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장관의 "젊은층 덜렁덜렁 전세 계약" 발언, 암담하다
"전세를 얻는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보니 덜렁덜렁 계약을 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전세사기 피해자가 목숨을 끊는 일이 또다시 발생하고 채 2주도 되지 않아 나온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이다. '개인이 충분한 정보 없이 계약을 맺는 과정과 구조여서 허술했다'는 의미라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전세사기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기보다는 정보를 줄 테니 알아서 확인하라고,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는 변함이 없다. 책임지고 현재의 구조를 바꿔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러한 태도를 보이니 암담하다.
물론 정보의 비대칭성을 교정하는 것은 전세사기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부동산 이해관계자들의 의무와 이에 대한 모니터링, 처벌을 강화하고, 확정일자를 받아도 효력이 뒤늦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조치 역시 필요하다. 근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그동안 왜 이러한 조치를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전세사기는 어제, 오늘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전세제도의 시작부터 항상 그 위험성을 내재했고, 실제로 신문 기사에 전세사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무려 1933년이다. 그동안 국가는 왜 전세사기를 방치해둔 것인가.
어떻게 해도 전세사기를 완벽히 피하기 어려우니, 누군가는 전세에 살지 말라고 충고한다. 혹은 전세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리는 있지만, 그보다 주거비용의 부담을 줄이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비용만큼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서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주거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하며 불안을 느껴야 하는가.
국가가 오래도록 방치한 것은 단지 전세사기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장소에 거주할 권리가 방치되었고, 전세사기 역시 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 중 하나다.
개발국가담론 아래, 정부는 자본과 결탁해 시장에 부동산 개발 및 주택 공급을 내맡겼다. 개발을 위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철거하고 기존 주민들을 이주시킨 주거정책의 역사를 보건대, 보통 사람들의 주거권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주거권은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집을 구매한 일부에게만 적용되는 특권처럼 되어버렸다. 거기다가 집을 구매하는 것이 자산을 증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었으니 자기 집 마련에 대한 욕망은 자연화되어, 거의 생애주기에 따라 이루어야 할 발달과업 중 하나가 된 수준이다.
'내 집 마련'이 모두의 욕망이 되었으나, 아니 모두의 욕망이 되었기 때문에 주택 구입은 더욱 힘들어졌다. 2022년 기준 서울에서 집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약 15년 동안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주거를 보장하는 대신, 빚내서 집을 사라고 권한다. 2년 혹은 4년마다 이사를 고민해야 하고, 보증금 떼일까 봐 두렵고, 지금도 부담스러운 전월세 가격이 더 오를까 하는 걱정, 자산 증식에서 나 혼자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이 만나,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구매하고, 갭투기를 하게 된다. 큰 빚 위에서 실현한 내 집 마련은 경기 변동에 취약하기 마련이고, 이는 본인과 세입자에게 위험한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사기를 치는 범죄 집단도 있지만, 보통의 불안과 욕망을 가진 사람들도 세입자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길 수 있는 구조다.
요컨대, 시장화된 주택 공급이 사람들의 주거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국가권력은 높은 주거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등 금융 정책을 결합하지만, 이런 방법은 사실상 부담은 그대로 개인에게 전가하며 주거권 보장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면서도, 사람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통치에 불과하다. 결국 주거 불안정 체제는 그대로고, 주거의 보장이 여전히 개인의 지불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제 우리는 '주거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인식조차 하기 어려워졌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주택과 부동산을 둘러싼 정책만큼 불평등을 잘 나타내는 것도 드물다. 기본적으로 세입자의 권리나 불안보다는 임대인의 재산권을 우선시하는 건 너무 당연해서 문제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몇몇 유럽 국가들에서 코로나19 유행이 극심했을 때 임대료 미납에 따른 강제퇴거 금지나 임대료 동결 조치를 취한 것과 비교하면 이런 문제는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정부는 집 있는 사람들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 안달이 나 있으며, 예산이 깎인 만큼 공공임대 정책은 홀대받는다. 대출을 통해 주거를 지원하겠다는 정책은 그나마 대출을 받을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돕는 것이기에 실제로는 역진적이다. 건설사 PF는 지원하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선 구제 후 회수'하는 특별법 개정은 전세사기 피해자와 무주택 서민의 대립 문제로 치환하며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거 불안정이라는 것은 아마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가진 자들이다. 이것이 보편적 주거권 보장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미 제도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욕망, 이해관계가 켜켜이 쌓여있고, 우리가 계획하는 미래까지도 자산으로서의 주택을 중심으로 짜여 있는 상황에서 주거 불안정 체제는 여전히 공고하다. 복잡한 문제이며 누구 하나의 노력만으로 이런 체제를 바꾸기도 어렵지만, 당장의 제도적 변화가 시급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현재 제도를 만든 데 큰 책임이 있으며, 이후의 제도를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주택을 탈상품화하고, 자기 집을 마련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주거 빈곤 가구 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를 확충하고, 유지·보수도 필요하다. 또한 민간 세입자의 임대료 상승 걱정을 줄이고, 이들이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쫓겨나지 않고 지속해서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간 국가가 방기한 탓에 피해를 본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해야 한다. 야당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확언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무산시켜 또다시 피해자들의 희망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주거를 위해 너무 커다란 에너지와 비용을 치르느라 결혼과 출산을 비롯해 개인이 하고 싶은 일을 늦추고, 혹은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를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 구조에서는 특별히 사기를 당하지 않더라도 집을 구하고, 전월세 비용을 마련하고, 대출을 상환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 그리고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만회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고가주택, 다주택 소유자의 세금은 줄여주려 노력하면서도 공공임대주택은 악마화하는 정부를 마주하고 있지만, 현재의 주거 불안정 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주거권을 우선하는 사회를 과감하게 꿈꾸고 주장하자. 언제까지나 주거 때문에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저당 잡혀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시민건강연구소 ]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재명 "尹, 거부권을 협상 카드로? 야당과 전면전 부추기는 것"
- '직구 금지' 역풍, 추경호 "설익은 정책 혼선…당과 사전 협의하라"
- 국토부 장관의 "젊은층 덜렁덜렁 전세 계약" 발언, 암담하다
- 이창수 "캐비넷 열어라"…'문재인 일가' 수사, 집권 3년차에 본격화하나?
- 의대증원 밀어붙이기…대통령실 "각 대학은 학칙 조속히 개정하라"
- 경찰, 김건희 '통장 잔고 위조' 무혐의…野 "김건희는 치외법권인가"
- 원어민 강사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유는?
- 궁지 몰렸던 국힘, 역공 나섰다…"김정숙 특검이 먼저", "文, 김정은 말 믿었다니"
- 가덕신공항은 들어 봤어도 100년 숲, 동백군락지는 모른다
- "5.18 정신, 국가유산의 마지막 관문을 향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