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위하준에게 정려원은?..(첫사랑)끓어오르게 하는 무언가!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4. 5. 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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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그 지랄 같은 전쟁이 지나가면서 이 나라 온 땅이 불모화해 사람들의 삶이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던져지는 걸 본 나이기에, 지레 겁을 먹고 훈이를 이 땅에 뿌리 내리기 쉬운 가장 무난한 품종으로 키우는 데까지 신경을 써가며 키웠다.”

박완서 소설 ‘카메라와 워커’의 한 문장이다. ‘카메라와 워커’는 19일 방영된 tvN 토일드라마 ‘졸업’ 4회에서 서혜진(정려원 분)-이준호(위하준 분) 사제출격팀이 맛보기 강연의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이 강연을 준비하며 두 사람은 많이 부딪힌다. 자타공인 1타강사 서혜진의 강의스킬 전수 형태로 진행된 준비 과정에서 박완서 작가를 설명하려는 이준호를 서혜진은 “작가설명 빼. 그런 얘기 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어휘풀이 하나 더 해.”라 타박했다.

“예상문제 적중률만 높이면 돼요?”라고 반발하는 이준호에겐 “그거 말고 뭘 해줘야 되는데? 투덜대지 말고 내 말대로 해. 내가 맞아!”라며 말문을 막기도 했다.

“예전에 선생님은 저 그렇게 안가르치셨어요. 읽는 걸 좋아하게 만들고 문제 풀어가는 과정을 즐기게 만들어 주셨어요. 교과서가 생략한 이야기들을 궁금하게 만들고..”라며 이준호의 투덜거림이 길어질 땐 “집중해. 너 지금 대형강의 노리는 거 아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두 사람이 공들여 준비한 이 무료강의는 하지만 처절하게 실패한다. 라이벌 관계의 최선국어학원 최형선(서정연 분) 원장이 같은 시간 교재 특혜를 내건 특강을 개설했기 때문이다.

수강생은 단 한명. 희원고 전교 1등 이시우(차강윤 분)뿐이다. 최선 학원 장학생인 이시우는 박기성(이규성 분)의 염탐 부탁을 받고 참석한 것이다.

멘탈이 붕괴돼 강의를 포기하려는 서혜진을 이준호는 만류한다. 강사가 돼서 단 한 명일 뿐이라도 수강생을 포기할 수는 없다며 의욕을 불사른다. 그런 준호를 보며 지난 시절 “인생에 스승이라는 건 무지 끓어오르는 무언가거든요.”라 했던 준호의 말이 서혜진의 뇌리를 강타한다.

결국 서혜진이 준호에 앞서 강의를 시작한다. “학생 한 명. 그거 내 전문이잖아. 딱 한 명. 나만큼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 없어.”라는 말과 함께.

사실 서혜진의 대치동 안착은 이준호 한 명으로 시작됐었다. 8등급 무렵을 전전하던 이준호를 1등급으로 끌어올려 고려대에 진학시킨 것이 대치동의 전설이 되면서 서혜진 강사 인생에 주단을 깔아줬었다.

초심을 회복한 서혜진은 박완서 작가 이야기부터 강의를 시작한다. 이준호에겐 “그 시간에 어휘풀이 하나 더 해!”라 타박했지만 수강생 이시우를 위해선 역시 작가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는 방식이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조카를 자식처럼 키워낸 고모이야기를 다룬 단편 ‘카메라와 워커’는 그런 의미에서 시사적이다.

단편 속 고모는 조카를 사회에 뿌리내리기 무난한 품종, 즉 사회에 순응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취직 잘되는 이공계로 진로를 유도한다. 그러면 아마도 조카는 카메라 메고 놀러다니는 여유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연락 없는 조카를 찾아 나섰을 때 조카는 고린내 나는 워커를 끌고 고단한 삶을 영위할 뿐이었다.

불투명한 미래의 안락을 위해 분명한 현재의 행복을 담보 잡히는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회의가 깔려 있는 작품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대치동의 현실을 풍자하기에 영리한 선작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서혜진의 강의를 참관하며 이준호는 서혜진과의 지난 추억을 흐뭇하게 회고한다. 당시의 이준호는 행복했다. 서혜진으로 인해 읽는 걸 좋아하게 됐고 문제 풀어가는 과정을 즐기게 됐으며 교과서가 생략한 이야기들을 궁금해 하면서 지금의 이준호가 됐다.

당시의 서혜진은 이준호에게 분명한 스승이었고 서혜진으로 인해 당시의 이준호는 현재가 행복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준호에게 서혜진은 ‘첫사랑’쯤으로 읽히는, 끓어오르게 하는 무언가였다.

같은 시간 최형선은 정약용이 제자 황상에게 써준 ‘삼근계’를 주제로 강의를 한다. “황상은 중인 신분이라 벼슬 길에 오를 수 없어 평생을 초야에 묻혀 시만 지었던 인물. 정약용 또한 18년이나 유배지에서 썩어야 했던 자다. 이 사제간의 애정과 가르침이 요즘 시선으로 보면 일종의 정신승리로 보일 수 있겠지. 그렇지만 학교 선생님들은 아주 사랑하는 지문이다.”며 서혜진-이준호의 사제출격을 ‘정신승리’로 에둘러 폄훼한다.

강의 후 이시우의 카톡은 친구들의 아우성으로 요란했다. 최형선의 강의에 대해선 ‘재미없었다’가 총평. 이시우는 ‘나는 옮겨볼 듯. 괜찮았음.’이라 답톡을 날린다. 서혜진과 이준호의 강의는 이시우에게 흥미로웠고 재밌었다. 어쩌면 행복한 공부도 가능할 듯한 예감이다.

하지만 사제출격의 실패는 냉혹한 대치동 학원가의 현실과 맞물리며 서혜진-이준호의 강사인생에 파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5화 예고편에서 좀생이 김현탁(김종태 분)은 서혜진의 강의를 줄이고 이준호로선 서혜진에게 닥친 불이익이 자신으로 인한 것이라는 자책감에 휩싸이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 판에 이시우로부터 ‘재밌었다’는 후기를 전해 들은 백발마녀 최형선은 서혜진에게 스카우트를 제안할 모양이다.

‘졸업’. 돈을 목표로 시작해서 진정한 스승의 길을 찾아가는 서혜진-이준호의 강사분투기가 잔잔한 울림을 전해준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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