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제21대 국회의원 양향자 | 정치가 반도체 기업을 해외로 등 떠미는 것은 아닌가

양향자 21대 국회의원 2024. 5. 20. 11:1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출렁이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미국의 중국 견제로 시작된 반도체 공급망 재편은 양안(중국·대만) 갈등과 대만 지진 등의 돌발 변수까지 겹치며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단 하나 확고한 것은 각국 정부의 반도체 육성 의지다.

미국은 4월 8일(이하 현지시각) TSMC에 66억달러(약 8조9600억원), 4월 15일에는 삼성전자에 64억달러(약 8조6800억원) 보조금 지급을 발표했다. 이는 모두 같은 달 3일 대만에서 강진이 발생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필자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반도체 공급망을 뒤흔드는 변수가 많은 때일수록 더욱 확실하고 지속 가능한 전략으로서 자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보해 두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읽힌다. SK하이닉스 역시 39억달러(약 5조 2900억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보조금을 신청해 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당분간 미국 땅에서 주로 이뤄질 것 같다.

2024년 2월 일본 남서부 구마모토현의 농촌 마을인 기쿠요에 건설된 TSMC의 자회사 JASM 공장 전경. 사진 AFP연합

美 대규모 보조금 vs 韓 인허가 지연

일각에서는 우리 반도체 산업의 쾌거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규모와 스피드 싸움인 반도체 경쟁에서 더 많은 보조금을 즉시 지급하겠다는 국가에 투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기업의 투자 재원이라는 것은 한정돼 있으니, 미국에서 투자 확대가 한국 내 투자에 ‘양(量·+)’의 영향을 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뒤로 이어질 양질의 일자리 창출, 직간접 생산 유발효과 등을 생각하면, 국가 전체적으로는 아쉬움이 있다.

2024년 2월 일본 남서부 구마모토현의 농촌 마을인 기쿠요에 건설된 TSMC의 자회사 JASM 공장 전경. 사진 AFP연합

미국에서는 대규모 보조금을 줘 가며 삼성이나 TSMC 같은 외국 기업까지 불러들이고 있는 와중에 우리 기업의 국내 투자는 인허가 절차에 갇혀 있다. SK하이닉스가 올해 완공 목표한 용인 공장은 착수한 지 만 5년이 되도록 첫 삽도 못 뜨고 있다. 애초 계획보다 2년이나 늦어진단다. 기간이 늘어지면서 비용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삼성전자 공장 부지는 조성조차 되지 않았다. 공사가 제때 된다 하더라도 전력 공급 차질로 가동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한전과 기업, 정부 등이 전력 공급 계획을 신속히 이행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는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전력망 구축이 어렵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아직 가시적인 효과는 없어 보인다. 반도체 투자에 대한 지원이 이미 경쟁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데, 조성 속도까지 몇 배나 더디다. 2024년 2월 완공된 TSMC 일본 구마모토 1공장은 2021년 10월 계획 발표 10개월 만에 착공돼 2년 반 만에 완공됐다. 일본 정부는 공사비 절반 가까이를 보조금으로 지급했고, 구마모토현은 용수와 전기 등 인프라 구축과 관련한 제반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섰다.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은 2021년 11월 투자를 발표한 이후 불과 2년 만인 올해 말 가동을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기업 특혜 아니냐느니, 특정 산업 밀어주기라느니’라고 발목 잡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를 들면서 지역사회에 대한 기업의 헌신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보조금 받고 日 투자하면 정신 차릴까"

반면 우리나라는 기업이 행정 절차에 시달리느라 착공도 못 한 채 5년은 쉽게 지나가 버린다. 모든 단계에 특혜 시비가 붙는 것은 이제 익숙한 그림이다.

보조금 등 재정 지원은 별개 사안으로 둔다 하더라도 인프라 구축을 주도하고 행정적인 절차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것은 분명 정부 차원에서 풀어줄 수 있는, 아니 풀어줘야만 하는 문제다. 시민사회와 주민, 여타 지자체 등 복잡한 이해관계인의 눈치만 보면서 뒷짐 지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시간을 허송하는 매 순간 우리 반도체의 골든타임은 지나가고 있다. 눈치 싸움, 정치 싸움할 때가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반도체 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우리 정치는 도대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본 어느 도시에 보조금을 받고 대규모 투자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봐야만 정신을 차릴 것인가.

Plus Point
‘반도체 공장’에 400조원 쏟아붓는 글로벌 보조금 전쟁…韓 “금융·세제 지원만”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주요 기업 공장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한 보조금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은 2022년 8월 도입된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에 따라 인텔(85억달러·약 11조5400억원), TSMC(66억달러·약 8조9600억원), 삼성전자(64억달러·약 8조6800억원), 마이크론(61억달러· 약 8조2800억원)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일본은 구마모토현에 건설된 TSMC 1공장과 건설 예정인 2공장에 총투자비 40~50% 보조금을 지원한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미국, 중국, 일본, 대만, EU 등 주요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 보조금은 지금까지 발표된 것만 400조원가량이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산업 지원에 1조위안(약 188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3400억위안(약 63조9600억원) 규모의 국가반도체펀드도 조성해 운용하고 있다. 칩스법을 시행 중인 미국은 390억달러(약 52조9500억원)가량 생산 보조금과 연구개발(R&D) 지원금 132억달러(약 17조9200억원) 등 5년간 527억달러(약 71조5500억원)를 지원할 방침이다. 텍사스· 뉴욕·아이다호주 등은 자체 칩스법으로 반도체 기업을 지원 중이다.

EU도 2022년 430억유로(약 58조3800억원) 규모의 정책 지원 패키지를 통해 현재 10% 수준인 유럽의 반도체 세계 생산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유럽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이 밖에 일본이 128억달러(약 17조3700억원) 이상, 인도는 100억달러(약 13조5800억원)가량을 반도체 산업에 쏟아붓고 있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4월 30일 니어재단 주최 포럼에서 “미국의 보조금 정책에 따라 미국 투자가 이어지자 각국은 이제 눈치보지 않고 자제했던 산업 보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 대만 등 각지에서 보조금을 도입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한국만 하지 않는다면 반도체 점유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한국의 반도체 정책은 보조금 지원을 배제한 금융·세제 지원 중심이다. 반도체 기업의 설비투자에 25~35%, 연구개발 투자에 30~50%의 투자 세액공제 등을 제공한다. 이외에 정부는 2023년 12월 반도체 등 5대 중점 분야에 102조원 규모의 정책 금융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반도체 보조금 지원에는 부정적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4일 조지아주 트빌리시에서 진행한 기자 간담회에서 “제조 역량이 떨어지는 일부 선진국은 보조금을 줄 수 있지만, 우리 경우 반도체에서 약한 부분이 생태계, 소재·부품·장비, 인프라 부문”이라며 “민간이 못하는 이러한 부문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하고, 기업이 잘하는 부문은 세제 지원과 금융 지원을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