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멀티레이블화, 'IP 집중확보→유기적 협업' 새 방향 모색
최근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 모회사 하이브 사이의 격한 갈등과 함께, 이들의 실질적 분쟁 배경이라 할 멀티레이블 구조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안정적인 글로벌 성장을 목표로 도입한 K팝계 멀티레이블 시스템에 대한 물음과 해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번 엔터테인&에서는 K팝계 멀티레이블과 이들의 방향성을 확인해본다. K팝 멀티레이블은 다수의 자회사를 상위 모회사가 지배하는 산업계통의 경영구조를 음악산업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멀티레이블은 한때 CJ ENM(웨이크원, AOMG, 하이어뮤직, 아메바컬쳐), 카카오엔터테인먼트(IST엔터, 스타쉽엔터, EDAM엔터, 안테나) 등 음원 배급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K팝 강세를 발판으로 한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멀티레이블 전략을 택하면서, 확대되기 시작했다. 하이브는 지주사 전환 전 핵심인 빅히트뮤직(구 빅히트엔터)을 기준으로 쏘스뮤직, 플레디스엔터, KOZ엔터, 빌리프랩 등을 인수하고 어도어를 론칭하는 등 국내 멀티레이블 구조를 완성했다. 또 글로벌 협업과 함께 하이브 재팬(레이블즈 재팬, NAECO), 하이브 아메리카(이타카홀딩스, 빅머신레이블 그룹, QC미디어 홀딩스), 하이브 라틴아메리카(엑자일뮤직) 등 해외 멀티레이블을 만들었다.
JYP와 SM은 본부 중심의 조직구성과 함께, 실질적인 멀티레이블화를 이루고 있다. JYP는 1본부(2PM, 스트레이 키즈, 니쥬), 2본부(ITZY), 3본부(박진영, 트와이스, VCHA), SQU4D(엔믹스), STUDIO J(DAY6,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등 독립본부 구성과 JYP CHINA(보이스토리), JYP JAPAN, JYP USA 등 해외법인 멀티레이블을 조직했다.
SM은 퍼블리싱 법인 KREATION Music Rights 출범과 함께, 원 프로덕션(보아, 소녀시대, 에스파), 프리즘 프로덕션(사이니, WayV, 루카스, 레이든, 신인 걸그룹), 레드 프로덕션(동방신기, 레드벨벳), 네오 프로덕션(NCT), 위저드 프로덕션(슈퍼주니어, 엑소, 라이즈), 버추얼 IP센터(나이비스) 등 사내조직 재편으로 완성한 6개 독립센터와 스크림레코즈, SM Classics, Label V, KRUCIALIZE 등 장르별 법인으로 복합적인 멀티레이블 구조를 만들었다.
이밖에도 마마무, 퍼플키스, 원위, 원어스 등을 앞세운 RBW는 혼성그룹 KARD(카드)가 소속된 DSP와 오마이걸, 온앤오프, 이채연의 WM엔터를 인수하며 멀티레이블화를 이뤘으며, 밴드·보컬 중심의 MPMG(해피로봇 레코드, LABEL GHS, Faction A Like), 인넥스트트렌드(롱플레이뮤직, 플라네타리움레코드, 모스뮤직) 등도 아티스트군에 걸맞는 다양한 레이블 구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K팝 멀티레이블은 업계 유행처럼 번지며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이유는 아티스트 IP들을 생성하고 여러모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꾸준한 아티스트 자원의 컴백 릴레이로 기업 전반의 수익 안정화를 이끄는 것이 첫번째 이유로 꼽힌다.
과거 소수 중심의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토대로 영향력이나 수익 측면에서 한정적이었던 것에 반해, 멀티레이블을 통한 상시적인 컴백 릴레이를 이루면서 전체적인 기업의 성장동력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또 일부 아티스트나 기업 측면에서의 위험이나 인기도에 영향 없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아티스트 사이의 컬래버, 피처링 등의 가시적인 협업은 물론, 작사·작곡가나 프로듀서, 편곡자, 안무가, 실연자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K팝 작품을 완성하는 핵심인력 자원들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도 의미가 있다.
여기에 아티스트군 전반의 IP를 활용한 2차 산업접근 또한 이유로 꼽힌다. 최근 K팝이 음악, 이미지, 영상으로만 소비되는 것을 넘어 관련 MD 상품은 물론, 의류, 패션, 액세서리 등 라이프스타일 협업제품으로까지 범위를 넓힘에 따라 관련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갖춰나가는데도 멀티레이블의 효용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멀티레이블화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여타 산업군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M&A나 직접 투자 및 물적분할로 완성된 멀티레이블화 과정에서, 독립성과 일체감의 조율이 명확해야 한다는 점이 최근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톱 프로듀서 중심으로 한 '자영업' 식에서 복수의 프로듀서를 지닌 '그룹식'으로 변모하는 과정상, 전통적인 엔터 업계의 아이디어 전략과 현재의 K팝 산업의 기업 정신이 부딪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독립적인 레이블이자 대규모 조직의 일원으로서 단순한 접근 대신 상호 간 유기적 공동체감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또한, 하나의 유행을 따라 벤치마킹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K팝 시장에서 개성 있는 모습을 더욱 강조해야 할 필요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음악적 제작기반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으로 제기되는 멀티레이블의 고정관념을 토대로, '겹치기' 격으로 비칠 수 있는 각 아티스트들의 모습들을 다르게 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한 명의 프로듀서에 기대고 있는 기존 K팝과 달리 다양한 주체로 이뤄지는 산업 형태의 K팝 업계다운 소통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형석 프로듀서는 최근 한 언론을 통해 “최근 멀티레이블 상의 갈등은 K팝 산업의 가파른 성장 속 시행착오이자 진통”이라며 “창작자와 경영인, 역할과 대우 등의 분할과 함께 소통을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개인 칼럼에서 “멀티레이블은 메인 브랜드를 희석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장르를 통해 더 많은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라며 “최근 사례처럼 타깃층과 카테고리가 중첩될 경우 성과경쟁은 물론 다양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각각의 논리에 맞게 방식들을 적용해야 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박송아 대중문화평론가는 “멀티레이블 방식이 K팝 산업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것도 사실”이라며 “다만 무리한 합병인수나 대형사 중심의 산업 고착화 등에 있어서는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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