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파적 <54>]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악성 팬덤’… 팬덤 정치의 심리학

김진국 문화평론가 2024. 5. 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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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지인 A씨가 해준 이야기다. 문화·예술 담당 간부인 A씨는 자신의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지역 축제에 가수 임영웅을 초청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알다시피 임영웅은 2020년 TV조선에서 방송한 ‘내일은 미스터 트롯’에서 최종 1위를 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가수다. 그런데 A씨는 임영웅 팬덤(fandom)의 위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공연은 막상 오후 6시에 시작되는데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버스 수십 대가 축제가 열리는 장소로 몰려들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속속 무대에 가까운 앞쪽 좌석을 선점했다고 한다. 지자체 특성상 무대와 관객석을 꾸밀 때 앞쪽은 일부 주최자를 위한 좌석을 제외하고는 그 지역 주민을 먼저 배려하는 게 관례다. 지역 축제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그 고장에 거주하는 지역민과 축제를 보기 위해서 구경을 온 다른 지역 주민들이다. 그런데 축제 공연의 앞좌석을 특정 초대 가수의 팬들이 차지해 버리니 주최 측 관계자들로서는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물론 가수 임영웅의 팬덤은 매우 건전하고 상식적인 사람들이라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를 열렬히 응원하는 것 이외에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등 눈살 찌푸리는 일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악성 팬덤과 악성 정치인은 기생충이자 숙주로서 수시로 역할을 바꿔가며 팬덤 정치에 기생한다. 사진 셔터스톡

사람들은 왜 특정인의 팬(fan)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일까?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팬덤의 구성원들은 더 큰 그룹에서 안정감을 찾는 ‘소속의 욕구(desire to belong)’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함께 콘텐츠를 즐기는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팬덤에 속한 사람들은 다른 멤버들과 서로 소통하고 즐기면서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욕구다. 특정인의 팬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현실도피의 심리(psycholo-gy of escapism)’도 있다. 팬덤에 속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에 몰입하면서 멤버들의 지지와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러한 지지와 위로는 현실의 다른 집단에서 받을 수 없다는 측면에서 팬덤의 심리 내면에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팬덤 중에는 심지어 자신을 훌륭한 지지자로 브랜딩하려는 사람도 있다. 쉽게 말하면 같은 팬덤 안에서도 자신이 ‘가장 훌륭한 팬’으로 튀고 싶고 그렇게 각인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다른 팬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자기 브랜딩 욕구(desire for self-branding)’를 꼭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관건은 언제나 중용(中庸)이다. 균형과 절제를 잃고 선을 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앞서 임영웅의 팬덤을 이야기했다. 모든 팬덤이 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정 팬덤에서는 지지하는 스타가 자신들과 다른 팬덤이나 혹은 무관심한 사람들에 대해서 냉혹하다. 특히 자신들이 지지하는 사람이 일반 연예인을 비롯한 대중문화 종사자가 아니라, 특정 이데올로기나 이념을 신봉하는 정당의 정치인인 경우에는 문제가 좀 심각한 양상을 띠기도 한다. 자신이 진정한 팬이고 팬덤이라면 그들은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작품을 향한 애정이나 열정을 중심으로 뭉쳐서 단결하는 그 자체에서 희열을 맛보는 데서 만족할 것이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이 그 분야에서는 최고라고 믿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그것만이 즐거움의 유일한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팬덤은 좋아하는 대상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그 자체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분출되는 자신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엄청난 도파민의 양에 어쩔 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일종의 도파민 중독자들이다.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도파민 중독은 도파민이라는 뇌 화학물질이 정상 범위를 넘어 과도하게 많이 분비될때 발생한다. 도파민은 뇌에서 쾌락과 보상에 관여하고, 동기부여와도 관련이 있다. 일단 도파민에 중독되면 중독자는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활동에 집착하게 된다. 심하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일종의 마약중독 현상처럼 중독을 끊어 내기도 쉽지 않다. 이런 도파민 중독에 걸린 것과 같은 부정적 행태를 보이는 팬덤을 심리학자들은 ‘유독성 팬덤(toxic fandom)’ 혹은 ‘악성 팬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악성 팬덤은 열혈 지지층으로서의 상식적이고 건전한 팬덤과 구별된다. 악성 팬덤은 악성 종양과 유사하다. 독성이 있다. 극단주의적이다. 망상적인 사고를 한다. 악성 팬덤은 현실을 왜곡하거나 무시한다. 팩트를 외면한다. 잘못된 정보나 오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잘못된 이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망상적(妄想的)이다.

악성 팬덤은 팬덤 정치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 건전하고 상식 있는 국민이 수긍할 만한 정책이나 입법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극렬 지지자들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그들의 이익만 철저하게 챙기는 것이 팬덤 정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팬덤 정치는 악성 팬덤이 주도하는 악성 정치로 흘러갈 확률이 매우 높다. 우리는 일부 팬덤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연애하거나 결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를 흔히 본다. 하지만 그런 수준을 넘어, 지지하는 대상이 연애를 할 때 지지 대상은 물론 연애하는 상대방에게까지 욕설과 비난, 협박을 한다면 그것은 악성 팬덤이 맞다. 마찬가지로 팬덤 정치에 개입하는악성 팬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의 수준을 넘어선다. 지지자에 대한 동일시의 수준도 넘어선다.

정치 분야의 악성 팬덤은 어떤 정치인을 자신들 집단의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려 든다. 그 정치인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협박은 기본이다. 심지어 자신들과 같은 정당이라도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찾아가서 비난과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악성 팬덤에 찍히면 정치생명이 끝장나는 경우도 많아서 정치인들은 악성 팬덤의 눈치를 본다. 한심하게도 아예 처음부터 악성 팬덤의 구미에 맞춰 정치생명을 이어가는 정치인들도 부지기수다. 이런 악성 팬덤은 마치 봉건시대에 선량한 군주에 맞서는 사특한 귀족계급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군주가 선정을 베풀며 민심을 얻더라도 자신들 귀족계급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정치를 한다면 몰아내려 안달한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국왕조차 갈아 치운다. 더 한심한 것은 그런 악성 팬덤에 맞춰 악성 팬덤의 자발적인 꼭두각시가 되려는 악성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악성 팬덤의 ‘좌절감 해소 통로’로 활용되기를 갈망한다. 악성 팬덤과 악성 정치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충이자 숙주로서 수시로 역할을 바꿔가며 팬덤 정치에 기생한다. 이런 악성 팬덤과 악성 정치인은 민심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면 뭐든지 한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 중우정치(衆愚政治)의 현대판 주인공들이다. 대중의 무지와 선동, 편견을 조장하는 이들 악성 팬덤 정치의 주인공들은 정말로 ‘호환(虎患), 마마(媽媽)보다 더 무서운’ 패거리들이요, 정치 혐오를 조장하고 정치 자체를 무너뜨리는 사악한 족속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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