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갭이어’... 청소년 인생학교 1년 그 후 ⓛ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인생에는 몇 번의 전환기(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청년, 중장년이 되어서도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인생학교를 찾는 이들이 많은 이유인데요.
하물며 인생에서 가장 격동의 전환기를 맞는다는 열일곱, ‘인생학교’를 거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열일곱은 본격적인 입시 레이스에 돌입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죠.
그래서인지 열일곱에 ‘갭이어’를 갖는다고 하면, ‘그런 건 일단 대학 가서 해도 늦지 않아 ’, ‘1년 후에는 어떻게 할 거야’ 등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에 대한 반문도 있습니다. ‘그럼 고등학교는 그저 대학교를 가기 전 단계일 뿐인가요?’, ‘그럼 대학에 갈 생각이 없는 사람은요?’
열일곱, 정해진 길에서 잠시 벗어나 인생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에 주목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옳았을까요, 틀렸을까요?
‘청소년 인생학교에서 1년’ 그 후의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충북 괴산에 위치한 목도나루학교는 지난해 개교한 청소년 인생학교입니다.
1년 과정의 위탁학교로, 학생들은 이곳에 있는 동안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목도나루학교만의 자율적 교육과정을 배웁니다.
목도나루학교는 지난 2월 23명의 1기 수료생을 배출했습니다.
학력 인정이 되기 때문에 1년 과정을 마치면 2학년으로 복교가 가능한데요.
목도나루학교에 따르면 23명의 1기 수료생 가운데 원적교(일반고)로 복교한 학생은 20명. 복교 후 자퇴를 결정한 학생 1명, 이 외에 2명은 대안학교 전학을 선택했습니다.
인터뷰 거절 의사를 전한 학생 외에 대안학교로 전학을 간 A학생과 일반고로 복교한 학생 2명을 인터뷰했습니다.
■ “자발적 배움에서 자신감 얻었죠”
강화도 산마을고등학교로 전학 간 A는 밝은 목소리였습니다.
대안중학교를 졸업하고 목도나루학교에 입학한 A는 “지난 1년의 시간이 매우 만족스러웠다”며 “수료 후에도 대안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가야겠다 마음먹었었다”고 밝혔습니다.
A는 현재 학교생활에 대해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목도나루처럼 입시 위주가 아닌 프로젝트 수업 등으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수업으로 진행한다”면서 “이 학교 친구들은 일반 학교보다 이런 시스템의 학교가 더 좋다고 생각해서 온 친구들이다 보니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도전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성우가 꿈이라는 A는 진로에 대한 계획도 차근차근 세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전문 성우가 되기 위한 길을 찾아보니 한국방송예술진흥원에 성우과가 있어서 도전해볼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생의 방향은 또 언제고 달라질 수 있지만 ‘스스로 배움’에 있어 단련된 A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묻어났습니다.
■ 적응 어려운 이유는 ‘자율 아닌 자율학습’
상대적으로 배움의 환경의 진폭이 큰 일반고로 복교한 학생들과도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충북 영동의 인문계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B는 한동안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B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방과 후 9시까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 더구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B는 자정까지 자습을 해야 했다고 했습니다.
현재는 기숙사를 나와 방과 후에는 집에서 쉬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가 단순히 대학을 가기 전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인이 돼서 사회로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케어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쪽지 시험과 숙제, 수행평가, 그리고 시험공부까지 그야말로 첩첩산중처럼 느껴지는 일상 가운데 나를 살필 시간은 없었다는 건데요.
‘목도나루학교를 가지 않고 원적교에서 1학년 생활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질문에는 “적응이 더 어려웠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B는 “3월에는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괜찮아졌다”며 “만약에 1년 전의 저였다면 힘든 나를 보는 이런 상황들에 바로 무너지고 힘들었을 것 같은데, 내가 그래도 좀 더 단단해졌구나, 1년을 잘 보내고 왔구나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 전환교육 과정 좋았지만, 복교 뒤 ‘뒤처진다’는 느낌은 숙제
지난해 목도나루학교에서 만났던 C는 누구보다 진취적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가는 학생이었습니다.
C는 ‘고등학교 1학년’ 대상인 목도나루학교(개교 전)에 입학하기 위해 일반고 진학을 포기하고 1년의 유예 기간을 가졌습니다.
이런 결정에는 목도나루학교의 사전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PD겸 작가가 꿈이라는 C에게 목도나루학교의 활발한 동아리 활동과 인턴십 프로그램은 유용한 배움의 기회였습니다.
충북 괴산의 인문계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C는 “목도나루학교를 수료할 즈음 진로가 바뀌어 현재 교사를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진로가 바뀐 이유를 묻자 “목도나루학교에서 영상도 찍고 편집도 많이 했는데 그런 활동 보다 친구들과 함께 뭔가 기획하고 가르쳐주면서 발전하는 경험이 즐거워서 교사가 적성에 맞단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막연하게 멋져 보였던 꿈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진로를 재설정하게 된 겁니다.
몸소 부딪히며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된 것은 값진 일이지만, 감수해야 할 것도 있었습니다..
2학년 첫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였던 터라 자연스럽게 시험 이야기로 이어졌는데요.
C는 “저는 이제 입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인데 다른 애들도 다 같이 열심히 하다 보니까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면서 “저 같은 선택을 했는데, 상위권 대학을 바라보고 있다면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문계고로 복교 후 자퇴를 결정한 D학생은 인터뷰를 고사해 자세한 이야기는 담지 못했지만, 자신이 설정한 진로를 위해 길을 모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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