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힘들면 안아주세요] 신체 접촉, 치유 효과 입증

이영완 조선비즈 사이언스조선부장 2024. 5. 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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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갓 태어난 아기를 가슴에 안으면 출산의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포옹이나 악수를 하거나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 신체적 접촉을 하면 마찬가지로 불안과 통증을 줄이고 행복감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 신경과학연구소 소셜 브레인 랩의 줄리언 팩하이저(Julian Packheiser) 박사 연구진은 4월 9일(이하 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인간 행동’에 “서로 합의한 신체 접촉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대규모 문헌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고 밝혔다.

논문 212편 분석, 신체 접촉의 효과 확인

직장이나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을 때 누군가가 안아주거나 어깨를 토닥여주면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신체 접촉을 하면 정말 기분이 나아지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이 문제를 다룬 논문도 있지만, 특정 사례에만 초점을 맞춰 다른 연구와 서로 모순되기도 했다.

가족이 자주 안아주면 마사지를 받는 것보다 신체, 정신 건강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진 네덜란드 신경과학연구소

네덜란드 신경과학연구소와 독일 에센대학병원 뇌연구소 과학자들은 신체 접촉의 치유 효과를 종합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1만2966명을 조사한 관련 논문 212편을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신체적 접촉은 통증과 우울감, 불안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 따르면 치매 노인이 6주 동안 매일 20분씩 마사지를 받으면 공격성이 감소하고 혈중 스트레스 표지자의 수치가 낮아졌다.

연구진은 마사지나 포옹이 접촉 유형이 달라도 성인의 심신 건강에 모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특히 아픈 사람일수록 치유 효과가 더 컸다. 팩하이저 박사는 “모든 사람이신체적 접촉으로 건강에 도움을 받지만, 심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건강한 성인보다 혜택을 훨씬 더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로봇이나 담요처럼 사물과 접촉해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연구에서는 로봇 바다표범을 어루만진 건강한 젊은 성인이 천문학자에 관한 기사를 읽은 사람보다 가벼운 열 자극에 통증을 덜 느꼈다. 이번 논문 공동 저자인 프레데리크 미숑(Frédéric Michon) 박사는 “만질 수 있는 로봇이나 담요가 외로움뿐만 아니라 질환으로 인해 정신 건강이 나빠진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는 치매 환자 치료용으로 바다표범 로봇 ‘파로(Paro)’를 개발했다. 안으면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촉감을 줘 환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미국 보스턴 아동 병원은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과 함께 어린이 환자와 놀아주는 소프트 로봇인 ‘허거블(Huggable·안고 싶어지는)’을 개발했다. 물론 사람이 사물을 만지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정신 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2001년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가 치매 환자 치료용으로 개발한 바다표범 로봇 ‘파로(Paro)’. 환자가 안으면 반려동물 같은 체온과 촉감으로 심리적 안정을 준다. 사진 AIST

자주 안아주면 마사지보다 더 효과

흥미롭게도 누가 만지는지, 어떻게 만지는지, 또 얼마나 오래 만지는지는 치유 효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가 잠깐 안아주는 것은 마사지를 오래 받는 것만큼 효과적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접촉 빈도가 높아지면 치유 효과는 더 커진다. 따라서 가족이나 친구가 자주 안아주면 마사지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다만 치유 효과는 접촉 부위에 따라 달랐다. 몸통보다 얼굴이나 두피를 만졌을 때 건강 상태가 더 나아졌으며, 한 방향으로 만지는 것이 무작위로 만지는 것보다 더 좋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가족이나 연인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다친 사람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해진다. 미숑 박사는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얼굴과 두피에 감각 정보를 받는 신경이 더 많기 때문일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보스턴 아동 병원은 MIT 미디어랩과 함께 어린이 환자와 놀아주는 소프트 로봇인 ‘허거블(Huggable·안고 싶어지는)’을 개발했다. 사진 MIT

신생아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에 안기면 금방 울음을 그치고 편안해진다. 연구진은 아기는 낯선 의료진보다 부모가 만질 때 건강에 더 좋았다고 밝혔다. 이 점에서 조산(早産) 사망률이 높은 국가에서 신생아가 부모의 손길을 더 받도록 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제안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신체 접촉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밝히지 못했다. 또한, 인간과 동물의 접촉에 대해서도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미숑 박사는 “반려동물과 접촉하면 사람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반대로 동물도 사람과 신체 접촉을 통해 혜택을 받는지 결론을 내리기에는 적절하게 통제된 연구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신생아는 엄마 품에 안기면 편안함을 느낀다. 네덜란드 과학자들은 신생아와 산모의 신체 접촉을 높여 조산 사망률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사진 픽사베이

영국 정부는 아이 안아주기 캠페인 시작

영국 정부는 부모가 아이들을 더 자주 안아주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빅토리아 앳킨스(Victoria Atkins) 영국 보건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거친 사랑이 아니라 더 많은 포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앳킨스 장관은 여러 세대에 걸쳐 부모들은 잘못된 육아법을 배웠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아이를 너무 많이 안아주면 집착이 생긴다거나 우는 아기는 스스로 달래도록 놔둬야 한다는 식이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절반 이상이 이런 조언을 들었으며, 3분의 1은 그대로 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최근 영국 보건부에서 시작한 ‘스타트 포 라이프(Start for Life)’ 캠페인은 이러한 잘못된 통념을 없애고 부모가 원하는 만큼 아이를 안아주도록 장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지나치게 엄격하면 아이의 정신 건강을 해치고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경고한다.

영국 정부는 스타트 포 라이프 캠페인에 3억파운드(약 5125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전국에 가족 허브 400곳을 만들어 부모들에게 올바른 육아법을 조언할 계획이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같은 지원을 한다. 앳킨스 장관은 4월 6일 선데이 익스프레스와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인생에서 최고의 출발을 할 수 있다면 아이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정말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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