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54세 최경주의 감동적인 생일 파티
[골프한국] 최경주가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클럽에서 생애 가장 감동적인 생일 파티를 열었다. 최경주는 54번째 생일날인 19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에서 열린 KPGA투어 SK텔레콤 오픈 4라운드에서 박상현(41)과의 연장 접전 끝에 우승했다.
최경주는 5타 차 단독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했으나 3타를 잃으면서 박상현과 동타를 이뤄 연장전에 들어갔다. 18번 홀(파4)에서 열린 연장 첫 경기에서 최경주는 두 번째 샷을 그린 옆 개울로 보냈다. 기적적으로 공은 개울 가운데 지름 2m 크기의 작은 섬에 살아 있었다. 최경주는 개울 한 가운데 좁은 잔디에서 공을 홀 가까이에 붙여 파 세이브에 성공, 승부는 연장 두 번째 홀로 이어졌다. 두 번째 홀에서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린 최경주는 쉽게 투 퍼트로 파를 기록, 보기를 범한 박상현을 꺾고 KPGA투어 통산 17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동시에 19년 만에 KPGA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도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은 2005년 매경오픈에서 우승한 최상호(69)로,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 4개월 25일. 최경주가 KPGA투어에서 우승한 것은 11년 7개월 만이다. SK텔레콤 오픈에 22번 출전, 4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는 PGA투어에서 2002~2011년 통산 8승, 유러피언투어 1승, 일본프로골프(JGTO) 2승, 아시안투어 6승(KPGA투어 공동 주관 5승 포함), 만 50세 이상이 참가하는 미국 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1승 등 프로 통상 29승을 올렸다.
우승이 확정된 후 인터뷰에서 최경주는 "생일에 최고령 우승, 이럴 수가 없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특히 미스샷이 개울 가운데 작은 섬에 떨어진 장소를 찾아 "손으로 놓았어도 그렇게 놓을 수 없는 라이였다"며 캐디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무도 이번 SK텔레콤 오픈에서 최경주의 우승을 예상하지 않았다. 스폰서가 주최하는 대회라 참가는 했지만 그가 젊은 선수들과 우승을 겨루기엔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K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연령층이 20~30대가 주축을 이뤄 노련미만으로 버티기엔 무리다. 우승 경쟁을 벌인 선수들을 보면 김백준 23세 이승택 28세고 김경태 장동규 이태훈 허인회 이태희 등은 30대 중반, 박상현 강경남이 41세다. 최경주에 비해 길게는 30살, 짧아야 13세 차이가 난다. PGA의 챔피언스투어가 3라운드로 치러지는 것도 50세 이상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버텨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1라운드를 이븐파로 공동 2위 군에 포진한 최경주는 2라운드에서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 7언더파를 몰아치며 6타 차 단독 선두로 나섰다. 3라운드에서 한 타를 잃었으나 5타 차 선두를 지켰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3타를 잃어 경쟁자들의 추격을 허용, 동타까지 허용해 연장전까지 갔으나 위기에서 행운이 따르면서 불가능에 가까운 '최고령 우승' 기록을 세웠다. 그것도 생일에.
연장 첫 번째 경기에서 두 번째 샷은 미스샷이었다. 그린에 올라가야 할 공이 개울로 향했다. 공이 개울 한 가운데 좁은 잔디밭에 안착한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어프로치샷으로 공을 붙인 것은 최경주의 노련미와 침착함의 산물이었다.
2013년 10월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이 주최한 관훈초대석에서 필자는 패널로 초대손님인 최경주 선수를 만났다. 나는 첫눈에 그가 보통 운동선수가 아님을 알아봤다. 매의 눈을 닮은 눈빛과 자신에 찬 태도, 그러면서 겸손을 잃지 않은 그는 관훈토론회의 초대석을 지배했다. 그는 거침없었다. 몸과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었기에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참석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골프를 하게 된 배경, 미국으로 건너가 겪은 숱한 고초, 초기에 매일 한 가마니씩 연습볼을 치느라 장갑이 손에 늘어붙어 떨어지지 않은 일화, 한국을 대표하는 골프선수로서의 생활에 얽힌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매섭고 냉정하기로 소문난 관훈클럽 회원들은 이례적으로 중간중간에 최 선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사람과 골프채를 연결하는 첫 접촉 부위인 그립 이야기에서부터 골프에선 '대충'은 결코 통하지 않는다는 체험담, 아이언에 맞아나가는 볼에서 느끼는 번갯불 같은 쾌감, 골프야말로 가장 깨끗한 운동이라는 그의 골프 철학, 목표한 것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열망과 신뢰, '벙커는 내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벙커 노이로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일화 등은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솔직히 말해 최경주 선수가 이 정도의 인물인 줄은 정말 몰랐었다. '비움'의 미학을 체험적으로 깨닫고 실천하는 그의 골프 정신세계와 그 철학을 일상생활로 옮겨 삶의 철학으로 승화시킨 그는 성공한 한 명의 프로 골퍼가 아니라 매력투성이의 위대한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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