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직구 금지’ 3일 만에 없던 일로…어김없이 나온 ‘국민 오해’ 해명 [5월20일 뉴스뷰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분야를 두루 취재하고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권태호 논설실장이 6개 종합일간지의 주요 기사를 비교하며, 오늘의 뉴스와 뷰스(관점·views)를 전합니다. 월~금요일 평일 아침 8시30분, 한겨레 홈페이지(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5.20) 아침 가장 큰 뉴스는 △‘국외직구 금지’ 3일만에 철회(6곳)입니다. 모든 신문이 이 기사를 1면에 실었고, 이 가운데 4곳이 톱기사로 배치했습니다. 이어 △최경주 최고령(54살) 우승(2곳, 사진 3곳) △전공의 복귀시한 임박(2곳)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① 차이의 발견 : ‘해외직구 금지’ 3일만에 철회
② 시선, 클릭!
-노익장 최경주(54), 황석영(81), 최불암(84)
- K-라면, 4월 1억달러 수출
- 한강 다리 위 호텔, 1박 34만~50만원
③ Now and Then : What is a youth(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OST, 1968)
① 차이의 발견
# 국외직구 금지 3일 만에 철회
1. 직구 금지, 3일 간 무슨 일이 일어났나?
- 어린이용품과 전기·생활용품 80개 품목에 국가통합인증마크(KC) 없으면 직구 원천금지(16일)
- 온라인 커뮤니티 등 소비자 반발 => 정부, “지금 당장 금지 아니다”(17일)
- “국민 여러분께 혼선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 80개 위해 품목 해외직구 사전적 전면 금지·차단은 사실이 아니다”(19일)
2. 직구 금지를 왜 하려 했나?
- 이번 ‘금지 조처’는 갑작스럽게 나온 건 아닙니다. 이미 지난 3월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관세청 등 14개 기관이 함께한 ‘해외 직구 종합 대책 TF’가 구성돼 논의를 진행해 왔습니다. 소비자 보호와 국내 기업 보호라는 2가지 목표가 있었습니다.
- 관세청은 지난달 30일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플랫폼 해외 직접구매 물품 가운데 초저가 어린이제품 38종에서 카드뮴 등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이어 보름 뒤, ‘해외직구 KC마크 없으면 원천금지’ 발표가 나왔습니다.
- 애초 이번 조처는 소비자들을 보호하고, 해외직구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동시에 해소하겠다는 목적에서 비롯됐습니다.
3. 소비자들은 왜 반대하나?
- 유아용품을 국외 직구로 사는 부모들의 반발이 거셌고, 컴퓨터·전자기기 커뮤니티 등에서도 불만이 쏟아졌습니다. 정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 처음에 해외직구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국내에 팔지 않는 해외물품을 사는 것에서 시작돼 이후 국내에도 판매하는 수입제품을 훨씬 싼 값에 곧바로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중국 유통업체를 통한 해외직구가 더해지면서, 이젠 똑같은 제품을 훨씬 더 싸게 해외플랫폼을 통한 직구로 구매하는 용도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 게시물에 올라온 성토 글들을 보면, “해외 플랫폼에서 1만원 정도 하는 부품을 국내에서 4만원은 주고 사게 됐다”, “소비자들이 직구를 찾는 근본 원인은 값이 싸기 때문인데 국내 유통 구조는 바꾸지 않고 규제만 한다” 등이 많습니다.
- 정부는 ‘소비자 보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네이버 용어사전 : 한참 단잠 자는 새벽에 남의 집 봉창을 두들겨 놀라 깨게 한다는 뜻으로, 뜻밖의 일이나 말을 갑자기 불쑥 내미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격이었던 것입니다.
4.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1) 국민을 애 취급하기 때문이다.
