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시 권력공백 후계구도는…정치적 과도기 이란 혼란상 가중

서혜림 2024. 5. 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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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라이시 유고시 제1 부통령 승계…50일 안에 선거
하메네이 후계구도에 영향…"성직자-군부간 권력투쟁 전개될 수도"
히잡 시위·경제난 등 거치며 민심 이반…수면 아래 여론 분출 기폭제 가능성도
댐 준공식 참석한 라이시 이란 대통령 (이란-아제르바이잔 국경 로이터=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왼쪽)과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국경 지대에서 열린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은 댐 준공식 참석 후 타브리즈로 돌아오던 중 탑승한 헬기가 산악 지대에 추락하면서 실종됐다. 2024.05.20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헬기 추락 사고로 실종되면서 이란 정국이 시계제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의 유력한 후계자였다는 점에서 유고시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정국이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히잡 시위 유혈 진압 사태, 경제난 등을 거치며 수면 밑에서 끓어오르던 국민 분노가 강경노선을 주도해온 리더십 진공 상태를 계기로 분출, 혼란상이 가중되며 내부 권력 변화 등을 앞당기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헌법은 대통령의 유고시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50일 이내 새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라이시 대통령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대통령직은 이란 12명 부통령 중 가장 선임인 모하마드 모흐베르에게 일단 승계되며, 그는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한 보궐선거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WP가 전했다.

외신들은 대통령이 아닌 최고지도자에게 실권이 집중된 이란의 정치 구조상 라이시 대통령의 유고가 당장의 이란의 대내외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에서 대통령은 최고지도자에게 종속된다며 "여러 면에서 라이시 대통령은 명목상 리더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가디언도 "이란은 성직자와 정치인, 군대 사이에 종종 불투명한 방식으로 권력이 분산된다"며 "궁극적인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최고지도자"라고 설명했다.

그렇더라도 이란 정국에 미칠 파장은 상당할 수 있다고 외신들은 내다봤다.

라이시 대통령이 36년째 집권 중인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에 이은 사실상의 이인자로, 그의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돼왔다는 등의 점에서다.

아야톨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하메네이가 85세의 고령이라는 점을 고려해 현재 실권을 잡은 이란 강경파들은 원활한 승계를 위해 준비해 왔으며, 이들이 라이시를 대통령으로 세운 것 역시 그 일환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실제 2021년 대선 당시 후보 자격을 심사하는 이란 헌법수호위원회는 수백 명의 예비 후보를 실격시키고, 라이시의 승리를 유력하게 하는 후보 구도 속에서 선거를 치렀다.

라이시 대통령을 제외하고 최고지도자 자리를 이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거의 유일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몇 년간 이란인들은 하메네이를 이을 유력 후보자는 라이시 대통령과 모즈타바 하메네이 단 두 명뿐이라고 여겨왔다며 "다른 성직자들도 다크호스 후보군으로 거론되지만, 그들이 충분한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최고지도자 자리 승계가 현실화할 경우 정국이 또다른 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시선도 있다.

가디언은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이 확인될 경우 이란 최고지도자 자리의 세습 가능성을 확실히 높이게 된다며 "이는 많은 성직자가 이란의 혁명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하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이코노미스트도 라이시 대통령의 유고에 따른 혼란이 "중차대한 권력 투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 역내 전쟁이 전개되는 가운데 이란 국내적으로는 성직자들과 군 세력간 파워 싸움이 현실로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최고자도자 자리에 오를 경우 "반발을 견디기 위해 이란혁명수비대(IRGC)에 의존할 것이며, 이는 결국 정권 내의 IRGC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며 그 결과 이란이 성직자와 군부가 권력을 분점하는 '혼합 정권'에서 군사 정권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이런 가능성이 현실화할 경우 이란이 국내적으로는 종교적 보수주의가 약화할 수 있지만, 대외 정책 면에서는 서방 등에 대한 적대감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라이시 대통령 유고시 이란 사회도 격변에 휘말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서방 언론은 진단했다.

가디언은 "이번 헬기 추락 사태는 이란이 이미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와중에 일어난 것"이라며 "정치적 과도기에 놓여있는 이란이 지도자 한 사람이 바뀌는 것 이상의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hrs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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