ 혹은 ‘페드로 마르티네스 대 로저 클레멘스’ 처럼 선발 매치업만 봐도 가슴 설레는 과거의 낭만이 이제는 없다. 디어슬레틱은 “최고의 야구 전략이 항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전략인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각 구단 프런트들이야 성적이 최우선이겠지만, 적잖은 팬들은 옛날 같은 강력한 선발 야구를 보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디어슬레틱은 전·현직 선수들을 비롯한 야구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선발 야구를 직·간접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몇 가지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당장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발상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선발 투수 6이닝 의무제는 가능할까


먼저 ‘선발 6이닝 의무제’다. 선발로 등판한 투수는 무조건 6이닝 이상 던지도록 강제하자는 아이디어다. 특별한 이유 없이 6이닝 이전에 선발 투수가 교체된다면 그 투수를 부상자 명단에 올리거나, 출장 정지 혹은 벌금과 같은 징계를 내릴 수 있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과거에는 그런 야구를 했다. 1988시즌 선발 투수의 6이닝 이상 투구 비율은 69.3%였다. 그러나 2020시즌엔 31.8%로 반 토막 이하가 됐다.

6이닝 의무제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면 다른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선발 투수를 교체할 때 지명타자도 함께 경기에서 빼도록 하는 ‘더블 훅’은 이미 실제로 시행 중인 제도다. 미국 독립리그 중 하나인 애틀랜틱리그에서 2018년부터 이런 제도를 시행해 왔다. 선발 투수를 뺄 거라면 타격의 손해도 감수하라는 의도다. 애틀랜틱리그는 더블 훅 도입 초창기만 해도 이닝과 관계없이 선발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내려가면 무조건 지명타자도 경기에서 빼거나 다른 포지션으로 옮기도록 했다. 지나치게 과한 규정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지난해부터는 선발 투수가 5회 이전에 내려갈 때만 ‘더블 훅’을 적용하도록 했다.

최근 50년간 MLB 선발 투수 6이닝 투구 비율 변화. (출처 : 디어슬레틱 / 베이스볼레퍼런스)


26인 액티브 로스터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로스터에 11명 넘게 투수를 등록할 수 없도록 하자는 얘기다. 투수 숫자가 제한되면 당연히 불펜 자원을 아껴야 하고, 그만큼 선발의 비중은 커질 수밖에 없다. 20일(한국시간) 현재 MLB 30개 구단 중 29개 구단이 현행 규정상 최대치인 13명의 투수를 등록했다. 휴스턴 1팀만 12명이다. 선발 5명을 제외하고 불펜에만 투수 8명을 쌓아두고 경기를 풀어가고 있는 셈이다. 불펜 대기 인원을 5~6명까지 줄인다면 반대급부로 선발의 역할은 급등한다.

로스터 투수 제한은 롭 만프레드 MLB 커미셔너가 공개적으로 검토 의지를 밝힌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1차전이 끝난 자리에서 만프레드는 선발 투수들의 스타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면서 “투수 13명 등록 제한만으로는 선발 투수에게 많은 것을 끌어내기 어렵다. 12명 혹은 그보다 더 적은 숫자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부상이다. 그러잖아도 투수 부상이 늘고 있는데, 로스터에서 투수 숫자까지 줄여버리면 부담이 더 커진다. 각 구단 프런트가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아이디어 중 하나가 로스터 제한이라고 디어슬레틱은 전했다.

볼티모어 에이스 코빈 번스는 밀워키 소속이던 2021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받았지만 167이닝만 던졌다. 게티이미지


MLB도 KBO처럼 주 6일 야구?


부상이 문제라면 아예 다른 방식의 접근도 가능하다. 특히 부담이 많이 가는 구종들을 아예 금지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몇 년 전부터 대유행 중인 스위퍼다. 스위퍼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만, 한편에선 팔꿈치에 지나치게 무리를 준다는 주장이 나오는 중이다.

‘선발 야구’를 위한 아이디어는 이뿐 아니다. 선발 투수가 6회를 넘기면 추가 교체 카드나 타임 아웃 기회를 주는 식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KBO처럼 일주일에 고정적으로 6경기만 하자는 것 역시 아이디어 중 하나다. 주중 하루를 고정 휴일로 두자는 것이다. 주 6일제를 6선발제와 병행한다면, 특정 요일은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의 고정 등판일로 둘 수 있고 그에 따른 흥행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나같이 당장 시행하기는 어려운 발상들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다. 리그는 이미 시프트를 제한했고, 베이스 크기를 확대했고, 피치 클록을 도입했다. 보다 더 다이내믹한 야구로 더 많은 팬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뭐든 시도할 수 있다는 게 지금의 MLB다. MLB는 선발 야구를 그리워 하고 있다.

롭 만프레드 MLB 커미셔너. 게티이미지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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