- 군사정부 때부터, 정부는 국민을 보호 또는 계도의 대상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 전통(?)이 당국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허가권을 갖고 있어 힘이 막강한데다, 이전 엘리트 관료시대의 문화로 인해, ‘국민들은 뭘 잘 모르니, 똑똑한 우리들이 제대로 판단해 국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오랫동안 영화·음반 사전검열이 있었고, 지금은 엉뚱하게 보도에 사후제재를 남발하는 것에도 그 잔재가 남아있습니다. 중국 쇼핑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장난감에 위해성이 확인됐다는 이유로, 성인들이 구매하는 피규어 제품까지 일괄 규제하는 식입니다.
2) 관료사회가 늙었기 때문이다.
- 관료들의 생물학적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관료 사회는 사고가 늙었고, 사회변화에 둔감합니다. 그래도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기업과 관료 사회의 본질적 차이 중 하나는 `마케팅'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쟁자가 없는 독점기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외부의 정책소비자보다 내부의 결정권자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더 잦게 됩니다. 또 일반기업과 달리, 망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외부 변화를 쫓는다고 하지만, 긴장도가 현격히 떨어지고, 인식의 변화가 아주 천천히 진행됩니다. 그렇게 되면, 바깥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는 우리뿐 아니라, 관료주도 사회였던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 이번 조치 이후 소비자 반발에 대해 당국의 첫번째 반응이 “이렇게 반발이 거셀 줄 몰랐다”입니다. 아마도 ‘직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해외직구 대책’을 논의했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해외직구는 2030 등 젊은층에서 더욱 일반화돼 있다는 점에서 정책결정권자들과 소비자들의 간극이 더욱 컸을 것입니다.
3) 처음부터 방향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 3월에 TF를 만들 때부터 ‘중국산 플랫폼 해외직구 제재’라는 방향이 정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TF는 이에 대한 통계를 정리하고, 제재 논리를 세우며, 실행 플랜을 다듬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두 달도 안 되는 기간동안 그 바쁜 14개 기관들이 얼마나 밀도있는 제로베이스 회의를 할 수 있었을까요.
- 그리고 불쑥 발표했다가 곧바로 없었던 일로 되돌리는 식의 조처가 윤석열 정부에서 왜 이렇게 잦을까요? ‘초등학교 5살 입학’, ‘주 69시간 근로’, ‘R&D 예산 감축’, ‘의대정원 2000명’ 등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이 갑자기 무능해지거나 경솔해진 걸까요? 모든 조직이 그렇지만, 공직사회는 더욱이 윗선의 시각에 입장을 맞춥니다. 윗선이 하자는대로 맞춰주고, 논리도 개발하고, 문제가 생기면 또 그때 가서 수습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윗선이 하자고 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정상적인 피드백이 일어나지 않고, 그러니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아무도 문책받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리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관료들은 그렇게 또 학습하게 될 것입니다. `윗사람 하자는대로 하면, 문제가 잘못 돼도 탈이 없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문제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4) 경직된 조직문화 때문이다.
- 내부 이견이 일부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는 것인데, ‘답답한 사람’ 취급받았을 수 있고, 또 그 이견이 그리 강하지도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상황을 반추하면서, 그때 제기된 ‘내부 이견’이 어떻게 나왔으며, 어떻게 묵살됐으며, 어떻게 처리됐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볼 것을 제안합니다. 이런 ‘망신’을 피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5) 제일 쉬운 게 ‘규제’이기 때문이다.
- 해외직구를 규제하기에 앞서, 당국은 ‘소비자들이 왜 이렇게 해외직구를 많이 하는가’라는 구조적 원인을 살펴봐야 합니다. ‘이건 위험하니까 사지 마’라는 식은 너무나 일을 쉽게 하는 것입니다. 유통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우리 제품의 경쟁력은 해외직구 제품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나아가 세계적 흐름이 소비의 국경이 사라지는 것인지 등을 살펴야 했습니다.
6) ‘기업 보호’가 ‘소비자 마음’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 추정입니다. 그러나 해외직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국내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봅니다.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당국의 DNA에는 늘 ‘기업’이 ‘소비자’보다 앞에 있습니다. 소비자가 겪는 불편, 반응보다 하루빨리 우리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던 건 아닌가 추정해 봅니다.
7) ‘중국 견제’가 앞섰기 때문이다.
- 이 역시 추정입니다. 만일 알리, 테무가 미국 회사였어도 이런 조처를 이렇게 급박하게 내릴 수 있었을까요.
8) ‘국민 오해’와 언론 탓을 잊지 않는다.
- 그래도 이번에 발빠른 입장 변화를 하고, ‘사과’한 것은 그나마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라고 여겨집니다.
- 그러나 이번에도 ‘국민 오해’라는 말을 잊지 않았고, 보도자료에는 MBC, JTBC 보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80개 위해 품목의 해외직구를 사전적으로 전면 금지·차단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다음 달에 갑자기 이 모든 품목에 대해서 법률로 다 사전적으로 차단·금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정부에서는 이러한 대안조차 검토해 본 적이 없다. 첫 번째 브리핑 때 설명이 많이 부족하고, 자세히 설명 못 드리다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이 정도로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면, 16일(목) 발표 때부터 얘기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반발이 거세진 이후인 19일(일)에야 무마 브리핑을 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개인이 아닌, 당국이나 언론의 경우, 발표나 보도 내용을 국민들이 잘못 이해했다면, 이는 ‘국민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말로 ‘셀프 면죄부’를 줄 게 아니라, ‘왜 오해하게 됐는지, 발표나 보도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계속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5. 여당 내부 비판
- 이번 조처 발표 이후, 소비자 반발이 거세지자, 정치권이 앞다퉈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위치에 따라 약간의 온도차는 있지만, 여권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 그중에서도 오는 7월 전당대회 출마가 예상되고 있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비판이 더욱 주목됐습니다. “해외직구는 이미 연간 6조7000억 원을 넘을 정도로 국민이 애용하고 있고 저도 가끔 해외직구를 한다. KC 인증을 의무화할 경우 적용 범위와 방식이 모호하고 지나치게 넓어져 과도한 규제가 될 것”
- “안전을 내세워 포괄적, 일방적으로 해외직구를 금지하는 것은 무식한 정책이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유승민 전 의원)
- “취지는 공감하지만, 졸속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나경원 당선인)
- “‘차이나 침공’이란 거대한 파도를 ‘KC인증’으로 막을 수는 없다. 소비자 불만도 불만이지만 실효성도 떨어진다. 통관에서 걸러내기도 어렵고, KC인증이라는 수단에 대한 국내의 신뢰성도 낮다. (중요한 건) 우리 제품과 유통의 경쟁력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다”(윤희숙 전 의원)
6. 언론보도
- 언론들이 일제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4곳이 사설을 썼습니다.
한겨레 = 해외직구 규제도 오락가락, 정책 신뢰 허무는 정부
경향 = 사흘 만에 접은 해외직구 KC 의무화, 졸속행정 책임 물어야
동아 = ‘직구 KC 인증’ 政은 졸속 추진-철회, 黨은 뒷북 비판 경쟁
조선 = 반복되는 정책 시행착오, 국민이 실험 대상인가
② 시선, 클릭!
# 노익장 최경주(54), 황석영(81), 최불암(84)
## K-라면, 4월 1억달러 수출
### 한강 다리 위 호텔, 1박 34만~50만원
③ Now and Then
지난 13일 영국 런던에서 흑인 줄리엣이 등장하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시작됐습니다. 오는 8월3일까지 이어지는 이 연극은 벌써 한 달 전에 전석매진됐습니다. 이 연극은 시작도 전에 줄리엣 역할에 흑인 배우인 프란체스카 아메우다 리버스를 캐스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큰 논란을 빚었습니다.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로 원작을 훼손한다’는 비난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반론이 맞섰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흑인 배우에게 인신공격이 이어지자, 제작사는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고, 또 배우 800여명이 아메우다 리버스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풍경은 지난해 개봉한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나온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에서 이미 경험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에 흑인이 주인공을 맡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988년 영국에서 데이비드 헤어우드라는 흑인 배우가 로미오 역을 맡았고,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는 흑인 배우 콘돌라 라샤드가 줄리엣 역으로 출연한 바 있습니다. 또 지난해 영국에서 제작한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둘 다 흑인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연극은 아니지만, 지난 8~19일 서울에서, 그리고 23~26일은 부산에서 무대에 오르는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무용극에도 흑인 무용수가 줄리엣 역을 맡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채널을 보면, 미국에서 제작한 역사물 드라마에 인종이 뒤섞여 나오는 경우는 흔합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흑인 공주, 흑인 귀족, 혼혈 왕족 등이 백인 왕족·귀족들과 함께 등장하는 형태입니다. 이런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환타지 역사물’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처음이어서인지, 잘 몰입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과거엔 백인들이 아시아인이나 흑인을 대신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계 백인인 율 브린너가 오랫동안 ‘왕과 나’에서 태국 국왕 역을 맡았고, 징기즈칸을 백인 존 웨인이 맡은 적도 있습니다. 이를 ‘화이트 워싱’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유태인인 예수를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앵글로색슨계 백인의 이미지로 떠올리게 되는 것도 여러 영화 또는 명화의 영향 탓일 겁니다. 흑인 배우가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에는 브로드웨이에선 백인이 얼굴에 검은 색을 칠하고 흑인 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하여 2015년부터는 ‘블랙 페이스’, ‘옐로우 페이스’ 등의 인종 분장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블랙팬서’처럼 흑인 역사를 무대로 한 창작극이 아니라, 중세 유럽 등의 전통극에 흑인을 등장시키는 것이 굳이 PC를 위한 의도라고 보긴 힘들 것 같습니다. 운동단체라면 모르겠으나, 흥행을 외면할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수익에 아랑곳없이 결정을 내린다고 보긴 힘들기 때문입니다. 예술적으로는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공연계에서는 이미 아예 인종을 구분하지 않고 배우를 캐스팅하는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이 확산돼 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 1월 춘향전을 각색한 연극 ‘안나전: Hallo 춘향’에 독일인 배우 윤안나(안나 알리자베트 릴만)가 춘향 역을 맡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튀르키예 출신 배우 베튤이 연극 ‘신파의 세기’에서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 연예인들이 점점 늘고 있고, 또 다문화 가정 출신 배우들도 늘어나면, 우리도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이 점점 확산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조선시대 사극에 다소 검은 피부의 국왕이나 중전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옳으냐 그르냐’로 바라보지 말고, ‘시대 변화상’의 하나로 인식하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또 예술에는 다양한 새로운 시도와 함께 반대로 그 시절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시도 등이 여러 스펙트럼으로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는 것이 사회의 다양성과 건강성을 동시에 발현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대중과 함께 해야 하는 영역에서의 변화는 제작자 또는 공급자의 신념이 절대적 요소가 아니라, 소비자 또는 시민의 호흡과 정서와 결을 맞추거나 소통하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 또한 필수일 것입니다. 이는 비단 예술의 영역에 국한되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올리비아 핫세의 1968년 영국·이탈리아 공동제작(국내에는 1978년 개봉),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1996년 헐리우드 작품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대사까지 셰익스피어 원작에 충실했던 1968년 작품의 OST 중 하나인 ‘What is a youth’입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꽤 긴 이 곡이 라디오 신청곡으로 종종 들려주곤 했습니다. 영화는 본 적 없고, 학창시절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듣다가 중간에 ‘키스(로미오), 음(줄리엣)’하는 소리만 듣고선 키스 장면인 줄 알고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손가락에 입 맞추는 장면이었더군요. 위 영상에는 ‘19금’까지는 아니고, ‘초등학생 관람금지’ 정도 수준의 별도 키스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일부 포털에서는 유튜브 영상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시려면, 한겨레 홈페이지로 오시기를 권합니다. 기사 제목 아래 ‘기사 원문’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끝)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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